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보다 잘 나가는 하이브리드…도요타의 ‘선견지명’?
2024-02-27 15:57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차량 ‘프리우스’. [사진=도요타]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지난 1997년 일본 자동차 제조기업 도요타가 세계 최초의 양산형 하이브리드차(HEV) ‘프리우스’를 출시했을 당시 도요타는 투자자와 환경론자 모두에게 비난을 받았다. 배터리와 내연기관을 결합한 하이브리드차는 순수전기차(BEV)에 비해 수요가 적고, 환경에도 도움이 덜 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은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차 1위 기업으로 올라섰고, 이제는 다른 자동차 업체들이 도요타를 따라가는 상황이 됐다.

세계 친환경차 시장에서 순수전기차의 수요가 둔화하는 가운데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차 집중 전략이 재평가 받고 있다.

세계 자동차시장 조사기관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세계 주요 14개국에서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전년보다 30% 늘어난 421만대를 기록하며 전기차 판매량 증가율(28%)을 2%포인트 앞질렀다.

도요타의 지난해 하이브리드차 판매 대수는 344만대로 전년보다 32% 증가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25년에는 하이브리드차를 500만대 이상 판매할 것으로 회사 측은 보고 있다.

자회사인 다이하쓰와 히노자동차를 포함한 도요타그룹은 지난해 세계에서 총 1123만대의 신차를 팔아 2020년부터 4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6일(현지시간) 자동차시장 분석업체 자토다이내믹스 자료를 인용, 지난 3년간 미국과 유럽에서 순수전기차 판매 증가세가 둔화했으며 영국에서는 신차 시장 내 순수전기차 점유율이 축소됐다고 전했다.

하이브리드차보다 더 비싼 가격과 충전 인프라 부족 때문에 소비자들이 순수전기차 구입을 주저할 것이란 도요타의 예상이 적중한 셈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와 순수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선호가 하이브리드차 시장을 빠르게 소멸시킬 것이라고 자신했던 아담 조나스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이달 “도요타에 사과를 빚졌다”고 인정했다.

자동차 정보업체 에드먼즈의 인사이트 책임자인 제시카 콜드웰은 “하이브리드차는 매력적이고 멋진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가교 전략으로 간과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배터리와 전통적인 엔진의 결합은 오히려 하이브리드차의 매력이 됐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하이브리드차를 통해 배출가스를 줄이는 동시에 지난 세기 동안 업계의 캐시카우였던 연소 엔진도 활용할 수 있어서다.

완전하이브리드차는 수익성이 매우 높으며 기존 엔진 전용차 또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의 이익률을 능가하는 두 자릿수 이익률을 나타내기도 한다. 반면 순수전기차는 종종 손실을 가져오고 있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친환경 중독자들에게 순수전기차 판매를 늘리고 더 많은 하이브리드차로 전환함으로써 지구에 매우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요타 로고. [사진=AFP]

하이브리드차의 약진으로 순수전기차를 고집하던 자동차업계에서도 계획을 변경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일본의 도요타, 혼다와 한국의 기아, 현대차가 하이브리드차 시장을 지배하는 가운데 미국 업체들도 이를 따라잡기 위해 분투 중이다.

제너럴모터스(GM)는 소비자들이 순수전기차를 수용하는 데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음을 인정하며 자사 제품군에서 대부분 폐지했던 하이브리드차를 재도입할 것이라고 지난달 밝혔다.

중간 기술로써 하이브리드차에 투자한 포드는 올해 하이브리드 모델의 판매량이 지난해의 두 배인 40%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짐 팔리 포드 CEO는 이달 투자자들에게 “우리의 데이터는 (순수)전기차가 많은 고객들에게 명확한 목적지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18개월 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하이브리드차는 우리 산업의 전환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장기간 이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집중 전략을 우려하던 투자자들은 지난 1년 동안 주가가 93% 상승하면서 보상을 받았다. 소수의 순수전기차 모델에 집중하는 테슬라의 주가는 같은 기간 1% 오르는 데 그쳤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M&G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이자 도요타의 주주인 칼 바인은 도요타가 최근 몇 년간 부당한 비난을 받았다고 평했다.

그는 “강력한 전기화 지지 로비와 일부 도요타 비평가들은 전기화에 대한 믿음이 약해졌음을 시사한다”면서 “도요타는 초기부터 ‘이 모든 것은 매우 복잡하다. 우리는 시간을 갖고 다양한 경로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고 전했다.

토요타 아키오 도요타 회장은 지난달 일본 재계 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래에 순수전기차 시장점유율이 최대 30%로 한계에 도달하고, 나머지는 하이브리드차와 수소차를 포함한 다른 유형의 차가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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