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동행카드 시범사업 시작 후 첫 출근일인 3월 29일 서울 중구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 한 시민이 기후동행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기후동행카드에서 K패스로 전환했습니다”
지난 6월 말 시민 A씨는 기후동행카드 사용을 석달 만에 접었다. 할인 폭이 별로 크지 않은 데다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이 제한적이라서다.
A씨는 “출퇴근 위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한달에 교통비로 6만원 초반대, 공휴일이 끼거나 연차 쓰는 달이면 5만원 중후반대를 써 절약은 안되는 것 같았다”며 “서울 내 운행 중인 경기나 인천버스도 가끔 타는데 기후동행카드를 쓸 수 없어 오히려 차량 선택의 폭은 좁아졌다”고 설명했다.
[연합]
서울시의 대표적인 교통 부문 기후대응 정책인 기후동행카드가 본격 시행된 지 반년이 지난 가운데 이용률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싼 가격이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자가용에서 대중교통으로 유인해 도로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줄이겠다는 당초 취지를 살리기 위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시만·환경단체들의 제언이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와 우리모두의교통운동본부는 지난 6월 24∼27일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 사는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대중교통 이용 행태 ▷승용차 이용 행태 ▷서울시 대중교통 정책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설문을 31일 발표했다.
기후동행카드 시범사업 시작 후 첫 출근일인 3월 29일 서울 중구 서울역 인근 한 버스에 이용 노선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임세준 기자
이 설문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기후동행카드 가격보다 월 교통비를 적게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응답자 2781명 중 약 35%는 교통비를 월 3만원 미만으로 지불하고 있었다. 월 3만원 이상 5만원 미만인 경우가 20.4%, 월 5만원 이상 7만원 미만 25.4%, 월 7만원 이상은 19.6%였다.
이런 이유로 기후동행카드 이용률은 시행 반년 차에도 1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0일 하루 평균 기후동행카드 이용자 수는 50만9877명(9월 말 기준)으로 하루 평균 서울 대중교통 이용자(432만7603명)의 11.8%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김포의 한 시민이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해 김포골드라인에 탑승하고 있다. [헤럴드DB]
기후동행카드는 자가용 이용 저감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 대중교통 이용 확대 등을 목표로 한 서울시의 정책이다. 지난 1월 시범 사업으로 도입돼 3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월 정액 6만2000원(공공자전거 따릉이 포함 시 6만5000원)에 서울 지역 지하철과 서울시에서 면허를 받은 시내·마을버스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서울 이외 지역에서는 김포시(김포골드라인), 남양주시·구리시(진접선·별내선), 공항철도 인천공항1·2터미널역에도 기후동행카드가 적용된다.
서울 중구 남대문세무서·서울백병원 광역버스 정류소가 퇴근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
서울뿐 아니라 경기와 인천 등 수도권으로 범위를 넓히면 이용률은 더 떨어진다. 그린피스 등의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3000명 중 7.9%만이 현재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하고 있었다. 4.4%는 이용 경험이 있지만 현재는 이용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이외 87.7%의 응답자는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한 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이 지목한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 적용 지역와 가격, 크게 두 가지다. 인천과 경기에 거주하는 서울 대중교통 이용자들은 기후동행카드를 ‘내 집’까지 타고 올 수 없다.
서울에 거주하는 대중교통 이용자들도 굳이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 기후동행카드의 가격 6만2000~6만5000원보다 교통비가 덜 들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서 시민들이 개찰구를 지나고 있다. [연합]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하지 않는 응답자 2764명 중 48.8%는 ‘이용 노선이 할인 혜택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서’ 이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다음으로는 ‘비용 이점이 적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21.0%로 두 번째 이유로 나타났다.
바라는 보완점도 이용하지 않는 이유와 일치했다. ‘적용되는 노선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49.5%로 가장 높았고, ‘정기권 비용이 더 저렴해야 한다’(20.6%)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응답자를 지역 별로 나눠 보면 이같은 경향성은 더욱 두드러졌다. 인천 및 경기에 거주하는 응답자 1909명 중 55.0%는 적용 노선 확대를, 서울에 거주하는 응답자 1091명 중 30.5%는 더 저렴한 비용을 보완점으로 지목했다.
출근 시간 대 서울 지하철 동작역 환승 구간. 주소현 기자
이용률만 저조할 뿐 아니라 정책 효과도 뚜렷하지 않았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기후동행카드 전체 이용자의 약 9%는 기후동행카드 이용 후에 자가용 이용을 줄였다고 한다.
기후동행카드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자가용 수요를 대체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촉진시키기에 미흡하다는 게 시민·환경단체들의 지적이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센터장은 “기후동행카드는 자가용 이용자의 관점에서는 이용 편리성을 압도할 만큼의 경제적 편익이 약하고 시 경계를 이동하는 시민에게 불리한 제도”라며 “서울시는 타깃 별로 정책의 유인 구조를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2019년 1월 경기도 화성시 동탄1신도시의 한 버스 정류장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
그리고, 가격 만큼 중요한 것. 대중교통 이용의 편의성이다. 대중교통 이용 확산을 위한 필요 정책(중복 응답)이 ‘대중교통 요금 보조 정책 확대’라는 응답자는 63.7%로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바로, ‘출퇴근 혼잡 시간대 지하철 및 버스 차량 증차’(68.0%)다.
그 외에 전면적 무상교통 실시(24.9%), 버스 및 자전거 전용 도로 증가(23.0%), 승용차 유지비 인상 및 금전적 혜택 감소(17.9%), 차 없는 거리 확대(13.2%), 도심 승용차 차 공간 감소(9.7%) 순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최은서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도로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서울시 전체 배출량의 18% 차지하는 만큼 현 서울시 탄소 중립 주요 전략 로드맵에 더 구체적인 탈내연기관 목표와 교통 수요 관리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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