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앞 인사동’ 하마뫼누, 앙카라 MZ ‘핵인싸’[함영훈의 멋·맛·쉼]
2024-10-15 10:31

[헤럴드경제(앙카라)=함영훈 기자] 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 성채에서 1.5㎞ 남쪽에 있는 ‘하마뫼누( Hamamönü)는 돌궐이 오랜기간 서진해 이곳에 정착한 뒤 기존 토착민, 그리스·로마 문화 까지 입은 ‘오스만 투르크’ 시대를 시간여행하는 곳이다.

원뜻은 ‘목욕탕 앞’이다. 당연히 이 마을 어귀엔 오래된 함암 목욕탕이 있다.


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 MZ의 성지 하마뫼누 골목


마을의 상징 시계탑과 천막 아래에서 소일거리를 즐기는 중년 이상 어른들

목욕탕은 튀르키예 토착세력인 오구즈 부족 영주 중 한 명인 카라카베이가 지었고 이는 함암 이름이기도 하다. 목욕탕에 입장해서 탈의한 후엔 남자든 여자든 무릎 아래를 가린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남아있는 건축물은 19세기 것이다. 전통공예, 음식점 등이 즐비한 우리의 인사동 같은 곳이다.

시계탑 광장, 국립 메흐메트 아키프 에르소이 박물관 하우스, 문화예술의 집, 공예품 시장, 메흐메트 아키프 에르소이 공원이 하마뫼누 전통마을의 랜드마크이다. 시계탑 광장에선 하릴없는 어르신들이 가벼운 게임을 즐긴다.


카라카베이 전통 목욕탕 외관


카라카베이 함암 내부

앙카라 지방 문화 관광청은 “하마뫼누는 앙카라에서 문화 예술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 중 하나이며, 라이브 음악 콘서트, 영화 상영 등의 이벤트가 열려 많은 여행객들이 찾고 있다”고 소개했다.

건물 아랫부분을 튼튼히 하고, 굳건하게 기둥을 세운뒤 위쪽은 골목쪽으로 돌출되도록 공간활용도를 높인 오스만 시대의 건물 골격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가분수형 건축물인 셈이다.


한국인 일행에게 사진 찍어도 좋다고 허락한 앙카라 하마뫼누의 여인들


동피랑 느낌의 골목길

한국의 통영 동피랑같은 계단 채색도 보이고, 길거리 바리스타들의 커피끓이기 퍼포먼스도 이어지는 가운데, 많은 젊은 남녀들이 카페와 음식점에서 여유로운 휴식과 정담을 즐기고 있었다.

아트 스트리트의 유서 깊은 가옥에서는 전통 공예품을 다루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길거리에선 에코백, 바나나, 팝콘 등도 팔고, 풍류를 좋아하는 앙카라 사람들 답게 악기점도 있으며, 테라스에 모인 전세계 MZ세대들은 다채로운 패션을 자랑하면서 친구가 되어 재잘거린다.


팝콘 사는 소녀

중양(中洋=중동) 사람들이 절반 정도 되지만 히잡을 쓴 사람은 그 중의 절반 정도이다. 중동 여행객들은 다채로운 다채로운 색감의 머플러를 써서 형형색색 풍경을 연출하고, 골목 안 간판과 건축물 외관 도색도 따스하고 서정적인 색감으로 조화를 이룬다.

앙카라는 ‘거점, 조정기, 닻, 정신적 지주, 프로그램 진행자’ 등의 뜻을 가진 앵커(anchor)의 어원이다. 이곳 사투리는 격음 발음을 유화시키는 특성이 있는데, 시민들은 스스로 ‘앙가라’로 부른다.


지자체 운영 문화예술의 집


앙고라 석상

이곳 양은 우리 귀에 익숙한 ‘양고라’이다. 하미뫼뉘 메흐메트 아키프 에르소이 공원에 가면 양과 고양이의 조각품이 설치돼 있고, 그 주변으로 흰색, 회색 털을 입은 고양이들이 뛰어다닌다.

앙고라 양의 개체는 줄었지만, 고양이에게 ‘터키시 앙고라’라는 이름이 붙여였다. 이 고양이는 양쪽 눈동자 컬러가 다른 짝눈(오드아이:odd-eyed)으로 신비스러운 분위기이면서 매우 귀엽다. 파란색, 녹색, 황색, 옅은주황, 검정색 등이 서로 다른 색깔로 한 마리 고양이의 두 눈의 절묘한 짝을 이룬다.

친화력도 좋아 여행자에게 덥석덥석 안겨, 여행자는 터키쉬 앙고라를 안아보는 재미도 얻는다. 공원 앞 영화감독이 카메라를 앞에 두고 거리를 찍는 모양의 조각품에서 하마뫼누 주민들의 낭만도 엿본다. 여행자는 한번씩 그 카메라 앞에 서서 폰카로 사진 찍어 달라고 주문한다.


양의 이름이던 앙고라가 ‘터키쉬 앙고라’라는 고양이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하마뫼누 거리의 영화감독 조각품

이 마을에서 동양인에게 가장 인기를 끄는 포인트는 전통 튀르키예 커피를 다 마신뒤 침전물을 거꾸로 세웠을 때 나타나는 무늬로 점(点)을 보는 것이다.

포춘텔러 역할은 일정한 규칙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가 해줄 수도 있지만, 대부분 점 볼 당사자 친구들이 앱을 통해 점괘를 전해준다. 자기 커피의 문양을 자기가 해석하고, 점치면 인정해 주지 않는다.


모래 불판 위에서 끓이는 전통 튀르키예 커피.

방법은 이렇다. 튀르키예 전통커피를 다 마시면 침전물이 잔 밑에 깔린다는 점에 착안, 잔을 받침대 위해 거꾸로 엎어, 위로 올라온 잔 밑부분이 식을 때 열어본다. 잔을 엎을 때 내 잔은 밖에서 안으로 돌리고, 남의 잔은 안에서 밖으로 엎는다.

잔 벽에 그려진 무늬는 고양이도 있고, 여러 선과 구릉지도 보이고, 바다의 해마 등도 나타나 있다. 마치 우리의 꿈해몽 같은 커피점(点) 어플을 통해 문양을 해석한다. 한국의 인터넷 점괘는 좋은 것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이 어플의 점괘는 꽤나 냉정하다.


어플이 알려주는 커피 점 점괘

한국인 앙카라 여행자들은 ‘이게 뭐라고..’ 하마뫼누에서의 시간 중 가장 흥미로운 한때를 튀르키예 커피점 보기로 보냈다.

로스팅한 커피에 물을 타서 끓이면 침전물이 남는 튀르키예 방식은 에티오피아, 그리스와 비슷하며, 맛도 세 나라 것이 닮은 데가 있다.

하마뫼누에 황혼이 깃들면, 낭만적인 분위기가 진해진다. 주황색 불이 켜지고, 노을의 잔상이 모스크의 실루엣을 붉은 낭만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가운데, 연인들은 더욱 가까이 상대를 끌어안은 채 거리를 걷는다. 카페에 앉은 여인 귓가에 바짝 붙은 남정네의 속삭임 모습도 눈에 띈다.


하마뫼누의 밤풍경


하마뫼누의 밤풍경

마치 유교문화 처럼, 낮에는 애정 표현을 덜 하는 튀르키예 사람들의 특성 때문에, 노을과 밤거리 분위기는 낮에 못해본 것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도모하게 해주는 것 같다.

집에 찾아온 손님에 대한 커피 대접 풍속에서 튀르키예인들의 또다른 배려심을 엿본다. 한꺼번에 나오는 커피와 물 중에서 물을 먼저 마시면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 커피를 먼저 마시면 식사를 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전자의 경우 간단한 요기거리를, 후자의 경우 디저트를 추가로 준비한다.


튀르키예 전통 커피세트

커피고객의 99.9%가 마지막으로 달콤한 전통 젤리 로쿰까지 먹지만, 커피까지 다마신 뒤에도 후식인 로쿰을 안먹으면 대접이 맘에 들지 않은 것으로 파악해 추가의 서비스를 고민한다고 한다.

하마뫼누 문화예술의 집에선 앙카라 민속과 관련된 여러 유산들을 볼수 있고, 공예품 시장에선 예술적으로 만들어진 전통 직조물과 악세사리를 구경하거나 득템할 수 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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