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알프스의 청정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들의 세상은 모계사회이다. 암소가 여러 남편과 자식을 거느리며 족보를 지키고 계승한다.
봄만 되면 알프스 암소들의 여왕쟁탈전이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이 과정을 거쳐 좋은 혈통은 계승된다.
특히 스위스 남부, 발레(Valais) 주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품종의 족보 있는 소, 에렝(Héréns) 혈통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뛰어난 혈통이기에 이를 지키기 위한 암소들의 파워는 대단하다.
봄이 되면, 가장 뛰어난 암소를 혈통 계승의 주역으로 삼고 싶다는 목장주의 바람과 “내가 제일 잘 나가” 하면서 여왕이 되려는 에렝 암소의 본능은, 그 목표가 같다.
알프스 목장의 대혈투, 여왕쟁탈전을 대한민국 축구 감독 보다 더 긴장하는 소 주인들
특히 다른 나라 보다 긴 스위스의 겨울 내내, 우리 안에서 저장해둔 음식만 먹고 살았던 암소들이 봄을 맞으면, 삶의 터전인 초원 조차 잠시 서먹하고, “저 나대는 처녀소, 쟨 뭐지?”라고 경계하면서 눈을 치켜뜨게되는, ‘계절적 요인’도 작용한다.
그래서 에렝 암소들의 봄철 여왕쟁탈전은 아무런 자극 없이 자연적인 본성에 의해 유발하는 것이 특징이다.
겨울 동안 갇혀있던 헛간 생활에서 풀려나는 봄이 되면 알프스 목초지로 방목 생활을 떠나게 되는데, 그 무리 중 우두머리이자 무리의 여왕을 선별하기 위한 소 끼리의 챌린지가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것이다.
“하이고, 언니들 무서버라. 난 갈란다”
싸움이 시작되면 암소들은 즉석에서 자기의 상대를 결정한다. 갑자기 풀 뜯기를 멈추고는 머리를 낮추고 콧김을 뿜으면서 발굽으로 땅을 차면서 싸움은 시작된다.
힘이 비슷한 상대가 도전을 받아들이면 전투 자세를 취하며 서로에게 가까이 접근해서는 본격적인 싸움에 돌입한다.
머리가 충돌하고 뿔이 맞물리며 하나가 세게 밀면 밀수록 다른 녀석은 점점 뒤로 밀려난다. 승부가 끝나면 진 녀석은 방향을 바꾸어 달아나고 이긴 녀석은 뿔로 받으면서 따라가는 것으로 싸움의 승패가 갈린다.
스위스 발레 주 최고 암소 가리기, 결승전
이렇듯, 격렬한 싸움을 통해 무리를 알프스 목초지로 리드할 여왕 소가 결정된다.
좋은 혈통을 이어가는 이 자연스러운 암소들의 챌린지는 축제가 되었다. 오는 5월 11~12일 진행되므로, 호기심 많은 여행자라면 이 때에 맞춰, 이 희귀한 구경거리를 보는 스위스 남부 여행을 준비할 만 하겠다.
암소 싸움의 결승전은 아니비에르 계곡(Val d’Anniviers)에 있는 아프로츠(Aproz)에서 개최된다.
여러 지역에서 예선을 거친 암소들이 최고의 여왕을 가리기 위해 아프로츠로 모이게 된다.
“돈 워리! 끝나면 평화야”
잔치엔 먹거리와 흥 놀이판이 빠질 수 없다. 암소들의 결승전 이외에도 전통 먹거리가 있는 장터가 들어서고, 동네 사람들의 잔치가 벌어진다. 이 고을 미래를 약속하는 날이기에 최고의 축제이다.
한바탕 싸움이 끝나면 암소들은 질서와 평화를 찾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청정 초원 위에서 풀을 뜯는다. 어느 노래 처럼 ‘걱정 소리 하나도 들리잖고, 구름 한 점도 없는 그곳’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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