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위축시키는 규제...“공익법인 상속·증여세 완화해야”
2024-05-20 11:20


기업이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할 때 적용되는 상속·증여세 부담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공익법인의 사회적 활동과 기부문화를 위축시키는 만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국경제인협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20일 ‘공익법인 활성화를 위한 상속세제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강조했다.

한경연은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강조되면서 기업이 공익재단을 통해 지역 사회나 국가가 당면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공익법인 주식 출연에 대한 세법상 규제가 공익법인 설립 및 활동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속·증여세 부담으로 인해 공익법인에 대한 기업의 주식 기부 등 사회적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국내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총액 5조원 이상) 소속 공익법인이 지난 2018년 66개에서 2022년 79개로 소폭 늘었지만 공익법인의 계열사 평균 지분율은 1.25%에서 1.10%로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익법인에 대한 주식출연 제한 규정은 1990년 말 상속세법 개정 시 도입됐다. 공익법인을 통한 변칙적인 상속·증여 가능성을 제한하고 공익법인의 지주회사화, 경영권의 우회지배 등을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은 공익법인이 기업으로부터 의결권이 있는 주식을 출연받는 경우 총 발행주식 수의 10%가 넘으면 초과분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한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과 특수관계에 있는 공익법인의 경우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가 일반 공익법인(10%)에 비해 낮은 5%가 적용되고 있다. 의결권주식의 5% 초과분은 상속세 과세가액에 산입하도록 강화한 것이다.

미국은 공익법인의 주식보유 한도를 해당 기업의 총 주식 중 20%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특정기업이 제 3자를 통해 지배하는 경우 35%까지 허용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공익법인의 주식보유 한도는 주식발행총수의 50%다. 주식보유 비율이 20% 이상일 경우 공익법인의 사업보고서에 해당 영리기업의 개요를 기재해 보고하도록 했다.

임동원 한경연 책임연구위원은 “우리 사회에서 공익법인의 역할 증대가 필요하나 공익사업의 재원인 기부 활동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공익법인 활동 위축은 사회 전체가 수혜자인 공익사업의 축소로 이어져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국제 자선단체인 영국 CAF가 발표한 ‘2023 세계기부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부참여지수는 38점으로, 142개 조사대상국 중 79위를 차지했다. 이는 전년(35점, 88위) 대비 소폭 상승한 수치이긴 하지만 미국(5위), 영국(17위) 등 주요국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순위다. 기부 중 유산 기부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0.5%(2018년 기준)에 불과해 다른 선진국(미국 8%, 영국 33%)에 비해 매우 저조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경연은 기업의 공익법인에 대한 주식 출연을 규제 대상이 아닌 공익사업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인정하고, 관련 상속·증여세법상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익법인에 대한 주식출연 허용 비율을 최소 15%까지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 공익법인 자금의 사회 환원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미국의 경우 2023년 세계기부지수에서 5위를 차지하며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한경협은 미국처럼 상속세와 증여세 개정을 통해 공익법인 설립을 독려하고 기부활동 확산을 유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웨덴 발렌베리의 경우 지주회사를 공익법인으로 지배하고, 기업승계가 공익법인을 통해 이뤄지는 방식으로 상속세 부담을 줄였다. 발렌베리 오너는 상속세 없는 공익재단 출연과 차등의결권 등을 허용받은 대신 고용을 유지하며 수익 대부분을 기부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경협은 일반 공익법인보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관련 공익법인의 재무 여건이 양호한 만큼 이들의 공익목적사업 지출을 늘리려면 주식제한을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동원 한경연 책임연구위원은 “공익법인에의 주식 출연 과정에서 과도한 세금 부담을 개선한다면 공익법인의 설립이 증가할 것이고, 기부 및 공익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라며 “발렌베리 사례처럼 기업 승계에 대한 반대급부로 공익법인의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이 이뤄진다면 공익법인은 정부가 세금으로 해야 할 공익사업을 대신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세제 지원은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현일 기자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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