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1 뚫은 단 한 명…“내 이름보다 음악이 기억되고 싶다” [KNSO국제지휘콩쿠르]
2024-11-11 14:57


제2회 KNSO국제지휘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지휘자 시몬 에델만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제 마지막 한 단계. 파이널 경연의 세 번째 주자 시몬 에델만(30)은 예술의전당 무대 뒤에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난 10일 오후 6시 45분, 백스테이지에서의 일이다. 여유로운 웃음엔 약간의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무대로 오르자 눈빛이 달라졌다. 청중을 향해 편안한 미소를 띠고 포디움에서 인사를 마치니 진짜 음악이 시작됐다.

단원들과 눈을 맞추고 숨을 고른다. 머릿속으로 구상한 ‘브람스 교향곡 4번’ 1악장에 예비박을 주자 음악은 시작된다. 우아한 현의 선율이 유려하게 흐르며 각각의 악기들은 빈틈없이 제자리를 향해갔다. 서른살 지휘자는 브람스처럼 인생을 관조하듯 차분하게 오케스트라를 장악했다. 저음현과 고음현을 풍성하게 매만지는 사이사이로 관악기의 고른 소리를 뽑아냈다.

심사위원장인 다비트 라일란트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은 그에 대해 “능숙하고 노련한 지휘자”라며 “오케스트라에 대한 뛰어난 이해로 훌륭한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전 세계 44개국에서 224명이 지원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제2회 KNSO 국제지휘콩쿠르에서 세 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우승자는 독일 출신으로 현재 포그트란트 필하모닉의 지휘자로 활동 중인 시몬 에델만. 그는 앞서 2021년 안탈 도라티 국제지휘콩쿠르, 2024년 디미트리 미트롤풀로스 국제지휘콩쿠르에서도 입상했다.


제2회 KNSO국제지휘콩쿠르에서 2위에 오른 이언 실즈, 1위 시몬 에델만, 3위 오스틴 알렉산더 차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콩쿠르를 마친 시몬 에델만은 “이렇게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할 수 있어 무척 좋았다”며 “나는 지금 뭐든 하고 싶고, 배우고 싶고, 발전하고 싶고, 위대한 음악을 하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 차 젊은 지휘자다. 여기에 온 것만으로도 내겐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들이 직접 뽑은 관객상도 받았다.

이번 콩쿠르에서 참가자들은 총 13개의 레퍼토리를 준비했다. 현장에서 무작위 추첨제로 순서와 레퍼토리를 결정했다. 참가자들은 이번 결선 경연에서 브람스 교향곡 1, 3, 4번 1악장,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1, 2, 3악장, 드뷔시의 ‘바다’ 1. 2. 3 악장 중 각각 하나의 프로그램을 연주했다.

심사위원으로는 다비트 라일란트(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심사위원장), 콜린 메터스(영국 로열 아카데미 지휘자 과정 설립자), 커티스 스튜어트(작곡가, 전 그래미상 수상자), 미하엘 베커(뒤셀도르프 톤할레 대표이사) 등 각계 전문가 9명이 참여했다. 라일란트 심사위원장은 심사위원 선정 기준에 대해 “각각의 심사위원들이 음악을 이뤄나가는 방식, 지휘를 지켜나가는 방식과 음악을 대하는 영리함과 청렴함을 고려했다”며 “올해엔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잘 맞아 1라운드 이후 본선 진출자는 모두 만장일치로 선발했다”고 귀띔했다.

2위에는 미국의 이언 실즈, 3위엔 미국의 오스틴 알렉산더 차누가 각각 선정됐다. 이언 실즈(26)는 “이 과정이 내겐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영원처럼 느껴진다”며 “열흘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1년처럼 생각된다. 내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 될 것 같다”며 “영광스러운 대가를 만난 천진한 소년처럼 저의 모습대로 이 자리를 즐기며 오케스트라를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콩쿠르를 통해 다비트 라일란트 감독으로부터 “창의적인 지휘자”라는 평을 받았다.


제2회 KNSO국제지휘콩쿠르에서 2위에 오른 이언 실즈, 1위 시몬 에델만, 3위 오스틴 알렉산더 차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이언 실즈의 조부모는 한국인이다. 그는 2차 본선의 경연곡이었던 한국 작곡가 박영희의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를 가장 흥미로운 곡으로 꼽았다. 연주 때는 한국 악기의 사용도 시도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한국의 문화유산에 조금 더 다가서 보고 싶었는데 실제로 들어보니 소리가 너무 낮아 충격적이었다”며 “많은 영감을 받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오스틴 알렉산더 차누(31)는 이번 콩쿠르가 생애 첫 경연이다. 콩쿠르에선 3위에 오른 것은 물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뽑은 오케스트라 상을 받았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연주하는 것이 처음”이라며 “그 나라의 문화를 모른 채 소통을 해야 하기에 신뢰의 관계를 쌓아가며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연주를 할 때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이 과정을 통해 나의 즐거움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KNSO국제지휘콩쿠르는 차세대 지휘자들이 세계 무대는 물론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다. 3년 전 첫 콩쿠르를 열며 한국인 지휘자 윤한결(2위)을 배출했다. 윤한결은 이 콩쿠르를 계기로 세계적인 클래식 연주자 매니지먼트인 아스코나스 홀트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8월엔 한국인 최초로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을 받았다. 특히 올해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빈 방송교향악단과 함께 자작곡 ‘그리움’,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그는 뉴욕타임스가 꼽은 이 축제의 유망주로 꼽히기도 했다. 윤한결은 늘 “이 콩쿠르를 통해 세계 무대로 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세 수상자에게도 한국 무대에서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국립심포니, 예술의전당, 경기필하모닉 등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다. 이제 시작한 젊은 지휘자인 만큼 세 사람은 각자의 음악을 착실히 쌓아가겠다는 각오다.

이언 실즈는 “나디아 불랑제가 ‘네가 좋은 만큼이 너의 음악이고 삶’이라고 말했다”며 “삶이 나아지면 음악도 더 나아지고, 음악이 나아지면 삶도 나아진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의 모든 부분들이 나의 음악에 담겨있고, 그것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알렉산더 차누는 “늘 진실하고 거짓되지 않게, 척하지 않고 나 자신으로 솔직한 지휘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승자인 시몬 에델만에겐 언제나 음악이 최우선 순위다. 그는 “나의 이름보다 (내) 음악이 남길 바란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며 “훌륭한 콘서트를 했던 훌륭한 지휘자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연주한 음악이 기억되는 지휘자이고 싶다”고 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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