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부터 ‘조씨고아’까지…“늘 완벽한 작품은 없었다” [헤경이 만난 사람]
2024-11-13 14:20


이태섭 무대미술가 [T space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윤여정의 ‘유리동물원’(1997)부터 배우 조승우의 ‘햄릿’(2024)까지…. 무대미술가 이태섭은 지난 35년 간 무려 200여 편의 무대로 관객과 만났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그는 “무대는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닌 모두의 작품이 돼야 한다”며 “연출가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만들어가는 협동의 묘미가 있는 것이 바로 무대라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한국 공연예술계의 ‘무대 거장’ 이태섭의 여정엔 수많은 명작이 시기마다 쌓였다. 셰익스피어부터 안톤 체호프와 같은 연극, 푸치니·베르디·모차르트와 같은 오페라는 물론 창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전을 다시 읽은 ‘재해석의 달인’이다. 국내 공연계에서 굵직한 무대를 만들어온 연출가들은 언제나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2005년 ‘고양이늪’(연출 한태숙)으로 동아연극상 무대미술상을 받았고, 2021년엔 ‘이해랑 연극상’(31회)을 받았다. 이해랑연극상을 무대 미술가가 수상한 것은 박동우 이후 그가 처음이다.

첫 프로 데뷔는 1990년 ‘오이디푸스 렉스’. 그에게도 ‘시행착오’의 시간들은 있었다. 2005년 국립극단 연극 ‘떼도적’과 2010년 명동예술극장에 올린 ‘시라노 드 베르쥬락’은 거장의 아쉬운 기억이다. 그는 “기능적인 부분에 치중하다 보니 연극의 아름다운 부분(‘시라노 드 베르쥬락’)이 나오지 않거나 생각과 달리 거칠게 표현(‘떼도적’)된 작품도 있었다”고 말했다.


연극 ‘조씨고아’ 서울 공연 [국립극단 제공]

많은 작품 중 그가 직접 꼽은 인생작은 올해 참여한 두 편의 ‘햄릿’과 ‘자전거’(1997),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2015), 창극 ‘리어’(2022) 정도다. 특히 ‘자전거’는 물이 흐르는 도랑을 구현한 미니멀한 무대의 출발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무대의 정형성을 깬 시도들은 이후 연극 ‘리어왕’, 창극 ‘리어’로 이어졌다. 공중으로 무대가 치솟고, 시내처럼 물이 조르르 흐르고, 비가 내린다. 그는 “무대는 항상 위험한 상황이 상존한다”며 “공간적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도”라고 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무대도 파격이었다. 장면마다 공중에 매달린 소도구가 내려왔다 올라가며 무대를 꾸미다가 클라이맥스가 되면 모조리 없어진다. 이 연극에서의 핵심은 커튼이다. “인생은 한 편의 연극과 같다”는 대사를 향해가듯, 무대는 열고 닫히는 커튼을 통해 ‘연극성’을 강조한다. 그는 “과거의 무대는 연기하는 공간을 설명했으나 지금은 연극성을 강조하고, 관객들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말한다.

200여 편의 무대를 올리면서도 거장은 만족하는 법이 없다. 그는 여전히 아쉬운 마음으로 오늘의 무대를 바라본다.

“매번 무대를 올리고, 객석에서 무대를 볼 때마다 더 낫게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요. 제겐 언제나 완벽한 작품은 없었습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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