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요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 “요리에 대한 진심 통했다”
2024-10-16 10:34


넷플릭스 서바이벌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 에드워드 리 셰프 [넷플릭스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3주 연속’ 1위.

넷플릭스가 만든 한국 예능이 ‘최초’의 진기록을 세웠다. ‘피지컬100’을 넘어서는 성과였고, 송혜교 주연의 드라마 ‘더 글로리’ 이후 최고의 화제성을 만들었다. ‘흑백요리사:요리 계급 전쟁’ 이야기다.

흑백요리사는 일률적이었던 요리 서바이벌의 판도를 완전히 바꿨다. ‘계급 전쟁’을 타이틀로 걸고 매회 ‘스타 셰프’를 만들었고, 서바이벌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깼다. 덕분에 어딜 가나 ‘흑백요리사’ 이야기가 쏟아졌다. 모은설 작가는 “넷플릭스에서 댓글 알바를 쓴 거나 싶을 정도로 호평이라 너무 놀랐다”고 했다. 끊이지 않은 화제성 덕분에 시즌2 제작도 일찌감치 확정됐다. 김은지 PD는 “안 할 이유가 없었다”며 활짝 웃었다.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의 연출을 맡은 스튜디오 슬램의 김학민 PD. [넷플릭스 제공]

셰프 섭외 전쟁…“요리에 장난치지 않겠다”고 설득

최초의 아이디어는 제작사인 스튜디오 슬램의 윤현준 대표에게서 나왔다. 셰프 100인의 요리 서바이벌. 이후 ‘무명 요리사’라는 제목으로 발전한 기획은 대대적인 ‘노선 전환’을 거쳐 ‘흑백요리사’ 구조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은 분주해졌다. 프로그램에 참여할 ‘진흙 속 셰프’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김학민 PD는 “작가들이 밤을 새가며 찾아 진흙을 헤집어 셰프님들을 추려냈다”며 “지원 의사를 물은 뒤 면접을 봤고, 모든 셰프가 이 과정을 거쳐 참가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했다. 프로그램 녹화 전 제작진이 만난 셰프 수는 총 500~600명이나 된다.

최현석 셰프는 몇 번이나 출연을 번복했다는 전언이다. 전화를 안 받고 잠수를 타기도 했다. 정지선 셰프와는 하루에 한 번씩 수시로 전화했고, 출연 결정 과정에선 한 시간 가까이 통화했다. 에드워드 리 셰프에겐 진정성을 담은 장문의 메일과 줌 미팅을 거쳤다. 이들을 모두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진심’이었다.

“대가들에게 무턱대고 나오라고 하는 것이 너무 죄송하고 계급을 나누는 게 실례라는 생각이 들어 준비 과정에서 그만두겠다고 하는 작가들도 있었어요. 요리에 장난치지 않겠다, 커리어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겠다고 진심으로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모은설 작가)


넷플릭스 서바이벌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 [넷플릭스 제공]

10년 만의 요리 서바이벌…2인 심사위원의 재발견

그간 요리 경연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전성기를 지나며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젠 ‘단물’이 다 빠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흑백요리사’는 업계의 예상을 보기좋게 뒤엎고 왕좌를 차지했다.

모은설 작가는 “기존의 요리쇼와는 다른 구조와 볼거리를 담고자 했다”며 “의도 없이 배치한 미션은 단 하나도 없었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예상했다”고 돌아봤다.

‘시각 충격’을 불러오는 1000평 규모의 압도적인 주방 세트, ‘재야의 고수’들과 수 십년 경력 및 명성으로 최정상에 오른 커리어의 스타 셰프의 대결, 잘 짜여진 미션과 빈틈없는 구성, 쫄깃한 편집까지…. 10년 만에 다시 나온 ‘요리 서바이벌’엔 이 시대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다채로움과 방대한 스케일, 새로운 자극이 담겼다.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의 모은설 작가. [넷플릭스 제공]

기존 프로그램이 3인 심사위원 체제였던 것에 반해 2인 구조를 만든 것도 특이했다. 두 사람의 토론 과정을 깊이 보여주기 위해서다. 두 심사위원도 화제였다. 이미 수없이 소비돼 식상할 수 있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흑백요리사’로 엄청난 식견과 미감을 보여줘 재평가됐다. “백종원 심사위원만큼 다양한 식재료를 체험하고, 엄청난 능력을 가진 분이 없기에 우려보다 기대가 컸다”는 김학민 PD의 판단이 적중했다.

모은설 작가는 “같은 출연자라도 옆에 누가 있고 어떤 상황에 놓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새로운 모습이 나온다”며 “백종원 선생님에게 그동안 주어지지 않은 구조와 전형적이지 않은 서바이벌, 그를 견제하고 긴장감을 줄 또 다른 심사위원이 있다면 새로운 모습이 나올 거라 확신했다”고 귀띔했다.

그의 옆자리를 채운 주인공은 안성재 셰프 역시 이 프로그램이 발굴한 또 한 명의 스타다. 대한민국 유일의 미슐랭 3스타 식당의 셰프이지만, 그간 대중적인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제가 심사하면 대한민국 그 어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 셰프의 자신감과 너무도 명확한 팩트에 그는 백종원과 어깨를 나란히 할 심사위원으로 섭외됐다.

“성향도, 인생 경로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기에 정반대일 거라는 예상을 했어요. 부조화 속 조화라고 할까요. 대등한 상태로 오랜 시간 토론하는 모습을 보며 ‘역시 이 두 분이었어야 했다’고 생각했어요.”(김은지 PD)

오직 요리를 위한 쇼…“최상의 컨디션의 주방·수산업자 현장 대기”

‘흑백요리사’는 오로지 셰프들과 요리를 위한 ‘쇼’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오랜 시간 ‘요리의 길’을 걸어 온 셰프들을 위해 특별한 공간을 갖추고 경연을 시작했다.

모은설 작가는 “출연자들이 자신의 업을 걸고 출연하기에 서바이벌이 끝이 난 뒤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절대 피해나 불이익이 가선 안된다는 마음이었다”며 “세프님들이 이 쇼에서 키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등의 이유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의 연출을 맡은 김은지 PD. [넷플릭스 제공]

출연자들이 ‘최고의 요리’를 선보일 수 있도록 장소, 시간, 환경, 재료 수급을 꼼꼼하게 신경썼다. 특히 식재료에 있어선 심사위원과 자문셰프들을 통해 적절한 종류와 양을 맞췄다.

김학민 PD는 “셰프들이 무슨 요리를 만들지 모르니까 어느 요리에나 통용될 정도의 재료를 갖추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너무 많으면 남을 수도 있어서 식자재의 양을 맞추는 것은 문제였다”며 “낭비 없이 식재료를 소진하기 위해 생선 미션 때엔 수산업자들이 현장에 대기하고 있다가 남는 식재료를 가져가도록 했다”고 귀띔했다.

빌런도 악랄한 심사평도 없는 서바이벌…“시즌2엔 고든 램지 섭외중”

공들인 보람 덕에 이 쇼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컨슈머인사이트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가입자의 절반 이상인 52%가 ‘흑백요리사’를 시작했고, 시청자 만족도는 공개 2주차에 무려 82점으로 급상승했다. 시청자들은 출연진의 매력(응답률 44%)과 출연진 간의 케미(37%)에 높은 점수를 줬고, 연출과 편집, 자막 등 전반적 제작 퀄리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와 함께 매회 스타가 나오기도 했다. 공개와 동시에 “채소의 익힘 정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븐하게 익지 않았다”는 유행어를 만든 안성재 심사위원, ‘딤섬의 여왕’ 정지선 셰프의 빠스 요리, ‘한국이름 이균’을 알린 프로그램의 진정한 우승자 에드워드 리 셰프 등이 화제가 됐다. 또 ‘비빔밥을 찬양한 ’비빔대왕‘, ’나야 들기름‘이라는 명대사를 남긴 최강록 셰프 등 일찌감치 탈락한 출연자까지 조명을 받았다.

모 작가는 “다른 서바이벌은 우승자 한 명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데, (우리 프로그램은) 탈락한 분들까지 인기를 얻고 매 라운드마다 주인공이 달리 보인다는 점이 기존 프로그램과의 차이점”이라고 했다. 특히 인생 요리 미션에선 저마다 요리의 삶에 얽힌 세프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전해지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넷플릭스 서바이벌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 [넷플릭스 제공]

높은 인기만큼 일부 출연자는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조명받았다. 빌런도 없었고, 악랄하고 과장된 심사평도 없었다. 서로를 향한 존중과 존경, 걸어온 길에 대한 인정과 응원이 묻어났다.

“시청자들은 순수하게 요리에 미친자들의 진심에 열광했던 것 같아요. 흑백 계급으로 나눌 때 불편함이 있을 수도 있는데 흑셰프들은의 백셰프들에 대한 존경, 나도 한 대 흑셰프였다는 기억을 떠올리는 백셰프들의 응원, 남의 탓을 하거나 심사위원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응원하며 떠나는 모습에서 기존 서바이벌과 달라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그 기조를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모은설)

최종 우승자를 가리고 대단원에 막을 내린 ‘흑백요리사’는 이제 시즌2 제작에 돌입한다. “나올 사람은 다 나온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지만 제작진은 걱정이 없다. 김은지 PD는 “우리나라에 엄청난 셰프님들이 굉장히 많다”며 웃었다. 섭외 0순위는 고든램지다. 모은설 작가는 “심사위원으로 이미 많이 나왔으니 이번엔 챌린저로 참가하는 게 어떨까 싶다”며 “이미 고든램지 코리아 측에 연락을 넣어뒀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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