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 ‘축배’에 복잡해진 최윤범 회장의 ‘셈법’ [고려아연 경영권 전쟁]
2024-10-15 11:19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시도하는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공개매수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 5% 이상을 확보했다. 아울러 조만간 진행될 최윤범 회장 측 공개매수 및 표 대결 결과에 따라 고려아연 경영권 다툼의 승리자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4일 마감한 MBK·영풍의 고려아연 공개매수에는 총 110만5163주(5.34%)가 응했다. 오는 17일 MBK·영풍이 청약 지분을 매입하면 MBK·영풍 측 고려아연 총 지분은 38.47%로 증가한다.

이외에 지분율 변화는 한 차례 더 예정됐다. 향후 고려아연이 자기주식 매수 후 전량 소각을 예정대로 진행한다면 MBK·영풍의 고려아연 보유지분은 48% 상당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MBK·영풍이 축배를 들 시점이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기도 한다. MBK파트너스는 “14일(MBK·영풍의 고려아연 공개매수 마감일)이 한국 자본시장에서 의미 있는 이정표로 남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밝혔다.

다만 고려아연은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고려아연은 입장문을 통해 “상대가 제시한 목표치(최대 14.61%)에는 미달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추후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주 자사주 매수 ‘변곡점’...법원 판단에 쏠린 눈=아직 어느 한 쪽의 승리를 자신하기 어렵다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고려아연 자사주 매입과 관련한 시비를 다툴 여지가 남아있어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MBK·영풍이 제기한 공개매수절차중지 가처분 소송의 심문을 오는 18일 오전 진행한다. 가처분 결과에 따라 고려아연이 예정대로 오는 23일까지 공개매수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 여부가 달라진다.

MBK파트너스는 “MBK 파트너스·영풍은 우선 ‘고려아연 자기주식 공개매수’가 중단되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기존에 진행 중이던 소송절차를 통한 구제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가처분 결과가 중요한 이유는 현재 MBK·영풍의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시나리오는 최윤범 회장 측의 자사주 대항 공개매수 결과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내주 고려아연 경영권 다툼 결론을 좌우하는 변곡점이 마련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최 회장을 필두로 하는 고려아연·베인캐피탈은 고려아연 지분 최대 20% 확보를 위해 대항 매수를 예정하고 있다. 법원이 고려아연 손을 들어줄 경우 이들은 주당 89만원에 공개매수를 진행한 뒤, 사들인 자사주를 전량 소각할 계획이다. 이 경우 모든 주주의 지분율이 함께 상승하지만 고려아연·베인캐피탈 측이 현재 상황을 타개할 고육지책으로 여겨졌다.

고려아연·베인캐피탈의 매입량이 목표치에 못 미칠 경우 MBK·영풍 측 의결권 지분이 낮아지는데, 시장 관계자들은 그 바로미터가 10% 내외일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이 경우 고려아연에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고려아연이 시중 유통물량을 사들이거나 혹은 자사주를 내어주고 백기사를 포섭하는 방식 등으로 국면 전환을 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자사주 매수 이후 남은 절차는?...이사회 장악이 ‘선행요건’=이해당사자들은 일찌감치 장기전 준비에 나선 모습이다. 이사회를 안정적으로 장악해야 회사의 향후 주요 의사결정에 입김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MBK·영풍은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해 고려아연 이사회 구성원에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이달 말 혹은 내달 관련 절차를 밟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 때 양측의 표 대결 핵심은 ‘이사 선임의 건’이다.

고려아연 정관에 따르면 이사 수를 3인 이상으로 한다면 이사 수에는 최대치 제한이 없지만, 이사 해임에는 특별결의 요건(출석주주 3분의 2와 발행주식총수 3분의 1 이상 찬성)을 충족해야한다. 따라서 이미 선임된 이사를 해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MBK·영풍이 이사회 과반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야한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총 13명(사내이사 3명, 사외이사 7명, 기타비상무이사 3명)의 이사로 구성돼 있다. 기타비상무이사인 장형진 영풍 고문이 MBK·영풍 측 인사이므로, MBK·영풍은 12명의 새로운 이사를 선임해야 이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다.

원칙적으로 상대방보다 많은 수의 이사진을 확보하면 경영 참여해 유리해진다. 고려아연 또한 MBK·영풍에 대항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아워홈 사례와 유사한 일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경영권 분쟁을 겪은 아워홈 역시 정관에 이사 상한선 규정이 없었다. 남매간 경쟁이 격화된 당시 구지은 전 부회장이 21명의 이사를 선임하고, 구본성 전 부회장이 48명의 이사를 내세우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사 선임은 주주총회를 통해 결의해야 한다. 다만 MBK·영풍 및 최 회장·베인캐피탈 등 어느 한 쪽이 지분율 50%를 밑도는 상태가 유지될 경우 양측의 셈법이 복잡해진다. 임시 주주총회 등을 통해 이사진을 꾸리려해도 승리를 자신할 수 없게 돼 결국 국민연금(7.83%) 등 주요주주의 표심을 사로잡는 일에 공력을 쏟아야 할 필요성이 커진다.

▶자본시장에 무엇을 남겼나...달라진 사모펀드 역할론=고려아연 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동안 기업 지배구조 개편을 둘러싼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역할론 또한 재정립되는 모양새다. 그간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에 실탄을 대는 재무적투자자(FI)에서 벗어나, 적극적 행보를 통해 기업 거버넌스의 취약점을 건드려 딜(거래)를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수 세대에 걸쳐 기업이 승계되는 한국식 구조에 균열을 예고한다는 평가다. 행동주의 펀드가 아니라 할지라도 바이아웃(경영참여) 펀드의 확장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단 고려아연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집단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특성을 끄집어냈다는 진단이다.

지난 4월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투자자들에게 보낸 연례서한에서는 “가족 소유 재벌 기업들은 역사적으로 비핵심 자산의 전략적 매각과 유동성 필요 차원에서 다수의 딜 플로우를 생성시켰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드라이파우더(미소진물량)이 넉넉한 여타 PE 운용사 또한 투자수익률 극대화를 위한 행보가 예상된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MBK의 전략이 아직 성공했다고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고려아연 건이 상징적 딜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대기업과 우호관계를 조성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인식이 확대될 것”이라고 짚었다. 노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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