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024년 신년사를 통해 수출 회복세로 내년 우리 경제가 2.3%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헤럴드경제=문혜현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일 “수출 중심의 경기 회복세가 이어져 내년 경제성장률은 2.3%까지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신년사를 통해 “그간 어려움을 겪었던 반도체 업황이 점차 되살아나고 있는 점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이 총재는 “IT 제조업을 제외하고 본다면 올해 성장률이 1.7%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돼 국민들께서 경기회복의 온기를 충분히 느끼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며 “물가가 목표수준(2%)에 안착되는 시기와 관련해서도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높아진 물가수준과 고금리 장기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특히 염려되는 이유”라고 짚었다.
이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가 전망한 향후 5년간의 세계경제 성장률이 연평균 3%대 초반으로 199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인 점을 언급하며 우리 경제 대외 여건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향후 통화정책 과제에 대해 이 총재는 “올해는 주요국의 금리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되는 가운데 나라별로 정책이 차별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며 “국내외 경제여건의 변화를 고려할 때 올해 한은은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면서도 경기회복과 금융안정에 필요한 최적의 정교한 정책조합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등산에서 정상 직전의 오르막길 또는 마라톤에서의 마지막 구간, 즉 라스트 마일(last mile)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고 했다.
이 총재는 “물가상승세의 둔화 흐름이 이어지겠지만 원자재가격 추이의 불확실성과 누적된 비용인상 압력 등의 영향으로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딜 수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물가안정을 이뤄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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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기조 장기화에 따른 금융불안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 총재는 특히 “국내에서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를 중심으로 일부 위험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며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를 중심으로 신용위험이 확대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유사시 금융시스템 내의 유동성 안전판 강화를 위해 한국은행 대출의 적격담보 범위를 금융기관이 보유한 대출채권까지 확대하기로 한 만큼, 세부 시행 방안 등 관련 제도를 조속히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 및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부동산PF의 질서있는 정리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과정에도 지원하겠다는 설명이다.
또 커뮤니케이션 강화를 위해선 그동안 반기 단위로 해왔던 경제전망 경로 발표를 분기 단위로 세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총재는 “경제전망을 상세히 공표할 경우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전망 오차와 관련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면서 “그러나 경제주체들이 중앙은행 전망의 전제조건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됨으로써 여건 변화에 따른 정책 변화 방향을 체계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되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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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는 우리 경제가 선진 대열에 들어선 만큼, 이제는 구조개혁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재정의 확대와 저금리에 기반한 부채 증대에 의존해 임기응변식으로 성장을 도모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눈앞에 두고 있는 초고령사회 진입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수요가 확대일로에 있으며 그간 가파르게 증가한 가계부채 규모는 성장잠재력을 훼손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그는 “다행히 최근에는 재정적자 규모가 축소되고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저해하는 다양한 요인들이 여전히 산재해 있다”며 “그간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느라 충분히 살피지 못했던 여러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는 데 한은이 더 힘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과거 부동산 가격 급등 및 PF 부실화의 구조적 원인과 제도적 보완책은 무엇인지 ▷향후 디지털 시대의 뱅크런에 대응한 현재의 규제 및 감독 체계는 충분한지 ▷비은행 금융기관의 중요도를 고려해 한국은행의 유동성 지원 장치는 더 개선할 사항은 없는지 ▷높아진 대외건전성에 걸맞게 환율의 대외충격 흡수 기능이 충분히 활용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 총재는 아울러 “이는 한은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금융당국과 함께 다 같이 노력해야만 한다”며 “저출산·고령화와 수도권 집중 및 지방소멸을 어떻게 극복할지,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기후위기 등 과거와 다른 환경에서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 방식은 어떠해야 할지,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끝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금융·경제의 디지털 전환에 대한 대응을 한층 강화하고자 한다”며 “올해에는 바람직한 디지털화폐(CBDC) 도입방안의 모색을 위해, 약 10만명의 국민들이 실거래에 참여하는 파일럿 테스트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직원들을 향해 “앞으로도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정신으로 계속 노력해주시길 당부드린다”며 “한은이 보다 긴 안목과 통찰력을 가지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든든한 나침반이 되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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