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비치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74대 대통령 선거 승리 선언을 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제47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산업 지형에 일대 격변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환경규제의 철폐·축소와 석유·가스 등 화석연료와 원자력발전 생산 확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취임 직후 파리기후협약 재탈퇴 역시 예고한 상태다. 조 바이든 행정부와는 정반대 기조다.
한국 에너지 기업들의 투자 및 사업에도 직접적인 파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가격과 환율 변동성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의 에너지 분야 공약은 ▷파리기후협약 재탈퇴 ▷화석연료 생산 확대 ▷원전 확대 ▷환경규제 철폐·축소 ▷청정에너지 투자를 장려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 축소 등으로 요약된다. 실제 트럼프는 지난 재임 기간 동안 약 100개의 환경규제를 철회했으며,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석유와 셰일가스 시추 확대를 의미하는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외치며 ‘미국 최우선 에너지 정책’을 표방했다.
이에 따라 석유 및 액화석유가스(LPG), 액화천연가스(LNG), 원전·소형모듈원자로(SMR) 등 분야의 기업들 역시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셰일가스에 투자한 SK그룹 등이다. 신규 원유 및 LNG 생산 프로젝트 승인에 따라 한국 에너지 설계·조달·시공(EPC) 기업의 사업 참여 기회가 확대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원유 및 천연가스 공급 증가로 원유·가스 가격도 다소 인하될 것이란 예상이다.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전 숭실대 교수)는 “트럼프 당선으로 기후변화협약 탈퇴가 확실시되고 지금까지 강화됐던 환경규제, 탄소중립 트렌드가 많은 부분 약화될 것”이라며 “에너지산업도 분야별로 영향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하게 평가할 수 없지만, 석유와 셰일가스에 대한 규제를 줄임으로써 국제 석유·LNG 쪽은 가격 인하 요인이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텍사스 퍼미안 분지 지역의 석유시추 모습. [AP]
원전 역시 마찬가지다. 원전 확대는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이지만, 공화당이 좀 더 적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트럼프는 지난 2017년 취임 직후부터 원전 확대를 추진, 재임 기간 동안 원전 발전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트럼프 당선으로 전통적인 석유·가스 산업이 활발해지는 것 외에도 글로벌 원전 수출, 원전 기업 지원 및 기술 개발 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너지기업 한 관계자는 “원전·SMR의 경우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전력 수요를 확보하기 위한 것인 만큼 친기업 정책을 추구하는 트럼프 재임 기간에도 지속 성장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반면, 태양광·풍력·수소의 경우 대미 수출·투자는 다소 위축될 전망이다. IRA 폐지·축소 기조에 따른 청정에너지 보조금 위축으로 미국 내 태양광 투자를 진행 중인 한화, OCI 등의 보조금 수령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예상이다.
다만, 트럼프로서도 급격한 정책유턴은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있다. 트럼프가 친(親)기업 기조를 가지고 있는데다 IRA의 수혜를 받고 있는 주(州)의 상당수가 공화당 지역인 만큼, 내부 반발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2022년 8월 IRA 통과 후 미국서 발표된 투자액 3460억달러(약 460조원) 중 78%가 공화당 지역구에 배정됐다.
정용헌 전 아주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기본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쪽은 다소 어려워질 수 있지만, 미국은 의회주의인데다 외교·국방을 제외한 산업 분야 정책은 모두 주 차원(스테이트 레벨)에서 진행되는 만큼 당장 국내기업에 타격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법안이 상하원을 통과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주정부가 연방정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을 장치도 있는 만큼 한국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했다.
미국 오하이오주 페리스버그에 있는 퍼스트 솔라의 현장의 태양광 패널들. [로이터]
재계 한 관계자는 “트럼프는 전통연료 친화적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IRA 정책을 열심히 수행하고 수혜를 받는 주 중 다수가 공화당 지역이므로 일자리 축소, 지역 수혜 해택 감소로 인한 유권자들의 반발 우려로 실질적 무력화가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부분적 개정을 시도할 가능성은 있어 국내기업 입장에서는 산업 축소를 최소화할 수 있는 소통 노력의 지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동욱 교수는 “신재생에너지 쪽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이 단기적으로는 불안할 수 있겠지만, 미국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 트럼프가 불이익을 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산업 자체는 위축되더라도, 트럼프의 대중 강경 정책 기조가 오히려 국내 신재생에너지 기업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대중 강경 일변도를 통한 무역 장벽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은 트럼프 2기가 중국 기업의 저가 물량 유입을 자체를 억제하면 미국에서 태양광 수직계열화를 진행 중인 한화 및 미국에 투자한 한국 신재생에너지 기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했다.
미국의 에너지 정책 변화에 보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또다른 에너지기업 한 관계자는 “트럼프 시대 개막 이후 석유·LNG 등 에너지 가격 및 환율의 변동성에 더욱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라며 “석유 등 에너지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의 특성상 이들 가격 변동성에 더욱 잘 대처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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