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의 곰 농장에 갇힌 반달가슴곰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곰 한 마리에 2000만원이라고 하니…, 과도한 요구죠”
곰 사육과 도축을 금지한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지난 1월 마련되면서 오는 2026년부터 쓸개 등을 빼 먹을 목적으로 곰을 키우고 죽일 수 없게 됐다.
국내 남은 사육곰들은 280여 마리. 그러나 이중 몇 마리나 철창 밖에서 새 삶을 살게 될 지는 장담할 수 없다. 곰 구조라는 건 결국, 사육 곰 농가들로부터 매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곰 농가들이 곰 구출과 보상 명목으로 곰 한 마리 당 최대 2000만원을 부르면서 동물단체들과 지지부진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당장 곰 구출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건 동물단체들과 곰 사육 농가들이지만, 이들은 모두 정부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곰 사육 산업 자체가 정부 주도로 장려됐던 만큼 농가 퇴로도 정부가 적극 마련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남 나주의 곰 농장에 갇힌 반달가슴곰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제공]
29일 환경부와 관계기관, 4개 동물단체(동물자유연대, 동물복지연구소어웨어, 동물권행동카라, 곰보금자리프로젝트), 사육곰협회가 곰 사육 종식을 위한 구체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민·관협의체 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는 곰 구출 비용을 두고 동물단체들과 곰 농가들의 간극을 좁히는 데 집중됐다.
문제는 곰 구출 비용이다. 곰 사육이 법으로 금지되면서 곰 농가들은 오히려 곰 가격을 올려버렸기 때문이다. 물러날 데가 없는 만큼 환경부가 나서서 곰 구출은 물론 농가들의 폐업까지 보상하라는 의미다.
법이 마련되기 이전에는 동물단체들이 더 이상 곰을 사육하고 싶지 않은 농가들을 대상으로 개별적으로 곰들을 구출해왔다. 이렇게 동물단체들의 사설 보호시설에 머무르고 있는 곰들은 약 40여 마리. 이들을 구출했던 가격은 500만원 이하로 알려졌다. 현재 곰 농가에서 요구하는 가격의 4분의 1 수준이다.
강원 화천군의 사육곰 보호시설에서 살고 있는 반달가슴곰 미소. 주소현 기자
동물단체들이 곰 구출의 전면에 나선 건 곰 사육 금지가 법제화되기 이전 환경부와 동물단체, 곰 농가들이 했던 약속 때문이다.
곰 사육 종식 이후 남겨질 곰들의 보호와 관리 방안을 두고 환경부와 동물단체, 곰 농가들은 2022년 1월에 마련된 ‘곰 사육 종식을 위한 협약’을 맺은 바 있다. 협약에 따르면 환경부는 곰 보호시설의 조성과 운영을, 동물단체들은 정부가 마련할 보호시설로 곰들의 안전한 이송을 맡았다. 곰 농가들은 그때까지 곰들의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관리를 약속했다.
이 협약에 따라 정부는 충남 서천군과 전남 구례군에 사육곰을 비롯해 오갈 데 없는 동물들의 보호시설을 짓고 있지만, 곰들의 몫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남은 사육 곰들은 18개 농가에 280여 마리다. 정부가 마련할 보호시설에는 곰들의 자리는 약 120개뿐이다.
환경부에서 다른 보호시설이나 동물원 등에 곰들의 거처를 마련하지 않는 한, 남은 곰들은 곰 사육과 도축이 금지됐는데도 꼼짝 없이 철창 안에서 생을 마감해야 할 처지다. 아니면 기존대로 동물단체들의 사설 보호시설에 곰들의 자리를 늘려야 한다.
이에 A단체는 “정부가 남은 280여 마리에 대해 농가에 보상을 하되, 정부 보호시설로 들어갈 120마리는 직접 매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원 화천군의 사육곰 보호시설에서 살고 있는 반달가슴곰 미소. 주소현 기자
정부는 이미 곰 농가들에 시설 개선과 사료비 명목으로 지급해왔다며 추가 지원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동물단체들에 따르면 그동안 곰 한 마리 당 들어간 지원금이 400만원 이상이라고 한다. 현재도 해마다 사료비로 50만원씩 지원되고 있다. 100마리 이상 곰을 키우는 농가는 연 5000만원 이상 지원금을 받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투입된 지원금을 감안하더라도 동물단체들은 농가들의 폐업 및 전업을 환경부가 나서야 한다고 본다. 농가 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정부가 곰 사육 산업을 육성했으니, 곰 구출 책임을 농가와 동물단체에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회의에 참석한 B단체는 “농사를 짓거나 돼지를 치던 농민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아 곰 사육 시설을 마련했다”며 “곰 사육에 대한 여론이 바뀌면서 20년 넘게 외면받아왔던 곰 농가들의 손해도 막심하다”고 덧붙였다.
강원 화천군의 사육곰 보호시설에서 살고 있는 반달가슴곰 미소. 주소현 기자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곰 농가에서 업종 전환과 폐업에서 정부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며 “구조 비용에서 간극을 좁히기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곰을 구출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2026년 1월 1일부터 곰 사육 및 도축이 전면 금지되므로 내년까지 남은 곰들의 자리를 옮겨야 한다.
이에 맞춰 환경부도 사육곰 구출 협의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이르면 9월까지 협의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올해는 분기 별로 회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곰 사육 종식을 선언한 2022년 1월 이후 민·관협의체 회의는 2022년 7월, 2023년 1월, 지난 1월에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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