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부수지 않는다” 세계적 건축가의 ‘지속가능 건축’ [헤럴드디자인포럼2024]
2024-09-25 11:21


1960년대 건축된 파리 외곽 아파트 ‘부아르프레트르’타워 리모델링 [안 라카통 & 장 필리프 바살 제공]


프랑스 보르도 그랜드파크 인근에 지어진 한 낡은 아파트. 파리 외곽에서 활동하던 한 건축가 듀오는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60년 된 이곳을 바꿔나갔다.

그들은 건물 철거 대신 콘크리트 외벽을 뜯었다. 심지어 530여명의 입주민이 계속 거주하는 상태에서 작업을 했다. 그 누구의 일상도 건들지 않고 그렇게 작업한 지 3년, 그 집은 어느새 햇볕 가득한 새 건축물이 됐다.

“원래 있던 것을 부수지 않는다”는 신념, 안 라카통(Anne LACATON)과 장 필리프 바살(Jean Philippe VASSAL) 듀오를 상징한다. 이런 건축 철학은 생태적 위기를 맞은 현시점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듀오는 지난 2021년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의 수상자가 됐다.

그는 오는 10월 8일 서울 반도 세빛섬에서 열리는 ‘헤럴드디자인포럼 2024’에 연사로 참석, 그들의 건축 철학을 소개하며 건축 디자인의 미래를 조망한다.

그들은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본인들의 건축 철학과 관련, “이미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풍부한 가치가 내재돼 있으며 그것을 볼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대 프리츠커상 수상자의 작업물은 대부분 과감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밋밋하거나 소박하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준 지속가능한 건축은 재건축과 리모델링 분야에서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은 주변에 대한 애정을 담은 관찰로부터 이런 작업 방식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라카통과 바살은 “우리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보고, 관찰하는 일에 항상 호기심이 많았다”며 “품질이 낮다고 비판을 많이 받았던 1960년대 아파트들을 면밀히 관찰하며, 편견을 가지고 멀리서 볼 때는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1980년 프랑스 보르도 국립건축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서아프리카 니제르에서 몇 년간 건축가로 활동하며 지냈다. 이때의 경험도 지금의 작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라카통과 바살은 “니제르의 사람들이 기후에 맞춰 살아가는 법, 제한된 주변 재료들을 활용해 필요와 수단에 맞는 사물을 만들거나 건물을 짓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그 경험을 통해 우리는 마음을 열고, 건축과 그것이 주는 의미에 대한 사고를 넓힐 수 있었다”고 전했다.

2012년 파리의 ‘팔레 드 도쿄’도 원모습을 유지한 채 최소한의 재료를 사용한 그들의 대표작.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사용됐던 오래된 건축물에 단순 재료들만 지하 공간에 투입, 공간을 확충했다.

이곳을 처음 봤을 때, 텅 빈 채로 방치된 모습에 오히려 매료됐다. 두 사람은 “공사가 중단된 덕분에 건물의 내부 구조와 웅장한 공간 전체, 아름다운 자연광을 볼 수 있었다”며 “이 모습이 현대 미술관으로 변화시키기에 특별하고도 적합한 공간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주거용 건물 작업에서도 기존의 특징과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1960년대 건축된 아파트 ‘부아르프레트르 타워’ 리모델링이 대표작으로, 이곳은 바닥을 넓혀 각 가구에 발코니를 설치하고 면적도 늘렸다.

라카통과 바살은 “많은 도시에서 주택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에 아파트의 가치는 더 크다. 철거하고 재건축하는 것보다 재사용과 변형이 모든 면에서 훨씬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래된 주택이) 주거 공간, 기술, 에너지 절약 등의 품질이 더 이상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주택엔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재건축 천국’이라 불리는 국내 건축 풍토를 어떻게 평가할까. 라카통과 바살은 고밀화로 거주민의 삶을 개선하고, 더 많은 이들이 도시를 즐길 수 있다면 이 자체는 충분히 수익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들은 “이 과정이 독점적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건축이란 결과가 좋더라도, 그 과정에서 불평등이 심화되거나 특정 집단에 유리한 식으로 진행되면 안 된단 의미다. 또 “기존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도 밀도를 높일 수 있다”며 “이런 방식이 비용이 더 저렴하며 많은 부분에서 훨씬 더 흥미롭고 효율적이다. 그래서 건축가들이 필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건축업계에서도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친환경 건축’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이와 관련, “철거를 하지 않고서 가진 것을 재사용하고 보존하는 게 명백히 가장 환경친화적인 방식”이라고 되짚었다. 또, “새로운 자재나 시스템이 성능 향상에 유용할 수 있다”면서도 “새로운 자재를 고려하기 전에, 설계 단계에서부터 환경친화적인 행동과 책임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카통과 바살은 20대 중반 보르도 건축학교에서 만난 후 수십 년간 줄곧 함께였다. 두 사람은 각자 고유의 성격과 감수성을 지녔지만, 건축은 ‘관계와 교류에 관한 것’이란 대전제 하에 의견을 모아왔다고 귀띔했다.

이들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접근법을 비교하면서도, 항상 공통점을 찾아 함께 결정을 내렸다”며 서로 간의 견고한 신뢰와 존중으로 쌓아 올린 40여년간의 건축 인생을 평가했다. 고은결 기자



k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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