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 잡아야 뿌리 뽑는데...처벌 법안은 아직 계류 중
2024-04-16 11:08



21세기 ‘목화씨’로 불리는 반도체 등 첨단기술과 전문인력의 잇따른 해외 유출로 국익 침해 우려가 커진 가운데 21대 국회 회기가 끝나기 전 단 하루 열리는 법제사법위원회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경찰과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가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산업기술보호법)’이다.

개정안의 주요 골자이지만 기업의 반발이 큰 ‘국가핵심기술 판정신청통지제’를 들어내고서라도 일단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산업부가 각오를 다졌다는 후문도 돈다.

16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산업부가 제출한 법안을 비롯해 13개 의원안을 병합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법사위에서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21대 국회 임기는 다음달 29일까지이며 그 사이에 하루 열리는 법사위에서 통과되어 본회의에 상정되어야만 산업기술 유출을 엄단할 수 있게 된다.

산업기술유출 사건 등 안보수사를 담당하는 경찰 역시 브로커 처벌 조항이 개정안에 신설된 만큼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브로커는 기술유출당사자를 경쟁 기업에 소개·알선·유인하는데, 이직하는 직원이 받을 연봉의 10%~30%를 커미션(수수료)으로 받을 정도로 보편적인 이직시장의 헤드헌터와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이들 기술유출 브로커는 범행 의도가 없던 직원에게 접근해 높은 연봉, 주거 및 차량 지원 등의 당근책을 제안하며 이직을 꼬드긴다. 그렇기에 수사기관과 피해기업이 브로커를 바라보는 시각은 기술유출 당사자를 만든 ‘또 하나의 정범(正犯)’에 가깝다.

하지만 브로커를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한정적이었고, 처벌 역시 솜방망이에 그쳤다.

안보수사를 오래 담당해온 한 수사관은 “이론적으로는 산업기술보호법상 기술유출의 방조범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구성요건 등이 엄격해서 실제 사건에 법을 적용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브로커들은 수사기관에 덜미를 잡히면 이직을 알선한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직원이 기술을 빼낼 줄은 전혀 몰랐다면서 자신은 절대 방조범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항변하기 일쑤다.

때문에 경찰이 대안으로 삼은 것이 직업안정법이다. 직업안정법은 유료직업소개 사업을 하면서도 고용노동부에 등록하지 않았을 때 처벌하는 혐의다. 무등록 브로커라면 쉽게 걸려든다. 하지만 브로커들이 올리는 수입에 비해 직업안정법이 내리는 처벌수위는 매우 낮다. 무등록 직업소개사업 행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전부다.

지난 2018년 국내 유수의 디스플레이 업체에서 일하던 연구원이 경쟁자인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업체에 ‘플라스틱(Plastic) OLED 보상회로 설계 자료’ 등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하도록 알선한 브로커 최모 씨는 직업안정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이마저도 형이 과하다고 항소해 2심에서 1년2개월로 감형받았다. 최씨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총 43회에 걸쳐 국내기업에서 근무하던 43명의 연구원을 중국 기업들에 소개하고 그 대가로 531만7141위안, 한화로 약 8억7732만원 상당의 소개료를 챙긴 것과 비교하면 징역 1년2개월은 그야말로 솜방망이다.

한 경찰 간부는 “브로커를 잡아야만 궁극적으로 산업기술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산업스파이도 ‘간첩’에 해당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경찰은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 제14조 6호에 신설된 브로커(기술유출 행위를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 처벌 조항(36조 1·2·3항)이 반갑다. 국가핵심기술 해외유출의 경우에는 3년이상 징역 및 65억원 벌금(병과)을, 산업기술의 해외유출의 경우에는 15년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 벌금을, 일반적인 국내유출의 경우 10년이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물릴 수 있다고 명시한다.

브로커 처벌조항이 신설되면 주요 선진국중에서 우리나라가 최초다. 개정안 발의 과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에만 브로커 처벌 별도 조항이 생긴 것은 그만큼 그 어떤 서구 선진국들보다도 우리나라에서 브로커가 일으키는 침해행위가 잦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브로커가 활개치면서 기술유출사건은 매년 증가세에 있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외 산업기술 유출사범은 △2021년 89명(국내유출 80·해외유출 9) △2022년 104명(92·12) △2023년 149명(127·22)으로 매년 증가세다. 해외유출의 경우 열에 아홉은 중국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국가핵심기술(13개 분야)을 해외 유출한 사례도 2021년 10건, 2022년 4건, 2023년 5건, 2024년(1분기) 1건으로 집계된다.

수사기관을 거쳐 전국 법원 1심에 회부된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도 ▷2018년 30건 ▷2019년 29건 ▷2020년 21건 ▷2021년 32건 ▷2022년 43건 ▷2023년 27건으로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술유출범들은 최대 징역 2년을 선고받는데 그친다. 다만 올해 7월 1일 이후 공소 제기된 사건부터는 강화된 새 양형기준에 따라 처벌수위가 올라갈 예정이다. 국가 핵심기술 등 국외 유출 범죄는 최대 징역 18년까지 선고하는 것이 권고된다. 이민경·이용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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