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펀드, 국내기업 표적 확산…가치투자·행동주의 ‘경계 모호’ [투자360]
2024-11-13 09:43


[헤럴드경제=노아름 기자] 5% 내외의 지분으로 경영권 개입을 시도하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세가 이어지면서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저평가된 기업 장기투자자 마저 불만을 표출하고 옥석가리기에 나서자, ‘기업가치 제고’ 명분 아래 당분간 시장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이 나온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행동주의펀드가 국내기업을 표적으로 삼아 지분매입 이후 주주 제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해 국내기업 77곳이 행동주의펀드 공격을 받았는데, 이는 2019년(8곳)에 비해 약 9.6배 증가한 수치라고 밝혔다.

지난달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두산밥캣에 특별배당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발송했으며, 팰리서캐피탈은 SK스퀘어에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KT&G는 수년째 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의 공격을 받는 상황이다. 최근 FCP는 KT&G의 자회사 KGC인삼공사 인수의향을 내비치기도 했다.

당장 주주제안을 하지 않더라도 지분율을 살뜰히 늘리며 후일을 도모하는 투자자도 제법 존재한다.

달튼인베스트먼트는 콜마홀딩스 지분 5.02%를 보유 중임을 지난 6일 공시했다. 이튿날에는 제나인베스트먼트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지분을 5.08% 확보했다고 알렸다. 두 주주 모두 투자목적을 ‘단순 투자’로 명시했으나 운용사의 앞선 행보로 인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귀추를 주목하는 모습이다. 이외에도 미리캐피탈의 스틱인베스트먼트 지분율 확대 등도 눈길을 끈다.

특징적인 부분은 장기투자 통해 저평가 기업의 가치제고를 기다리는 가치투자자와 주가상승 모멘텀을 스스로 만들어내려는 행동주의 펀드 사이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가치투자자들이 주주총회 이사 선임·보수 안건에 반대 의사를 표해 결과적으로 소액주주와 합치된 의견을 내거나, 자율공시를 통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자체 공개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주목하는 등 더 이상 기존의 ‘조용한 투자’ 이미지를 벗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 저평가 원인을 해소해야한다는 방향성은 가치투자자나 행동주의 투자자 모두 동일하게 가져가고 있다”며 “때문에 오너 3~4세로의 승계를 앞두고 주가부양에 소극적인 기업들이 외부 투자자의 등장에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국내외 펀드 움직임 확산은 상장회사 책무확대 바람이 점차 확산되는 최근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 필요성이 정치권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 금융당국도 발맞추려는 분위기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1일 개최한 외신브리핑에서 상법 개정안 윤곽이 연내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에 대한 기업의 우려는 지속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 상장사 970곳은 행동주의 캠페인을 겪은 지 4년이 지나자 기업가치가 평균 1%포인트 하락했다는 분석 수치를 내놓았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 110곳 비상장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0곳(36.2%)이 상법상 이사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상장 계획을 재검토 혹은 철회하겠다고 답했다고 지난 7월 발표했다.

지배구조 컨설팅 업계 관계자는 “외국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한국기업 이사회에 대해 투자자들의 개편 요구가 이어질 것”이라며 “세밀하고 정교해지고 있는 주주제안에 대해 방어논리를 마련하는 일이 기업 급선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aret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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