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이 될 뻔한 비운의 스텔스헬기 ‘RAH-66 코만치’
2024-07-11 11:23


보잉-시코르스키의 RAH-66 코만치는 스텔스 기술을 결합한 무장 정찰용 고급 미군 군용 헬리콥터이다. AH-64 아파치를 위한 표적을 지정하도록 고안됐다. RAH-66 프로그램은 실전배치 되기 전에 2004년 취소됐다. [미 육군 홈페이지 캡처]

1982년 미 육군은 UH-1 이로쿼이 다목적 헬기와 AH-1 코브라 공격헬기, OH-6 카이유스, OH-58 카이오와 정찰헬기를 대체할 목적으로 소형 헬리콥터 시험(LHX)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뭔가 첫 단추를 잘 못 꾄 듯 목에 턱 걸리지 않습니까?

병력이나 물자를 수송하는 UH-1, 공격헬기인 AH-1, 정찰헬기인 OH-6와 OH-58의 기능을 모두 갖추고도 사이즈는 작아야 하는 소형 헬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니요.

미국은 그만큼 헬기가 절실했습니다.

소련은 10만대에 달하는 기갑전력으로 서방과 유럽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방어책으로 전차의 천적인 공격용 헬기를 다량으로 만들어 투입하기로 한 것이죠. 그래서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활약했던 AH-1코브라 공격헬기를 유럽에 대거 배치합니다.

미국의 이런 조치에 가만히 있을 소련이 아니었습니다.

헬기를 격추시킬 수 있는 맨패즈(MANPADS: MAN-Portable Air Defense System), 즉 보병 휴대용 대공방어체계를 널리 보급하면서 미국과 서방의 헬기에 대응했습니다.

특히 소련의 대공미사일은 눈으로 보고 쏘는 것이 아니라 탐색기를 이용해 유도미사일을 쏘는 것이어서 더욱 위협적이었죠. 때문에 미국은 이런 대공미사일을 피할 수 있는 스텔스기능을 갖춘 헬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대안을 놓고 열심히 연구하던 미국도 힘에 부쳤는지 이중 UH-1의 기능은 포기합니다. 대신 UH-1은 경량 다목적 헬기 프로그램인 LHX-U로 대체했습니다. 그래서 1988년 여러 업체에 공식 제안요청서(RFP)를 발행할 때는 공격/정찰헬기 버전을 제시했죠.

같은 해 10월 미 육군은 보잉-시코르스키와 벨-맥도넬 더글라스, 이렇게 2개 팀의 제안서를 받아들였습니다. 두 팀이 열심히 연구를 진행하던 중 미 육군은 1990년에 사업 명칭을 LH사업으로 바꿉니다.

이듬해인 1991년 4월, 미 육군은 보잉-시코르스키 팀과 6개의 시제기를 제작하는 28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 체결 후 이 헬기는 RAH-66 코만치라는 명칭을 받게 됩니다.

2년 반의 노력 끝에 1993년 11월 코네티컷주 스트랫퍼드에 있는 시코르스키 공장과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보잉 제조공장에서 첫 번째 시제기 조립이 시작됐습니다.

아마 미 육군도, 또 헬기를 제작하는 보잉-시코르스키도 만들면서도 뭔가 불안했을 겁니다.

보라매님들도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냉전의 붕괴는 신규 무기체계의 사형선고와도 같은 상황의 변화였습니다.


1994년 12월 9일 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공군의 F-22 전투기와 육군의 코만치 헬기, 해군의 새 공격용 잠수함 등 최신형 무기 생산계획을 감축하거나 연기시킴으로써 약 77억달러의 예산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줄인 국방예산은 병사의 급여를 인상하는데 사용됐고 코만치 헬기 시제기는 6대에서 2대로 줄었습니다.

코만치 헬기의 첫 시제기는 1955년 5월 25일 시코르스키 공장에서 출고됐습니다.

첫 비행은 같은 해 8월 중 실시할 예정이었지만 헬기 구조와 소프트웨어 개선 등의 문제로 지연돼 이듬해 1월 4일 플로라다 웨스트 팜 비치에서 약 39분 동안 이뤄졌습니다.

시제2호기의 첫 비행은 1999년 3월 30일에 진행됐습니다.

6대에서 2대로 줄어든 시제기가 이제 막 날개를 펴고 첫 비행을 하던 당시 미국 회계감사원(GAO)은 코만치가 “2008 회계연도까지 전체 항공예산의 거의 3분의 2를 소비할 것”이라며 이 프로그램에 대해 “심각한 의구심이 든다”고 보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막강한 능력을 자랑하는 코만치에 고무됐던 미군은 2006년 초도납품을 시작을 목표로 1200대 이상 구매하겠다는 계획을 유지했죠.

도대체 어떤 헬기였기에 미군은 코만치를 포기할 수 없었던 걸까요?

무엇보다 스텔스 기능 구현에 진심이었던 헬기였습니다.

구조에서부터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스텔스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동체 외부에 무장창을 없애고 전부 내부 무장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전투기처럼 이륙 후에는 랜딩기어까지 동체 내부로 숨길 수 있었죠. 전방으로 튀어나와 있는 기관포의 총열도 사용하지 않을 때는 뒤로 접을 수 있었습니다. 헬기 몸체의 재질도 복합소재를 사용해서 적 레이더 탐지를 어렵게 했죠.

여기에 더해 레이더 흡수 물질 코팅과 적외선 억제 페인트로 표면 처리를 했습니다.

엔진은 롤스로이스와 허니웰이 공동 투자해 설립한 LHTEC사가 개발한 T800-LHT-801 터보샤프트 엔진 2개를 달았습니다. 1560마력의 추력을 갖춘 이 엔진은 동급 엔진과 비교해 50% 이상 추력이 높았고 연비도 좋았습니다.

특히 엔진 배기가스를 냉각시켜주는 구조로 설계해 열추적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레이더에 잡히는 것에만 신경 썼던 건 아닙니다. 헬기는 특유의 로터 소음 때문에 멀리서도 소리로 위치를 파악할 수가 있죠.

때문에 코만치 헬기는 복합소재로 만든 5개의 블레이드로 메인로터를 제작했고 로터 구동축에 베어링을 사용하지 않아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테일 로터도 덮개로 덮어 소음을 줄이고 방탄효과도 높였죠.

이런 노력으로 적외선 탐지를 어렵게 함은 물론 레이더 반사면적을 AH-64 아파치 헬기에 비해 1/660로 줄일 수 있었고 소음도 자동차 소음 정도인 63~72㏈ 정도로 비교적 낮출 수 있었습니다.

방호력도 뛰어났습니다. 동체는 23㎜기관포를 견딜 수 있었고 가장 취약한 테일 로터도 12.7㎜탄을 맞아도 버틸 수 있었죠.

조종석은 화생방 상황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완전하게 밀폐된 환경에서 가압 공기조절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었고 플라이 바이 와이어와 디지털화된 디스플레이로 조종사의 임무부담을 덜어줬습니다.

전자장비는 F-22 전투기를 축소시켜놨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조종사 헬멧에 각종 감지센서가 탐지한 정보가 표시되고 야간투시장치와 GPS, 피아식별장치와 3차원 무빙 맵이 있어 아파치 헬기와 같은 성능의 야간전투능력을 보유했습니다.

무장은 3개의 총열에서 20㎜ 탄을 분당 750발에서 1500발 발사할 수 있는 XM301 기관포를 장착했고 여기에 쓰일 기관포탄을 최대 500발 적재할 수 있습니다.

내부 무장창에는 AGM-114 헬파이어 공대지미사일 6발이나 AIM-92 스팅어 공대공미사일 12발을 탑재할 수 있죠.

스텔스기능을 포기하면 외부 날개에 헬파이어 미사일 8개나 16개의 스팅어 미사일을 추가로 장착할 수 있습니다.

항속거리는 2200㎞, 최고시속은 300㎞가 넘었습니다.

미군은 이런 코만치 스펙에 감격해 2000년 6월 1일 31억달러 규모의 엔지니어링 및 제조 개발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두 대의 시제기는 2002년까지 각각 287시간과 103시간의 비행테스트를 거쳤고 야간임무와 무장테스트도 통과하며 최고시속 319㎞ 돌파와 5초 이내 180도 선회 능력도 입증했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2002년 코만치 프로그램을 재편하고 구매 대수도 1200대에서 650대로 삭감했습니다.

구매대수를 줄이면서 가격은 상승했지만 헬기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2003년 코만치의 3번째 시제기 제작이 시작됐고 8대의 코만치 헬기를 만들어 추가 시험비행을 이어갈 계획이었죠. 하지만 2004년 2월 23일. 미 육군은 자금부족을 이유로 코만치 헬기 프로그램을 취소한다고 발표합니다.

대신 그 돈으로 현재 보유하고 있는 노후화한 공격, 수송, 정찰 헬기를 업그레이드하기로 하죠. 또 UAV, 무인항공기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한 자금으로도 사용한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20년 동안 69억달러를 들여 좋다는 기술은 모두 모아서 최고의 헬기를 만들어 놓고 프로그램 자체를 폐기하게 된 것이죠.

미군은 이후에도 이미 20억달러가 들어간 차세대 미래 공격 정찰헬기(FARA)사업을 취소시키기도 했습니다.

정말 헬기의 시대는 종말을 맞은 걸까요?

올해 전력화를 앞두고 있는 LAH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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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현 기자



legend19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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