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로이터]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백기’ 등의 단어를 써서 협상 필요성을 제기하자 우크라이나와 일부 유럽 동맹국들이 교황의 발언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밤 동영상 연설에서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격려하며 협상 중재에 관해 언급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악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모든 우크라이나인은 방어하려고 일어섰다. 기독교, 무슬림(이슬람교도), 유대인들 모두가 그렇다”며 “군과 함께하는 모든 우크라이나 사제에 감사드린다. 그들은 최전방에서 생명과 인류를 보호하고 기도와 대화, 행동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교회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며 “살고자 하는 사람과 당신을 파괴하려는 사람을 사실상 중재하려면 2500㎞ 떨어진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는 과거 하얀 벽들로 이뤄진 집과 교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러시아의 포탄에 그을리고 폐허가 됐다”며 “이것은 누가 전쟁을 멈춰야 하는지 매우 역력하게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10일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언급하며 “우리는 다른 어떤 깃발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2차 세계대전 당시 파이우스 7세 교황이 독일 나치에 맞서 행동하지 못했다며 “(바티칸은) 과거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고 목숨을 위해 투쟁하는 우크라이나와 그 국민을 지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적었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날 공개된 스위스 공영 방송 RTS와의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협상을 촉구하는 듯한 메시지를 내놨다. 교황은 “상황을 보며 국민을 생각하고 백기를 들고 협상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믿는다”며 “패배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을 볼 때 협상할 용기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중재자 역할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튀르키예가 그 예”라며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협상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에 dpa·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백기’ 발언이 우크라이나 동맹국들의 분노도 불렀다고 전했다.
라도슬라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은 이날 엑스에 “(러시아 대통령) 푸틴에게 자국군을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할 용기를 가지라고 독려하는 것이 어떠냐?”며 “그러면 협상할 필요 없이 평화가 당장 돌아올 것”이라고 적었다. 폴란드는 유럽에서 우크라이나를 정치·군사적으로 강력히 지원해온 국가 중 하나다.
에드가스 린케비치 라트비아 대통령 역시 엑스에 올린 글에서 “악에 맞서 굴복하지 말고 싸워서 물리쳐야 한다”며 “악이 백기를 들고 항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일 정치인들도 프란치스코 교황을 잇따라 비판했다. 독일 연방하원의 아그네스 스트라크 짐머만 국방위원장 이날 독일 푼케 미디어 그룹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피해자들이 백기를 올리기 전에 교황은 잔인한 러시아 가해자들이 죽음과 사탄의 상징인 해적 깃발을 내리라고 강력하고 분명하게 요청해야 한다”며 “가톨릭 신자로서 나는 그(교황)가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녹색당 소속 카트린 괴링-에카르트 연방의회 부의장도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 10년 동안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전쟁이 있었고 무수히 많은 사람이 살해됐다며 “당장 전쟁과 고통 끝낼 수 있는 이는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푸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단순히 항복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람은 침략자에게 그가 불법적으로 빼앗은 것을 주는 것”이라며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멸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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