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 아이돌’ 현진영·노이즈·R.ef 이성욱 “저마다 개성으로 발전…문화는 부메랑”[인터뷰]
2024-08-30 17:57


노이즈 홍종구 한상일, R.ef 이성욱, 현진영 [마포문화재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안개비~ 조명을~ 하아 예에” (현진영, ‘흐린 기억 속의 그대’ 중)

청량하면서도 엣지 있는 고음이 스모그로 뒤덮인 무대 한가운데에서 솟아올랐다. 노래 가사처럼 희뿌연 허공을 가르고 등장한 그 시절의 아이돌 현진영이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1호 연예인이자 ‘SM상의 시초’를 만든 미소년. 그는 높이뛰기 선수 부럽지 않은 날렵한 몸짓으로 관객 앞에 착지한다. 소녀팬들이 금세 자지러진다. 지금 봐도 트렌디한 패션과 힙합 감성은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수학여행 장기자랑을 점령했다. 1993년 현진영은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방송 1위를 빼앗은 유일한 라이벌이었다.

“서태지 씨는 꾸준한 활동으로 ‘문화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안고 있는 분인데, 라이벌이라고 하면 제가 너무 송구하죠. 라이벌이라기 보단 같은 시기 활동했던 음악 동료 정도로 기억해주시는게 더 맞을 것 같아요.” (현진영)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용광로’였다. 뉴잭스윙과 힙합, 하우스 테크노 웨이브와 발라드, 트로트와 국악이 공존하던 시절이 있었다. 노이즈의 홍종구는 당시를 떠올리며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시대였다”며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졌고, 단 한 번뿐이었지만 가왕 조용필 선생님과 음악방송에 함께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홍종구의 이야기에 R.ef 이성욱은 “우리는 ‘세상은 요지경’의 신신애 선생님과 한 무대를 했다”며 “지금과 달리 그 시절의 음악방송엔 여러 장르와 다양한 연령대의 가수가 공존했다”고 돌아봤다.


현진영 [마포문화재단 제공]

유행은 돌고 돈다. 그 시절을 풍미했던 장르는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세대와 세대를 잇는다. 한국 대중음악계 ‘뉴잭스윙’과 ‘힙합’ 시조새인 현진영은 요즘 ‘현진스’(현진영+뉴진스)로 불린다. 최근 유튜브와 틱톡 등 각종 SNS의 쇼트폼에선 현진영의 또 다른 히트곡인 ‘슬픈 마네킹’ 무대에 4세대 K-팝 그룹 뉴진스의 ‘슈퍼 내추럴’ 음악을 입힌 영상이 화제다. “모르고 보면 현진영 노래의 리메이크인 줄 알겠다”는 댓글은 기본이다. 이젠 제목마저 ‘뉴진스를 너무 사랑한 현진영’이라고 달린다.

현진영도 응답했다. 팝핀현준과 ‘슈퍼 내추럴’ 커버 영상도 올렸다. 영상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현진영은 “SNS로 뉴진스의 꼬마팬이 DM을 보냈다”며 “‘뉴진스를 너무 좋아하는 팬인데 몸이 안 좋다. 아저씨가 뉴진스 언니들 춤추는 거 보고 싶다’는 메시지에 모른 척 할 수 없었다”고 했다.

Y2K 신드롬에 레트로 열기가 여전하다. 대중음악 황금기를 만든 그 시절 X-세대 ‘아이돌’이 돌아온다. ‘뉴잭스윙의 원조’인 가수 현진영, ‘이지 리스닝’의 선구자인 노이즈, 유럽 테크노의 정수를 보여준 R.ef의 이성욱까지…. 마포문화재단이 기획한 ‘M 레트로 시리즈 어떤가요 #10 추억의 댄스가수 특집’(8월 30일, 마포아트센터)을 통해서다. 이성욱은 “그 시절엔 ‘겸상’도 못했던 선배님들과 이렇게 한 무대를 설 수 있다는 것이 영광”이라며 “데뷔 3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우리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고, 함께 나이 들고 있는 팬들과 호흡할 생각에 무척 흥분된다”고 말했다.

“1990년대는 그야말로 춘추전국 시대였어요. 누가 앞선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음악이 나오면 마구 소비되던 때였죠. 그런 데서 하나의 곡이 히트를 하고 경쟁력을 갖는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의미라고 볼 수 있어요.” (노이즈 홍종구)

쌀가마니로 팬레터를 받던 시절이었다. 우체국에서 트럭 가득 편지와 소포를 매일같이 실어나르게 했던 당대의 슈퍼스타들이다. 한상일은 당시 “하루에 사인을 100장씩 해도 다 못하던 때였다”며 웃었다.

스케줄도 어마어마했다. 하루에 기본 7~10개의 스케줄을 소화했다. 신문 인터뷰와 라디오, 방송 일정에 지방 행사도 기본이다. 현진영은 당시를 떠올리며 “침대에서 잠을 자는게 소원일 정도”라고 했고, 이성욱은 “어떤 날은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잠을 자고 다음날 그대로 무대에 오른 적도 있다”고 했다.

엄밀히 구분하면 이들 중 가장 선배는 현진영이다. 1990년 SM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한 그는 대한민국 최초로 ‘아이돌 시스템’이 배출한 아티스트다.


노이즈 홍종구 한상일 [마포문화재단 제공]

현진영은 “1988년부터 성악을 기반으로 보컬과 관련한 기초 트레이닝을 받았고 체계적으로 안무를 연습했다”며 “하루 칼로리를 계산해 철저하게 식단을 짰고, 시간대를 정해 하루 3000칼로리를 소모한 뒤 음식을 섭취했다”고 돌아봤다.

탁월한 춤꾼이기도 했던 그는 ‘현진영과 와와’를 통해 강원래 구준엽(와와 1기), 듀스의 이현도 김성재(와와 2기), 지뉴션의 션(와와 3기)를 배출하기도 했다. 현재도 그는 80명의 작곡가와 프로듀서를 육성하는 엔터테인먼트사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를 통해 배출한 무수히 많은 그의 제자들이 K-팝 신에서 활동 중이다. 최근엔 ‘싱어게인’에 나온 신해솔이 보컬리스트로 첫 발을 디뎠다.

노이즈는 ‘천재 작곡가’로 명성을 떨친 천성일과 미성의 보컬리스트이자 작사가인 홍종구, 당대 댄스신을 주름잡던 춤꾼인 한상일 김학규가 만난 4인조 ‘자체제작 아이돌’이었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겸한 팀으로 1990년대 신승훈 김건모를 배출한 김창환 프로듀서의 라인뮤직 소속 아티스트였다.

홍종구는 “1990년대는 프로듀서 체제의 음악이 시작되던 때로 정확한 장르와 리듬 위주의 음악이 인기를 모았다”고 했다. 노이즈는 1992년 데뷔해 ‘너에게 원한 건’, ‘상상 속의 너’, ‘어제와 다른 오늘’ 등의 히트곡을 내며 1995년 최정점에 올랐다. 한상일은 “장르를 떠나 그 때의 인기와 파괴력을 지금의 아이돌 그룹과 비교한다면 어느 정도였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며 “체감으로는 지금의 방탄소년단 정도 아니었을까 싶다”며 웃었다. 한상일의 이야기에 홍종구는 손사래를 쳤다. “그 정도는 아니”라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 시절 노이즈는 음악방송 트로피를 30개 이상 챙겼고, ‘K-팝 성지’인 체조경기장에서 2회 공연을 열 만큼 엄청난 팬덤을 구축했다.

“그 시절 인기의 척도는 음악방송의 피날레를 누가 장식하느냐였어요. 노이즈는 언제나 음방 피날레를 도맡았는데 R.ef가 등장하며 그 자리를 내줬어요.(웃음)” (한상일)


이성욱 [마포문화재단 제공]

1995년 3월 데뷔한 R.ef는 일렉트로닉 기반의 레이브 스타일의 음악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1집의 앨범명 역시 ‘레이브 이펙트(Rave Effect)’. 타이틀곡 ‘고요 속의 외침’을 시작으로 ‘이별공식’, ‘상심’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듬해 내놓은 2집 ‘백 투 더 블랙’의 타이틀곡 ‘찬란한 사랑’은 ‘상심 Ⅱ’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다.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세계관 연결’이었다. ‘찬란한 사랑’은 수려한 외모로 소녀팬을 끌어모은 ‘격정 내레이션’이 엄청난 센세이션이었다.

이성욱은 당시를 떠올리며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당시에도 쉽지 않았지만, 내가 이 내레이션을 하면서 창피하다고 생각하면 보는 사람이 더 민망해진다”며 “정말 진심을 담아서 내레이션을 했다”고 말했다. 홍종구도 당시를 떠올리며 “성욱이가 한 퍼포먼스는 자칫 웃을 수도 있지만 당시 그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그 안에 진정성이 담겼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1990년대는 저마다 다른 장르의 댄스 음악이 공존하고, 다양한 색깔의 가수들이 서로의 개성을 살리며 시너지를 내던 때였다. 이성욱은 “유행을 좇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자기들만의 색깔로 만들던 시절이었다”며 “혹자는 외국 곡을 카피하던 시절의 음악이라고 폄훼하지만, 저마다의 장르를 각자의 개성으로 재해석해 대중음악신의 발전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X-세대 아이돌이 뭉친 이번 공연은 시대와 시대, 세대와 세대를 연결한 음악과 춤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이성욱은 “1990년대에 유행하던 춤들을 당대 최고의 춤꾼과 가수들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지금의 아이돌 못지 않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우리와 그 시절을 공유하며 웃고 노래하며 삶의 한 페이지를 꺼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화의 힘은 시대와 배경, 세대를 초월해 연결고리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뉴진스가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얻는 것에서도 그런 힘을 느껴요. 1990년대 뉴잭스윙을 즐겼던 세대가 나이를 먹은 지금 그 시절의 풍요로움을 그리워하며 뉴진스의 음악과 춤을 즐기고, 뉴진스를 좋아하는 10대들이 과거의 뉴잭스윙을 찾아보며 즐기는 것이 다르지 않죠. 그래서 문화는 부메랑이에요. 멀리 던져도 다시 돌아오죠. 그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이 될 거예요.” (현진영)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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