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체념하는 교사들…10명 중 7명 “사교육 받아야 점수 잘 나와”[무너지는 학교]
2024-10-07 09:20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1.“왜 계속 수업을 하세요.” 청주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22년차 교사 백모(48)씨가 학생들로부터 들은 말이다. 중간고사를 며칠 앞둔 시점이었다. 백씨는 시험 날짜가 다가올수록 학생들이 교사의 수업을 거부한다고 했다. 학생들은 수업 대신 ‘자습’하겠다고 요구했다. 학생들에게 자습시간을 주면 대다수가 학원 문제집을 풀었다. 백씨는 “진도를 천천히 나가면 학생들이 조급해 했다. 다른 선생님은 자습 시간을 주는데 왜 수업을 하느냐는 항의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2.경기도 하남 신도시의 한 초등학교에선 작년부터 보충 수업이 사라졌다. 한 반에 매년 5명 남짓은 학습이 느린 학생들이 발생, 이들을 대상으로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해오던 지도였다. 학부모들로부터는 ‘학원에 말해서 해결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 학교 교사 신모(33)씨는 “학원에 다닌다는 학생들이 실제로 진도를 잘 따라오고 있는지 들여다보면 전혀 아닐 때가 많지만 교사가 개입하기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회의감 짙어진 교실…교원들도 “사교육 받아야 대입·내신 성적 높아”

교실로 향하는 학생의 뒷모습. (사진은 기사 내 특정사실과 관련 없음) 임세준 기자

정부가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정작 학교 현장을 지키는 교사들 사이에선 사교육의 역할이 지배적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원들은 사교육을 받아야 내신과 대입 성적이 더 좋으며, 킬러문항 배제 등 사교육 경감을 위한 대책은 현장에선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여겼다.

헤럴드경제는 국회 교육위원회 강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및 교육 시민단체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전국 유·초·중·고등학교, 특수학교 교원 935명을 대상으로 지난 9월 11~25일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교원들 대부분은 학교 현장에서 이미 사교육이 공교육 역할을 넘어섰다고 인식했다.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그렇지 않는 학생보다 교과 성적이나 대학 입시에서 더 우수한 성과를 낸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47.6%(445명)은 ‘그렇다’고 답했으며, 25.2%(236명)는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교사 10명 중 7명꼴인 72.8%(681명)가 학생들이 이미 사교육에서 내신과 대입에서 효과를 더욱 크게 보고 있다고 본 것이다. 해당 질문에 ‘매우 그렇다’고 답한 비율을 학교급별로 보면 초등학교가 33.9%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중학교 21.8%, 고등학교 14.5% 순이었다.

학원 숙제 해야 해서…“수업 빨리 끝내 달라” 요구하는 학생들

학생들의 사교육 의존이 이미 커진 상황이다 보니, 학교에서도 문제풀이 이상의 교육은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게 현장의 이야기다. 대입을 앞둔 고등학교뿐 아니라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신씨는 “정규시간 외에 별도로 지도를 하려고 해도 학생들이 ‘학원에 가야 한다’며 거부하는 경우가 많고, 쉬는 시간도 모자라 정규 수업까지 빨리 끝내달라고 요구하며 학원 숙제에만 몰두하는 모습도 흔해졌다”고 전했다.

사교육 의존 현상으로 교원으로서 회의감을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35.5%(332명)이 ‘매우 그렇다’, 33.8%(316명)이 ‘그렇다(316명)’고 밝혔다. 조사 대상 교원 69.3%가 ‘회의감’을 느꼈다고 답한 셈이다. 교원들은 회의감을 느낀 이유에 대해 “학원에서의 선행학습으로 교실에서의 수업 태도 성실도가 낮다”, “사교육을 받기 위해 학교를 조퇴할 때 공교육이 학생과 학부모의 우선순위가 아님을 느낀다”고 답했다.

‘사교육과의 전쟁’ 1년…현장 반응은 미미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정부가 사교육 부담 경감을 위해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 배제’ 정책 방침을 밝힌 뒤 치러지는 두 번째 수능이다. 그러나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한다고 사교육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 보는 교사들은 많지 않았다. 대신 의대 정원 증원 정책으로 사교육 의존이 더욱 늘었다는 인식이 컸다.

킬러문항 배제 방침으로 수험생의 사교육 의존 현상이 완화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80.4%(752명)는 ‘전혀 그렇지 않다(434명)’, ‘그렇지 않다(318명)’고 답했다. 킬러문항 배제가 공교육 역할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도 73.1%(683명)가 ‘전혀 그렇지 않다(358명)’, ‘그렇지 않다(325명)’고 봤다.

반대로 의대 정원 증원이 초등학교에서 의대 준비반이 생겨나는 등 사교육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교원이 다수였다. 해당 질문에 교원 72.2%(625명)은 ‘매우 그렇다(418명)’, ‘그렇다(257명)’도 답했다.

교원들은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복수응답)으로는 69.2%(635명)이 ‘대학 입시 제도 전반의 개혁’이라고 답했다. 다음으로는 공교육 체계 자체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답변별로 보면 ‘교사 처우 개선’ 53.4%(490명), ‘공교육 환경 개선’ 51.1%(469명), ‘공교육 강화 및 질적 개선’ 45.2%(490명), ‘공교육 내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 확대’ 24.5%(225명) 등 순이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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