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금융당국이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 이후 ‘실적 부풀리기’ 논란을 빚고 있는 무·저해지 보험상품의 해지율 가정에 제동을 걸었다. 원칙모형의 예외를 인정해 IFRS17의 대원칙인 자율성을 보장했지만, 현행과 별반 차이가 없는 ‘반쪽짜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른 무·저해지 보험료 인상도 불가피해져 연말 절판마케팅이 횡행할 가능성도 나온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4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제4차 보험개혁회의를 열고 ‘IFRS17 주요 계리가정 가이드라인’과 ‘보험부채 할인율 현실화 연착륙 방안’을 논의했다고 7일 밝혔다.
우선 무·저해지 상품의 ‘고무줄’ 해지율 가정을 막기 위해 통일된 ‘로그-선형모형’(실무상 수렴점 0.1%, 이하 ‘원칙모형’)을 제시했다. 무·저해지 보험은 보험료 납입 기간 중 계약을 해지하면 환급금을 아예 주지 않거나 절반 이하로 주는 대신 보험료를 30% 이상 낮게 책정한 상품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해지율은 낮을 것으로 예상되나, 보험사들이 경험통계 부재를 이유로 완납 직전까지 높은 해지를 가정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비합리적 가정을 전제로 무·저해지 상품의 수익성이 산출되면서 ‘쏠림’ 현상이 심화됐다. 올해 무·저해지 상품의 신계약 비중이 63.8%에 달할 정도다.
무·저해지 상품으로의 승환 증가로 표준형 상품의 해지가 증가하면, 이를 근거로 다시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을 높게 추정하는 악순환으로도 이어졌다고 당국은 분석했다.
당국은 해외사례·산업통계를 통해 분석한 결과, 완납시점 해지율이 0%에 수렴하는 모형 중 로그-선형 모형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해 이를 원칙모형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다만 각사의 경험통계 등 특수성을 고려해 다른 모형을 적용할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이 경우 감사보고서·경영공시에 그 근거와 원칙모형과의 차이를 계약서비스마진(CSM), 지급여력비율(K-ICS), 당기순이익 등 기준으로 상세히 공시하고, 금감원의 점검을 받는 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결국 예외 모형을 인정함으로써 기존과 다를 바 없는 반쪽짜리 개선안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보업계 한 관계자는 “IFRS17의 대원칙이 자율이기 때문에 이를 보장해주려 한 것 같다”면서도 “아무도 불리한 원칙모형을 적용하려 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당국 관계자는 “기존의 모형을 쓰지 않고 원칙모형을 쓰지 않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며 “회사의 특성이나 상품의 특성이 분명히 차이가 있고 통계적으로도 분명히 특성이 있다라는 점을 보여줄 때만 예외 모형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해지율을 낮추는 과정에서 무·저해지 보험료 인상도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격 상승 요인이 전혀 없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다”며 “단기적으로는 영향을 주지만 고객 소비자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지속 가능한 상품을 개발해 주는 게 의미 있는 발전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단기납 종신보험 추가해지 가정도 상승된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납입기간이 5~7년 정도로 짧으나, 10년 시점 보너스 등 부과로 환급률이 높은 종신보험을 의미한다.
소비자들은 사실상 저축성 상품처럼 인식해 보너스 수령시 해지할 유인이 크다. 그럼에도 보너스 지급 시점 환급금 수령 목적의 추가해지를 고려하지 않는 사례가 다수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당국은 표준형 상품의 누적유지율을 활용해 해지 수준을 역산하거나, 30% 이상으로 추가해지를 설정할 계획이다. 30% 최소 기준은 방카채널 일시납 저축성보험의 11차년도(비과세요건 충족으로 환급률이 급증하는 시점) 해지율 산업통계의 최근 10년 평균이 29.4~30.2%인 점을 감안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보험부채 할인율 방안도 연착륙해 속도조절에 나섰다. 당국은 내년 최종관찰만기를 현행 20년에서 30년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계획했지만, 최근 시장금리 하락을 고려해 단계적 적용으로 방향을 틀었다.
최종관찰만기를 30년으로 확대하되 3년 간 단계적으로 적용해나갈 방침이며, 금리상황에 따른 시행여건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예정이다.
당국은 앞서 발표한 보험건전성 감독 강화방안 및 계리가정 가이드 등의 주요 정책영향을 종합 평가한 결과도 발표했다.
평가결과에 따르면 국고채 10년물 금리 3.0% 기준 보험업권 K-ICS 비율은 올해 6월 말 217.3% 대비 약 20%포인트 내외 하락할 것으로 추정돼 업권 전반 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됐다. 개별 회사에 대한 영향은 기존 경과조치에 포함해 수용성을 높일 예정이다.
이날 발표된 주요 계리가정 가이드라인은 올해 연말 결산부터 적용된다. 손해율 가정은 회사 내 결산 시스템 수정 등 물리적 한계가 있는 경우 내년 1분기까지 반영할 수 있다. 할인율 연착륙 방안은 2025년 1월부터 적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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