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칼럼] 한강 노벨문학상이 두려운 사람들
2024-11-06 11:08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되자 한국인이면 누구나 축하할줄만 알았다면 그것은 순진한 착각이었다. 노벨문학상 선정의 그 이유가 두려운 사람들이 있었다. 5.18 소재 작품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 산문”이라는 스웨덴 한림원의 발표문이 그들의 폐부를 깊이 찌르면 좋겠다. 그들은 아직도 5.18광주시민항쟁에 대해 폄훼하는 이들이다.

5.18 광주항쟁 이듬해 열두살 소녀 한강은 어른들 몰래 5.18 자료집을 펼쳤다. 그는 당시 자료집을 본 충격에 대해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이렇게 썼다. “총검으로 길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작가의 역사적 트라우마가 그 여자애의 얼굴 상처만큼이나 마음 속 깊이 그어지는 순간이었다.

작가는 진압군의 잔혹행위에 대해 이렇게 고발하고 있다. “가능한 한 과격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한 군인들에게는 상부에서 몇십만원씩 포상금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가장 의미심장한 메시지는 5.18 광주시민항쟁의 역사적 위상에 대한 재조명이다. 5.18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권총으로 살해한 10.26 사건에 대한 역사적 복고 역풍이었다. 김재규는 10.26 군사재판에서 “많은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각하 한 사람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국민을 위한 정당방위였다는 것이다.

10.26 당일 궁정동 안가 술자리에서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은 당시 심각했던 부마항쟁에 대해 “캄보디아에서 200만을 학살했는데 우리도 100만 정도 쓸어버려도 문제 없다”고 내뱉었다. 이에 박정희는 “서울에서 사태가 나면 내가 발포명령을 내리겠다”고 했다. 김재규는 박정희의 성정으로 보아 많은 국민이 희생당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에 결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의 두 번째 총탄은 박정희의 머리 뒷통수에 가까이 조준한 확인사살이었다. 인간적 환멸감 없이는 불가능한 장면이다.

나는 30여년 전 신문기자 때 정치군인들에 관한 장기 기획시리즈를 취재 집필하는 과정에서 10.26 군사재판의 녹음테프 전량을 입수했다. 녹음엔 김재규와 그 측근인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가 대통령 박정희의 사생활에 관해 증언한 것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10.26에 대한 1차 역풍은 박정희의 친위대로 불린 정치군벌 하나회에 의한 12.12 군사반란이었다. 반란으로 군의 실권을 장악한 하나회 보스 전두환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장과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거머쥐고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소집해 5.17 전국비상계엄 확대조치를 결의한다. 훗날 대법원의 판결문에 적시된 내란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에 항거한 5.18 광주시민항쟁에 대해 내란집단의 지령을 받은 진압군은 참나무 몽둥이 폭행과 무장 헬기까지 동원한 무차별 발포로 참혹한 살상진압을 자행했다. 전쟁 속의 적지에서조차 금기범죄인 여성 성폭행도 진압군에 의해 여러 건 자행됐다. 폭도라는 이름은 그들에게 붙여야 할 저주스런 낙인이다.

김재규 재심이 법원에 접수돼 있다. 그 재심은 박정희 평가와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판사들은 고민스러울 것이다. 나는 판사들에게 김재규 군사재판 녹취록 책을 읽으라고 강력히 권하고 싶다.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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