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전달한 복귀 시한인 29일 신촌세브란스 병원을 찾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안효정 기자
[헤럴드경제=김용재·안효정 기자] 정부가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전달한 복귀 시한 ‘디데이’에도 전공의들의 복귀 움직임은 뚜렷하지 않았다. 전날인 28일 일부 전공의가 복귀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전공의 공백으로 인해 의료 현장 시름은 깊어졌다. 정부와 의료계간 갈등 속에 환자와 보호자들의 ‘살려달라’는 아우성은 커지고 있다.
29일 서울성모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의료진과 환자들에 따르면 전공의들의 복귀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한 간호사는 “오늘도 2시간 넘게 오버타임해서 일하고 퇴근한다”라며 “다른 과는 모르겠지만, 우리 과에서 전공의들 복귀 움직임은 없다”라고 말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의 간호사 역시 “29일이 됐다고 전공의들이 복귀할 것 같지 않다”라며 “실제로 현장에서 복귀 분위기도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10일째 이어지면서 현장에 남은 환자와 보호자의 하소연은 커지고, 남은 의료진의 피로는 쌓여가고 있다. 암병동에서 만난 환자 A씨는 “갑자기 아픈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하려고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지 모르겠다”라며 “환자들이 ‘나 죽어간다’고 하는 목소리가 들릴텐데 (의사들이)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건가”라고 말했다.
한 입원환자 B씨는 “의사들 파업이 계속되면 갑자기 이때 아파서 돌아가시는 분들의 억울함은 누가 해소하나”라며 “환자들은 다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데 파업을 계속하는건 집단이기주의로만 보인다”라고 토로했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를 향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성모병원을 찾았다는 박모(61) 씨는 “정부가 복귀명령을 내렸는데도 의사들이 복귀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이건 환자를 다 죽이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현장을 떠난 사람들 의사 면허를 박탈해야 한다”고 분개했다.
세브란스 병원의 암 환자 보호자 C씨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 생명이 달린 일인데 그만두고 병원을 떠날 수가 있나”라며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게 병원 일이다. 최소한의 사명감이나 책임감도 없다고 보인다”라고 비판했다.
현장 의료인력의 업무 과부하도 심해지고 있다. 전공의 빈자리를 전임의와 교수들로 메우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보호자 D씨는 “간호사들, 교수들 낯빛을 보면 얼굴에 피로가 가득해 안타깝더라”라며 “일부 의사들이 자기들 챙기겠다고 파업해서 여러사람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집단사직하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제시한 복귀 시한을 하루 앞둔 28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 전공의 진료표가 비워져 있다. [연합]
병원들은 전공의들이 일부 복귀하는 경우도 있지만 행정처분을 피하기 위한 ‘눈속임’ 가능성도 있어 완전한 복귀로 보지 않고 긴장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들 복귀 움직임이 전혀 없다”라며 “일부 복귀한 전공의들도 곧 전공의 과정이 끝나기에 짐을 찾으러 오는 친구들 뿐”이라고 귀띔했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 역시 “전공의들의 개별적인 움직임을 파악하긴 어렵지만 복귀한 전공의는 상당히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다음달 4일 복지부 현장점검 결과가 나와봐야 구체적인 복귀 인원이 나올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여의도성모병원, 서울대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등도 공통적으로 ‘전공의 복귀 움직임이 없다’고 전했다.
정부는 복귀 마지노선 제시에도 상당수 전공의가 진료 현장에 복귀하지 않고 있기에 ‘사법처리’를 언급하며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날 각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자 등의 집에 직접 찾아가 업무개시명령을 전달했다. 그동안 우편이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등으로 전공의들에게 현장에 돌아올 것을 명령했으나, 마지막으로 ‘송달 효력’을 확실히 함으로써 사법 절차를 위한 준비를 마치겠다는 의미다.
복지부는 이 과정에서 전공의와의 마찰 등을 우려해 경찰 동행을 지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또 전공의들에게 이날 오후 서울 모처에서 직접 만나 대화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복지부는 박민수 2차관 명의의 공지글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표, 각 수련 병원 대표는 물론, 전공의 누구라도 참여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3월부터는 미복귀자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최소 3개월의 면허정지 처분과 수사, 기소 등 사법절차의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복지부가 고발하면 곧바로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병원에서는 전공의·전임의 공백을 전제해 일정을 조절하고 있다. 병원들은 외래 진료와 입원, 수술 등을 50%가량 미루거나 줄였다. 병원들은 환자 중증도에 따라 급하지 않은 수술과 외래는 모두 미루고 중증 응급환자만 받고 있다. 빅5 병원 등 현재 대다수 병원에 전임의들도 계약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3월부터 수련키로 한 인턴들마저 대부분 계약을 포기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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