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 일리노이 공장 야적장에 주차된 리비안 전기 픽업 차량들 [AFP]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한때 테슬라 대항마로 주목 받았던 전치가 스타트업들이 수요 둔화로 위기를 겪고 있다. 시행 착오를 극복하고 이제 막 대량 생산 체제를 갖췄지만 시장 냉각이라는 복병을 만나면서다.
미 증시에 상장된 전기차 스타트업인 리비안 오토모티브와 루시드는 최근 일주일 간 주가가 각각 38%, 19% 하락했다. 이들 기업의 주가를 끌어내린 것은 올해 생산 목표에 대한 시장의 실망이었다. 전기 픽업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을 생산하고 있는 리비안은 올해 5만7000대의 차량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지난해(5만4000대)와 거의 대동소이한 규모며 월가 기대치였던 8만대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루시드의 생산 목표는 지난해보다 소폭 증가한 9000대에 그쳤다.
두 기업 모두 생산 목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생산 자칠 때문이 아니라 수요 부족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미 대량 생산 설비를 갖췄지만 생산되는 차량을 전부 팔기에 수요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블룸버그 산하 에너지조사기관 BNEF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자체는 늘고 있지만 성장 기울기는 뚝뚝 떨어진다. 2021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650만대로 2020년(320만대)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했다. 2022년에는 전년 대비 61% 늘었으나 지난해 성장률은 33%에 그쳤다. BNEF는 올해 이보다 더 낮은 21% 성장에 그칠 것으로 봤다.
리비안의 경우 일리노이주에 연 2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갖추고 있으며 2026년 연 4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조지아주 공장 신설을 발표한 바 있다.
전기차 스타트업 루시드의 차량들이 지난 2021년 첫 인도에 나섰다. [로이터]
루시드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공장 ‘AMP-1’에 연 35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고 이곳에서 부분적으로 조립된 키트를 사우디아라비아 공장 ‘AMP-2’에서 완성하는 반조립(SKD) 형태로 연간 5000대를 생산할 체제도 갖췄다. 사우디 공장의 생산량은 연 15만5000대로 늘릴 계획을 세웠다.
RJ 스카린지 리비안 최고경영책임자(CEO)는 콘퍼런스콜에서 “우리의 올해 주요 초점은 (생산이 아닌) 수요 증진에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2분기까지만 해도 리비안은 생산량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리비안의 차량을 대기하고 있는 대기고객이 많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스카린지 CEO는 “우리는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낙관했었다.
그러나 이번 콘퍼런스콜에서 그는 “회사의 수주 잔고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현실의 벽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높아진 자동차 대출 금리를 원인으로 꼽았다. 에드먼즈 데이터에 따르면 신차 대출에 대한 평균이자율은 지난 2021년 말 4%대에서 지난달 7%로 크게 올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정책 영향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PIF)의 투자를 받으며 각광을 받았던 루시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피터 로린슨 루시드 CEO는 “제약을 받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판매와 배송”이라고 강조했다.
루시드는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 위해 배터리와 모터 기술을 다른 자동차 업체에 라이센싱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포드나 제너럴모터스(GM) 등 기존 자동차 제조업체의 경우 줄어드는 전기차 수요를 내연기관 차량이나 하이브리드 차량의 판매를 늘리면서 대응할 수 있지만 전기차만 생산하는 전기차 스타트업들은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결국 리비안과 루시드는 가격 인하로 눈을 돌렸다. 루시드는 에어 세단 모델의 시작가격을 10% 인하했으며 리비안은 전 모델의 최저 옵션 가격을 4% 인하했다.
그러나 가격 인하는 스타트업들에게 또다른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가뜩이나 제한된 현금흐름을 더욱 옥죌 수 있기 때문이다. 리비안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79억달러로 1년전 116억 달러에서 큰폭으로 감소했다.
루시드 역시 14억 달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해 1년만에 3억 6500만 달러가 감소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존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보다 저렴한 전기차 라인업을 도입할 경우 전기차 스타트업들의 입지는 더욱 악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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