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운동권 대부’ 장기표 암 투병 중 별세…향년 78세 [종합]
2024-09-23 08:39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헤럴드 DB]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재야(在野) 운동권의 대부’로 불리던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유족 등에 따르면 담낭암으로 투병 중이던 장 원장은 경기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이날 오전 1시 35분께 숨을 거뒀다.

1945년 12월 경상남도 밀양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태어난 고인은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 사건’을 접하면서 본격적으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당시 고인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를 찾았고, 이 여사로부터 “우리 태일이가 그토록 대학생 친구 갖기를 바랐는데 죽고 나서야 나타나느냐”라는 한탄을 들었다. 이에 고인은 전태일 열사의 장례를 서울대 학생장으로 치르고 이후 ‘전태일평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 여사는 세상을 떠나던 2011년 “기표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진실하고 바르게 살려는 첫 사람이자 나에게는 영원한 스승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전태일평전’의 저자이자 ‘1세대 인권변호사’로 꼽히는 고(故) 조영래 변호사,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을 지냈던 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총사’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고인은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민청학련 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민중당 사건 등으로 수배와 도피를 반복했고, 10년 가까운 수감 생활을 했다. 수배 생활을 한 기간은 12년에 달한다.

하지만 고인은 민주화운동에 따른 보상금을 수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한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해 그는 “국민 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로 안 받은 것”이라고 했다.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1980년대부터 재야운동의 핵심 세력으로 떠오른 그는 1984년 10월 문익환 목사를 의장으로 종교인, 변호사, 퇴직 언론인 등이 참여하는 민주통일국민회의(국민회의)를 창립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국민회의와 민중민주운동협의회(민민협)의 통합을 이끌어 민주통일민주운동연합(민통련)을 창립했다.

재야운동의 한계를 느낀 고인은 1989년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며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1992년 14대 총선을 시작으로 15·16대 총선, 2002년 재보궐 선거, 이어 17·19·21대까지 총 7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으나 모두 떨어졌다. 21대 총선에서는 보수 계열 정당인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소속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에도 세 차례 나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평생 민주화운동, 학생운동,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에 헌신했지만 제도권 정계로는 진출하지 못하면서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최근에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을 만들어 저술 활동과 함께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에 집중했다.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도 활동했다. 고인은 지난해 1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사회적으로 대한민국이 엉망진창이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 씨와 딸 2명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다. 고인의 장례는 ‘장기표 선생 민주화기념사업회 장(葬)’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26일.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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