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커의 전기차 ‘오션’. [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미국 전기차 산업이 수요 둔화로 위기에 봉착했다. 전기차 스타트업은 파산에 대비하고, 기존 완성차 제조업체들은 전기차 전환에 대한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전기차 스타트업 피스커(Fisker)는 파산보호 신청 가능성에 대비해 구조조정 자문들을 고용했다.
올해 현금이 바닥날 위험이 있다고 최근 밝힌 피스커는 컨설팅업체 FTI컨설팅, 법무법인 데이비스 폴크와 자문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 지난해 매출이 2억7300만달러를 기록했으며 부채가 10억달러 이상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아울러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상당한 의심이 있다”고 밝혀 이른바 ‘계속기업’에 관한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투자자들로부터 추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협상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새로운 제조 파트너를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피스커는 전기차 붐이 일었던 2020년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를 통해 상장한 회사로, 한때 주가가 고공행진했던 전기차 스타트업들 중 하나다.
지난해 6월 미국 구매자들에게 첫 번째 차량을 인도했으나 비슷한 시기에 미국 내 전기차 판매 성장 둔화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회사는 지난해 수요 전망치를 두 차례나 하향 조정하고, “경쟁 현실”을 이유로 가격을 인하했다.
지난달에는 서비스 및 소매 판매 부문을 위주로 전체 인력의 15%를 해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스커가 파산을 신청할 경우 BMW와 애스턴마틴 자동차 디자이너 출신인 헨릭 피스커가 설립한 자동차 회사 중 두 번째 파산이 된다. 첫 번째 회사인 피스커 오토모티브는 지난 2013년 파산을 신청했다.
피스커의 주가는 이날 종가 기준 32센트로 상장 이후 97% 이상 하락했다. 파산 대비 소식이 알려진 후 시간외거래에선 오후 8시 현재 종가 대비 15센트(-47%) 급락한 17센트에 거래되고 있다.
이 회사의 주식은 지난 1년 중 대부분 1달러 이하로 거래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될 위험에 처해 있다.
전기차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통 완성차 업체들도 전기차 전환 계획에 대한 속도 조절에 나서는 실정이다.
CNBC에 따르면 포드는 전기차 생산으로의 전환을 서두르는 대신 하이브리드 차량 생산과 판매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마린 기아야 포드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전기차 시장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지만 2021∼2022년과 같은 성장 속도는 아니다”라고 CNBC에 말했다.
미국 완성차 업체 중 가장 먼저 전기차 전환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했던 제너럴모터스(GM)도 방향을 바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생산 계획을 밝혔다.
독일 폭스바겐그룹도 미국에 하이브리드 모델 출시를 검토 중이다.
파블로 디시 폭스바겐 아메리카 최고경영자(CEO)는 “균형 잡힌 접근법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약 120만대로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7.6%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판매 비중이 2030년까지 30∼39%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이 실현되더라도 그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샘 피오라니 오토포어캐스트솔루션즈 부사장은 “전기차로의 시장 전환은 절대로 부드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조기 사용자들의 수요가 충족되고 나면 전기차 전환 속도는 둔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가에서는 전기차 시장을 선도해 온 테슬라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하고 있다.
콜린 랭건 웰스파고 애널리스트는 이날 보고서에서 테슬라에 대해 “성장 없는 성장주”라고 평가하며 투자의견을 ‘매도’로 하향 조정했다.
그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완만해졌다면서 올해 테슬라의 판매량이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고, 내년에는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비관론이 커지면서 테슬라의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약 30% 급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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