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최악의 3분기’ 보냈다…아트페어 위기론·폰지사기까지
2024-11-07 15:16


지난 9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프리즈 서울 2024 전경.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국내 미술시장이 ‘최악의 3분기’를 보냈다. 광풍처럼 몰아쳤던 미술시장 호황이 2022년부터 안전장치 없이 급브레이크를 밟는 상황이다. 올해 들어선 미술품 가격 유지는커녕 거래마저 뚝 끊겼다.

끝나지 않는 국내 미술시장 하락세는 홍콩이나 서구 미술시장과는 달리 제도적 기반이 미약해 더 심화되는 양상이다. 여기에 ‘아트테크’(아트+재테크)를 내세워 ‘갤러리’로 빙자한 사업체의 폰지 사기 사건까지 더해지면서 신뢰도까지 하락하는 수난을 겪었다. 그야말로 악재다.

7일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기업부설연구소 카이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낙찰 총액은 전년보다 26% 감소한 237억5025만원을 기록했다. 국내 주요 경매사별 하락률을 살펴보면 서울옥션 28%, 케이옥션 12%, 마이아트옥션 52% 등으로 분석됐다.

이는 불황에도 약진한 해외 주요 경매사의 성과와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지는 수치다. 같은 기간 크리스티 홍콩은 전년보다 26% 증가한 경매 실적을 보였다. 지난 9월에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는 총 40점의 미술품이 판매돼 약 1483억원의 낙찰가를 기록했다. 이는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등 미술시장 침체기에도 매출을 만들어낼 수 있는 소위 ‘트로피급 작가’의 작품들이 경매에 연이어 나와서다.


지난 9월에 열린 크리스티 홍콩의 ‘20세기/21세기 미술 이브닝 경매’ 현장. [크리스티 홍콩]

카이 측은 “이런 방향이라면 국내에서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 이우환, 윤형근, 정상화 등 검증된 작가군을 기반으로, 이대원, 김종학 등 주요 작가군으로 자금이 이동해야 한다”며 “그러나 아직까지 이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미술관 등이 국내 주요 작가들의 전시를 지속적으로 열어 일종의 ‘작가 개런티’를 보장해야 한다는 게 카이 측 주장이다. 즉 구매해도 안정적인 작품이라는 신호가 ‘미술계’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국내 미술시장의 흐름은 올해로 3회차를 맞은 프리즈 서울이 중저가 작품을 다량 판매해 매출 총량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막강한 체급을 자랑하는 세계 최정상급 갤러리들이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 보여준 전략은 실제로 ‘실속형’이었다. 국내와 아시아 컬렉터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판매될 것만 같은 작품을 출품했다는 의미다. 이렇다 보니 파블로 피카소, 장 미셸 바스키아, 프란시스 베이컨 등 교과서에 나올 법한 미술사 거장의 수백억대 그림을 내걸었던 1회차 때와 달리 올해는 3억대 미만의 작품이 주로 소개됐다.


배우 하정우를 홍보 모델로 내세워 사기 행각을 벌인 갤러리K. [갤러리K 인스타그램]

최근에는 공격적으로 국내에 전시 공간을 유치하고자 했던 주요 갤러리들도 숨고르기에 들어선 양상이다. 카이 측은 “(갤러리들이) 아트페어의 본 리그인 런던, 뉴욕, 스위스로 작품을 보내는 분위기”라며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는 국내외 아트페어의 전망 역시 어둡다는 데에 이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그림 투자 계약을 맺은 200여명의 피해자가 연루된 미술품 투자 플랫폼 ‘갤러리K’의 폰지 사기 사건은 부정적 전망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국내 미술시장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갤러리K는 미술품 투자와 대여를 통한 수익 창출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표방했지만, 실상은 신규 투자 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의 수익을 충당하는 전형적인 다단계 사기행각이었다. 이 과정에서 미술시장과 관계없는 비전문가가 자의적으로 작품 가치를 평가하고, 호당 가격증명서를 남용하며, 가격을 부풀리는 등 미술시장의 건전성을 해치는 행위를 일삼았다.

캐슬린 김 미국변호사(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겸임교수)는 “작품 가격은 희소성, 미술사적 가치, 시대적 유행, 정치적 상황, 특정한 사건 등 여러 가지 요소가 고려돼 책정되는 부분”이라며 “예컨대 편의상 사용하는 호당 가격제도 국내에서 관례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일 뿐 규격화된 기준이 아니다. 전 세계 어디에도 (호당 가격제라는) 개념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같은 작가라도 100호보다 20호짜리 작품이 더 가치 있으면 가격이 높을 수 있다”며 “(미술투자자들도) 미술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미술시장과 미술산업에 대한 공부가 정말 필요하다. ‘이게 돈이 된다’는 유혹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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