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과는 지옥·경찰 탈출은 지능순”…경찰이 쓰러진다 [취재메타]
2024-08-01 10:04


전국경찰직장협의회가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연이은 경찰관 사망사건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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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박지영·김용재 기자] 최근 열흘 사이 수사부서 소속 경찰관이 극단적 선택을 한 비보가 잇따르면서, 경찰 내부에서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늘어난 업무량과 실적 압박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일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2019~2023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현직 경찰관은 113명으로 나타났다. 연평균 22.6명으로 한 달에 경찰관 1.9명씩 자살하고 있는 셈이다. 연도별 경찰관 자살자 수는 2019년 20명, 2020년 24명, 2021년 24명, 2022년 21명, 2023년 24명이었다. 올해는 6월까지 12명이다. 2018년 발표된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을 보면 경찰관 자살률(10만명당 자살자 수)은 20명 가량으로 소방관(약 10명)이나 집배원(약 5명)보다도 크게 높았다.

특히 최근 수사 부서 소속 경찰관의 극단적 선택 비보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관악경찰서 수사과 소속 30대 A 경위가 숨진 채 발견됐다. A 경위는 평소 주변에 ‘과로’를 호소했고, 사망 전 업무 부담에 따른 고충 등을 이유로 부서 이동을 신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6일에는 서울 혜화경찰서 수사과 소속 40대 B 경감이 동작대교에서 한강으로 투신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러한 배경에는 검경수사권 조정이 꼽힌다. 김종양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전체 사건 평균 처리기간은 검경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2021년 이전 60일을 넘기지 않았지만, 이후에는 매년 60일을 넘겼다. ▷2019년 50.4일에서 ▷2020년 55.6일 ▷2021년 64.2일 ▷2022년 67.7일 ▷2023년 63일로 길어지는 추세를 보였다.

처리 일수가 길어지면서 경찰의 수사 속도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장기 사건에 대한 압박도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는 지난 2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과·팀장 역량 평가 강화라는 미명 아래 평가 결과가 부적절할 때 과·팀장을 인사 배제 조치하고 장기사건 처리 하위 10% 팀장 탈락제를 운영해 수사관들에게 과도한 압박을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매주 금요일마다 수사 평가 결과를 공개하고 수사 감찰을 강화하는 등 현장 경찰관들의 압박감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며 “비번날에도 똑같이 나와 근무하고 휴일을 반납하고 일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울경찰청은 지난 16~26일 전체 31개 경찰서 가운데 1년 이상 장기사건이 많이 남은 경찰서 등 실적이 부진한 13곳의 현장점검을 계획하기도 했다.

일선서 경장은 “내부 시스템상 90일 이상이면 사건에 빨간불이 들어오게 되며 그 이 후는 장기사건 이유를 시스템상 등록 보고해야 한다. 한달동안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방치사건으로 분류하고, 검찰의 보완수사도 3달 이내에 이행해야 한다”면서 “이를 어길시 질책한다며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유사건이나 장기사건이 많으면 인사(전출)이동 제한되는 등 페널티도 부과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수사부서 경장은 “지휘부에서는 사건 수사기일이 90일이 넘는 순간부터 압박이 들어온다. 매월 경찰청과 지방청에서는 사건 보유건수가 가장 많은 팀을 선정하고, 다음 인사 때 팀장 자격을 박탈하는 명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면서 “반면 수사과 매분기 우수 수사팀 선정에는 기간 내 사건을 가장 많이 처리한 팀, 장기사건이 없는 팀, 사건 처리 속도가 신속한 팀이 선정된다. 팀장부터 팀원은 매일 극심한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고, 사건을 가지고 있어봤자 질책만 당하고 징계만 당해 사건을 덮어버리는 경우까지 있다. 수사과는 지옥”이라고 비판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가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연이은 경찰관 사망사건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조직개편으로 인한 현장 인력 감축도 업무과중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관기 경찰직협 위원장은 “기동순찰대도 112신고를 처리해야 하고, 형사기동대도 민원 업무나 고소·고발 사건을 접수하고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직 개편 때 요구했지만, 경찰청에서는 전혀 받아주지 않았다. 형사기동대를 고소·고발 사건을 처리 안 하는 인지 부서로 만들어, 현장에서는 인원 보강을 강도 높게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수사기관의 고소·고발 반려제도를 폐지하는 수사준칙 개정안 통과도 업무과중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접수된 고소·고발 건수는 18만94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6만4403건)에 비해 10.1% 증가했다. 반면 수사관은 2023년 3만7252명에서 올해 3만5917명으로 1335명 줄어들었다.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가 29일 오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질의답변서에서 조직개편 등을 통해 수사역량이 향상됐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조 후보자는 “인력증원과 조직개편, 특진 등 각종 사기진작책 시행으로 6개월 이상 장기사건 보유비율은 2023년 말에는 7.6%로, 올해 들어서는 5.8%까지 감소했으며 평균 사건처리기간 또한 2022년 3월 74.3일에서 올해 6월 57.9일까지 꾸준히 감소했다”고 했다.

현장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자조섞인 한탄만 나오고 있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은 “주변에서 ‘사방이 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판국”이라며 “젊은 경찰들의 죽음은 경찰 시스템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남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성토했다. 서울 중심관서에서 일하는 한 경찰은 “얼마나 더 죽어야 썩은 내부가 바뀔지 모르겠다”라며 “오죽하면 내부에서 ‘경찰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소리가 나올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비판이 이어지면서 경찰청장은 긴급 지시로 ‘현장 근무 여건 실태진단팀’을 꾸리기로 했다. 경찰청은 지난 26일 “연이어 발생한 경찰관 사망 사건과 관련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정밀한 실태 파악에 나서기로 했다”며 “현장 근무 여건 실태진단팀을 꾸려 구조적 문제점을 살펴보고 근무 여건 개선을 비롯한 사기진작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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