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병원을 떠났다’… 전공의 집단이탈에 응급실마저 ‘비상 운영’
2024-02-20 10:30


서울 대형 종합병원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소속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 중단에 돌입했다. 이날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전공의 당직실이 텅 비어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김용재·박지영·김용훈 기자] 전국 수련병원의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났다. 전문의·간호사가 전공의 대직을 서고, 응급실마저 비상 운영되는 ‘의료대란’이 현실화 됐다.

서울에서만 1000명이 넘는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이탈했다. 특정과에서는 외래 진료가 중단되고 수술이 한참 후로 밀리는 등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의 몫이 됐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병원에 남아있는 교수진과 간호사들의 ‘번 아웃’도 예상된다. 다만 정부의 ‘강경 대응 기조’가 이어지면서 의료계와의 ‘강대강’ 대치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따르면 전날 23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6415명으로 집계됐다. 사직서는 모두 수리되지 않았지만, 사직서 제출자의 25%인 1630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의 전공의들 역시 이날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했다.

전공의들이 떠난 첫날, ‘빅5’ 병원은 혼란스러웠다. 전문의와 간호사들은 전공의 대신 근무를 서며 피곤함을 호소했다. 아이를 둔 보호자, 휴가를 내고 노모를 데려온 직장인 등 환자들은 진료가 미뤄지거나 취소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공의들이 집단 행동에 돌입한 20일 오전 서울대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 박지영 기자

전공의 대직을 섰다는 빅5 병원 응급실 소속 간호사 이모(31) 씨는 “어제 밤 근무부터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다”라며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이해하지만, 하루 만에 벌써 지쳤다. 빨리 이 갈등이 해결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다른 응급실 소속 간호사 A(45) 씨 역시 “어제 밤 6시부터 응급실에 전공의가 아무도 없었다”라며 “교수님과 동료들이 엄청 고생했다. 몇몇이라도 응급실에는 남아주길 바랬는데 아쉽다”라고 했다. 응급실 관계자는 “현재 응급실에 전공의들이 없어서 힘들다”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응급실의 경우 전공의 자리를 대신해 교수진이 당직을 늘리는 방식 등으로 진료공백을 줄이기로 했지만 전공의들의 이탈이 장기화될 경우 진료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공의들이 떠난 병원 속에서 환자들의 걱정은 커지고 있다. 노모의 백내장 수술을 위해 서울대학교병원 안과를 찾은 김모(50) 씨는 “어머니 양쪽 눈이 모두 백내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한쪽 눈 수술은 취소가 됐다”라며 “한쪽 눈이라도 수술하러 오라 한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백내장 수술은 그나마 가벼운 수술인데, 다른 큰 수술을 앞둔 이는 잠도 못 잘 것 같다”라고 우려했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을 찾은 한 보호자는 “아이가 척추성근위축증을 앓고 있어 4개월에 한 번씩 주사를 맞지 못하면 숨을 못 쉰다”라며 “전공의들 파업 여파로 주사 맞는 시기가 늦춰지거나, 완전히 주사를 못 맞는 상황이 올까봐 주위에서도 많이 신경 쓰고 있다”라고 했다.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집단행동을 예고한 가운데 19일 오전 서울 한 대학병원 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외래 진료도 못 받을까 걱정하는 환자도 많았다. 뇌졸중 정기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는 B(67) 씨는 “전공의들이 자기 가족이 아프면 이렇게 행동할지 모르겠다”라며 “사회의 엘리트라면 양보를 할 줄 알아야 하지 않나 싶다. 외래 진료를 받으러 혹시 몰라 새벽 6시30분부터 와 있었다”라고 했다.

항암치료 후 검진을 받으러 왔다는 박모(61) 씨는 “전공의들 파업 때문에 외래를 봐주는 교수님들이 바빠진다는 얘기를 듣고 일찍 왔다”라며 “파업 때문에 앞으로 외래 진료도 못받을까봐 걱정된다”라고 했다.

병원들은 당장의 의료 공백을 피하고자 스케줄 조정에 나섰다. 세브란스병원은 이달 16일 전공의 공백에 대비해 진료과별로 수술 스케줄 조정을 논의해달라고 공지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 부재로 수술을 절반 이상 감축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이날 세브란스병원 안과는 전공의 진료중단 여파로 외래진료가 불가하다는 안내문자를 예약 환자들에게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도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인한 혼란이 가중하지 않도록 수술과 입원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지, 대체인력을 어떻게 배치할 지 등을 다각도로 논의하고 있다. 하루 200∼220건 수술하는 삼성서울병원은 전날 10%가량인 20건의 수술이 연기됐다. 이 병원은 이날 약 70건의 수술이 미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서울 대형 종합병원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소속 전공의 2700여 명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하기로 해 의료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19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보건복지부가 전날 전국 221개 전체 수련병원의 전공의를 대상으로 의료현장을 떠나지 말라는 취지의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했지만, 전국 1만3000여명에 달하는 전공의의 집단 행동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병원을 빠져나간 전공의들은 이날 정오 서울 용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긴급 임시대의원총회를 연다. 회의에서 전공의들은 향후 대응 방안 등 본격적으로 ‘병원 밖 행동’을 논의할 예정이다.

대전협은 전공의들이 근무하는 전국 수련 병원을 대상(빅5 제외)으로 기명으로 이날 블랙아웃(업무를 멈추고 연락 차단하는 행위) 참여 설문을 진행할 것으로도 알려졌다.

정부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그리고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검찰 등을 총 동원해 의료계 압박에 나섰다. 복지부는 의협지도부에 대해 의사면허정지 행정처분 통지서를 발송했고, 진료유지명령을 발동했다.

교육부는 각 대학에 ‘의대 휴학원’ 미처리 등 학사관리를 당부했고, 법무부와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은 병원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구속수사 검토’를 공언하고 나섰다. 경찰은 전공의들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보조하는 차원에서 전공의 신원 파악을 위해 각 병원에 파견됐다.



brunch@heraldcorp.com
go@heraldcorp.com


랭킹뉴스


COPYRIGHT ⓒ HERALD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