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여당은 대통령의 의중을 따르면 된다?
2024-08-29 11:17


본래 정당은, 대통령이나 대통령실보다는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정당은 여론의 최일선에 있는 존재라는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대통령 단임제를 하는 국가에서의 여당은 대통령보다 더욱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여당은 정권을 재창출해야 하는 의무감을 가지는 반면, 대통령은 임기를 잘 마무리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대통령도 정권 재창출에 관심을 갖는다면, 대통령 역시 여론에 대한 반응성이 높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정권 재창출보다 ‘역사적 평가’에 대한 관심이 더 높다면, 여당의 의견이 대통령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확률은 높아진다.

29일 윤석열 대통령은 연금·교육·노동·의료 개혁에 대한 입장을 국정 브리핑 형식으로 발표했다. 연금 개혁과 같은 문제는, 지지율 관리 차원에서 정권들이 선호하지 않는 주제다. 그런 주제를 과감히 추진한다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국정을 바라보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 매우 칭찬할 만하다. 내년도 예산 편성에서도 긴축 재정 기조를 유지한다고 하는데, 이런 측면도 평가할 만하다. 돈을 풀면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올라갈 것은 분명한데, 내년 예산 편성에서도 그런 기조를 유지한다는 것은, 저조한 지지율의 정권의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다.

문제는 의료 개혁이다. 현재 보도된 바에 따르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대통령실에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재논의를 건의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의료 개혁 문제를 접근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부분은 국민 여론이다. 국민들은 지금의 상황을 매우 불안하게 생각한다.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자”라는 얘기가 일종의 인사처럼 돼버린 것이 현실이라는 말인데, 이런 상황을 외면한 채, 먼 미래만 바라보며 의료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국민이 정치를 바라보는 기저에는 언제나 ‘자신의 이익’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익’이라는 존재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부터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의료 파행 때문에 이익 침해를 당하면서, 장기적인 국가의 방향성에 동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조건 이것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옳은 일이니 따르라는 말은 먹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에서,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여당의 의견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의문을 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타나 걱정이다. 대통령의 대국민 국정브리핑이 29일인데, 추석 이후에나 국민의힘 지도부와 만찬을 갖는다고 한다. 본래 만찬은 30일에 예정돼 있었는데, 이를 연기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여당 지도부와 만찬을 먼저 가진 이후 국정 브리핑을 해야 한다. 만찬을 하면서, 여론을 듣고 그 이후에 의견을 종합해 대국민 브리핑을 해야, 국정에 여론이 충실히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추석 이후에나 여당 지도부와 만찬을 하겠다니, 이는 여당은 토 달지 말고 대통령의 의중을 그냥 따라오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정치를 잘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여론에 대한 민감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귀를 열고 잘 들어야 한다. 국민은 언제나 옳다고 말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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