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벤처 신화’ 김범수 구속…수장 없는 ‘위기의 카카오’
2024-07-23 10:21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아온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22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리는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IT벤처 신화로 불리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가 전격 구속됐다.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인수 과정에서 시세조종에 개입한 혐의다. 향후 검찰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전날 오후 2시부터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는 김 위원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서울남부지법 한정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3일 오전 1시께 “증거인멸 및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IT 대기업 창업주가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엔터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쟁사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엔터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설정하고 고정할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는다. 특히 검찰은 카카오가 지난해 2월 16~17일과 27~28일 등 총 나흘간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원아시아파트너스와 함께 약 2400억원을 동원해 553차례에 걸쳐 SM엔터 주식을 고가 매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검찰의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청구서에는 김 위원장이 지난해 2월28일 하루 동안 1300억원 상당의 SM엔터 주식을 매수하는 데 관여했다는 혐의만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일각에선 검찰이 원아시아 측과의 공모 관계는 규명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날 헤럴드경제 취재 결과, 검찰 내부에선 그룹을 총괄하는 김 위원장이 2월28일 하루만 시세조종에 관여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보는 것으로 파악됐다. 즉 구속영장청구서에 적시된 세부적인 날짜는 김 위원장의 혐의 입증에 중요 부분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검찰은 지난 17일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도 김 위원장의 시세조종 공모 혐의와 관련한 충분한 인적·물적 증거를 확보했다고 자신했다.

앞서 영장실질심사에선 김 위원장의 구속 필요성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 양측이 치열한 법리 공방을 펼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 측은 200쪽 분량의 프레젠테이션 발표 등을 통해 구속 및 신병 확보의 필요성을 소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위원장의 승인 없이 카카오 그룹 차원의 주식 매입이 불가능한 점, 김 위원장이 SM엔터 주식 장내 매수와 관련해 최종 의사결정을 했다는 취지의 이준호 카카오엔터 투자전략부문장의 진술 등을 근거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변호인 측은 김 위원장이 대기업 총수인 만큼 도주의 우려가 적고, 이준호 부문장 진술의 신빙성 등을 근거로 영장 기각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로 김 위원장에 대한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당분간 수사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검찰은 최장 20일인 구속기간 동안 김 위원장을 상대로 구체적인 시세조종 지시 및 관여 여부 등을 수사해 기소까지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법조계 안팎에선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자본시장법상 리니언시(Leniency, 자진신고자 감면제)가 김 위원장의 영장발부에 핵심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니언시는 불공정거래 행위자가 수사 혹은 재판 과정에서 법 위반 행위를 자진신고하거나 타인의 죄에 대해 진술 및 증언하는 경우 형사 처벌을 감경 또는 면제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이 같은 제도는 개정된 자본시장법 제448조의2에 규정됐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김 위원장 바로 밑에 있는 핵심 관계자가 오너의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한 게 아닌가 싶다”며 “IT기업 특성상 업무지시나 공문이 남아있기 힘든 것으로 아는데, 사건이 이렇게까지 전개된 것을 보면 최소한 관계자 1~2명의 결정적 진술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구속은 혐의만 인정된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구속의 필요성이 인정돼야 하는 것”이라며 “결국 이 정도 규모의 사건은 거의 증거인멸 우려와 관련돼 있는데, 검찰이 증거를 상당히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기소된 이후에도 무죄를 강하게 다툴 것으로 예상한다”며 “섣불리 단정할 순 없지만, 보통의 시세조종과 다른 것이 전 국민이 카카오와 하이브의 SM 경영권 분쟁을 다 알던 상황에서 서로간 공개매수 과정에서 불거진 사건이라, 공개된 과정에서의 주식 매수가 시세조종으로 평가될 수 있을 지 여부가 법리적으로 치열한 다툼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선 김 위원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 비판하는 견해도 상당하다. 한 로펌 대표변호사는 “공개매수라는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항하는 장내 매수 등을 놓고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으로 처벌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은 굉장히 포괄적이고 자의적인 용어로 돼 있는 일반 규정이라 어떤 행위의 불법성과 동기, 목적 등이 명확하게 드러나야만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상적으로 자본시장법으로 처벌하려면 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을 기망해 개인적 이익을 편취할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이 사건에선 기망의 요소라는 게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카카오의 SM엔터 시세조종 의혹 수사는 지난해 10월과 11월 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이 김 위원장 등 카카오 경영진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기면서 본격화했다. 이후 검찰은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카카오 판교아지트 소재 카카오그룹 일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8개월 만인 지난 9일 김 위원장을 비공개로 소환해 조사했다.

앞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도 김 위원장과 같은 혐의로 지난해 11월 구속 기소됐다 지난 3월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카카오 측과 공모해 펀드 자금 1100억원을 동원, SM 주식을 고가 매수한 혐의를 받는 사모펀드 운용사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 지모씨 역시 지난 4월 구속 기소됐다 22일 보석으로 석방됐다.

현재 서울남부지검에선 SM엔터 시세조종 의혹 사건 외에도 카카오엔터 드라마 제작사 고가 인수 의혹, 카카오모빌리티 콜 몰아주기 의혹, 카카오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 관계사 임원들의 횡령·배임 의혹 등 총 4건이 수사 대상이다.



y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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