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미국 증시 3대 지수로 꼽히는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나스닥지수와 더불어 일본 닛케이(日經)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다시 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학개미(서구권 주식 개인 소액 투자자)’와 ‘일학개미(일본 주식 개인 소액 투자자)’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 증시의 ‘엔진’ 격인 인공지능(AI)·반도체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SEIBro)에 따르면 최근 1개월(2월 2일~3월 1일) 일본 증시에서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단일 종목 중 국내 투자자의 순매수액 상위 1~4위 종목은 모두 AI·반도체주가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1위는 순매수액 728만달러(97억원)를 기록한 일본 반도체 장비업종 1위 업체 도쿄일렉트론이었고, 그 뒤를 반도체 세정 장비에 집중한 제조장비사 스크린 홀딩스(311만달러, 41억원)가 이었다. 3위와 4위는 각각 반도체 소자 제조업체인 어드반테스트(259만달러, 34억원)와 노광장비에 필수적인 마스크 검사장치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00%를 기록 중인 레이저텍(245만달러, 33억원)이었다. 7위도 반도체 노광장비 업체 캐논(217만달러, 29억원)이 자리 잡았다.
올 들어 스크린 홀딩스, 도쿄일렉트론의 주가 상승률이 각각 66.52%, 63.67%에 달했고, 어드반테스트(59.91%) 역시 60%대에 육박했다. 캐논(20.64%), 레이저텍(18.57%)의 주가 오름폭은 닛케이지수 연중 상승률(20.49%)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AI·반도체 열품의 시발점인 미국 증시에 대한 서학개미들의 관련주 매수 열기는 더 뜨거운 수준이다.
ETF까지 모두 살펴봤을 때도 순매수액 1위 종목은 3억8274만달러(5096억원)를 기록한 AI·반도체 ‘대장주’ 엔비디아였다. 4일(현지시간) 종가 기준 엔비디아 주가의 올해 상승률은 76.96%에 이르렀다.
이 밖에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순매수액 1억3460만달러(1792억원)로 3위, ARM이 7089만달러(944억원)로 6위였다. 두 종목의 연간 주가 상승률은 각각 11.88%, 100.25%였다. 엔비디아 주가를 1.5배로 추종하는 ‘그래나이트셰어즈 1.5X 롱 엔비디아 데일리 ETF’가 6335만달러(843억원)으로 7위에 이름을 올렸다.
미·일 증시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AI·반도체주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그동안의 급등세에도 불구하고 추가 상승도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날 종가 기준 4만109.23으로 사상 최초로 ‘4만 고지’에 올라선 닛케이지수를 두고 일본 NHK 방송은 “상승 종목 수는 전체 상장사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며 과열에 대한 경계심보단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에 무게를 실었다. 일본 증권가에선 ▷중국 증시의 부진에 따른 반사이익 ▷일본 기업 구조 개선 성과 ▷엔저(円低) 현상이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을 호재로 들었다.
지난 4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한 일본 시민이 역대 최초로 종가 기준 4만 선을 넘어선 닛케이(日經)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가 나온 대형 화면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 중이다. 전날 닛케이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50% 오른 4만109.23으로 장을 마감했다. 앞서 닛케이지수는 올해 지속해 상승하며 ‘거품 경제’ 때인 1989년 12월 29일 기록한 장중 사상 최고치(3만8957)와 종가 기준 최고치(3만8915)를 지난달 22일 모두 갈아치웠다. [EPA]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닛케이)은 최근 일본 증시에 불고 있는 ‘포모(FOMO, 소외 불안 증후군)’가 닛케이지수를 더 높은 곳으로 밀어 올리는 주요 요인이라고도 꼽았다. 일본 최대 온라인 증권사인 SBI증권의 거래앱이 주식 거래를 위해 로그인하려는 투자자들로 시스템이 다운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얼라이언스번스타인 애널리스트들은 일본 가계가 자산 2%만 주식으로 돌려도 시장에 약 1500억달러(200조원)의 자금이 유입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미국 증시에서도 4일(현지시간) 주요 3대 지수가 고점 수준에서 하락 마감했음에도 불구하고, AI·반도체주만은 랠리를 이어갔다는 점도 눈 여겨볼 지점이다.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3.60% 급등한 852.37달러로 또다시 사상 최고치 기록을 경신했다. 이에 힘입어 미 증시 대표 반도체 지수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도 전날보다 1.06% 오른 4981.97로 역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주요 투자은행(IB)들은 미·일 증시에 대한 전망치도 잇따라 높여잡고 있는 상황이다. 미 S&P500 지수 전망치에 대해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기존 5000에서 5300으로, 바클리는 4800에서 5300으로 올려잡았다. 파이퍼 샌들러는 5250, 골드만삭스·UBS는 5200을 목표치로 제시했다. 일 닛케이지수에 대한 전망치는 씨티그룹 4만5000, 다이와증권 4만3000, JP모건 4만2000 등이다.
다만, 과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역시 전문가들 사이에선 조금씩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주가는 얼마나 더 오를까?(How high can markets go?)’란 표제에 풍선이 황소를 끌어올리는 디자인을 착용한 표지로 ‘증시 거품론’을 꺼내들었다. AI·반도체주 상승세를 뒷받침하는 각사의 실적이 ‘허상’은 아니라면서도 이코노미스트는 “흥분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엔비디아를 제외한) 아직 실적 확인이 안된 다른 반도체주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AI가 사회를 완전히 변화시킬 운명이라 해도 당장 어떤 회사가 돈을 벌 수 있을지 고르는 데 투자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채윤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닛케이지수의 경우 기업 실적을 바탕으로 밸류에이션을 추정했을 때 4만1000 선을 넘어서게 될 경우 너무 과도한 수준”이라며 “이번 달엔 ‘차익 실현’ 욕구가 현실화될 가능성 때문에 그동안 상승세를 주도했던 종목보단 저(低) 밸류에이션 관련 가치주를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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