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트렌드 속에서 누군가는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릅니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일순간에 외면받기 일쑤입니다. ‘메가 브랜드’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유통가의 속사정, [언박싱 프로]를 통해 들려드립니다.
![스탠리 퀜처 텀블러 [SI빌리지 갈무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9/news-p.v1.20250516.3da66dd0a25a434a996e11b93d071db0_P1.png)
[헤럴드경제=전새날 기자] 1913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한 연구실. 전기 오븐 개발에 몰두하던 한 남성은 실험 중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커피를 하루 종일 따뜻하게 마실 수는 없을까?”
오랜 시간 연구실에 머무는 그에게 식어버린 커피는 늘 아쉬운 존재였습니다. 당시에도 보온병은 존재했습니다. 다만 초기 보온병은 유리로 만들어져 깨지기가 쉬웠고, 열 보존력이 길지 않다는 한계가 있었죠.
그는 전기 변압기를 개발하며 배운 이론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유리 없이도 열을 오래 보존하는 보온병을 만들어냅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을 활용한 ‘스탠리’ 보온병은 물리학자의 고민에서 탄생했습니다. 스탠리라는 사명은 창업주인 윌리엄 스탠리 주니어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는데요. 1913년에 설립된 스탠리는 무려 100여년이 넘은 장수 기업이 됐습니다. 이번 주 [언박싱 프로]에서는 스탠리 보온병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스탠리 창업자는 예일대 출신 ‘발명가’
![윌리엄 스탠리 주니어 [NIHF 갈무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9/news-p.v1.20250516.2421c3e21a0348b191a44387f7342ba7_P1.png)
윌리엄 스탠리 주니어는 1858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기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여러 위대한 발명가들처럼 기계와 장치를 만지고 조립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10살 무렵에는 시계를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네요.
스탠리는 아버지를 따라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예일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곧 전기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을 생각으로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독학으로 전기 엔지니어를 배운 스탠리는 전기 램프와 화재 경보기를 제조하는 업체에서 일했습니다. 나중에는 니켈을 도금하는 회사에서 근무하기도 했죠. 연구실에서 실험을 이어가며 수많은 특허를 냈습니다.
1913년, 스탠리는 또 하나의 발명품을 만듭니다. 세계 최초의 진공 단열 스테인리스 스틸 보온병이 탄생한 겁니다. 그는 변압기로 작업하면서 배운 용접 기술을 사용해 두 개의 스테인리스 벽이 있는 진공병을 발명하고 설계했습니다. 스테인리스 벽 사이의 열린 공간은 숯가루로 채워 단열뿐만 아니라 내구성을 높였습니다.
![스탠리의 실험실 공책 [UNION COLLEGE 웹사이트 갈무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9/news-p.v1.20250516.91e4ba1a1451434ea59c206eab019677_P1.png)
사실 보온병을 처음 만든 사람은 따로 있는데요. 영국의 화학자 제임스 듀어가 주인공입니다. 1892년 과학자들은 실험에서 사용할 액체와 기체를 보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관련 연구를 자주 했던 듀어 역시 같은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듀어는 유리로 된 플라스크 두 개를 겹쳐 그사이에 공기를 빼면 온도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내 최초의 보온병을 만듭니다.
이후 함께 연구했던 유리 기술자 레인홀트 부르거는 1903년 가정용으로 보온병을 개발하게 됩니다. 다만 유리라는 소재의 한계로 외출용으로는 가지고 다니기가 어려웠죠. 스탠리가 기존 보온병의 단점을 보완해 만들기 위해 선택했던 소재가 스테인리스 스틸입니다.
스탠리는 본격적인 보온병 제조에 나서기 위해 ‘스탠리 1913’이란 브랜드를 창업하게 됩니다. 제조 과정에 대한 확신이 컸기 때문에 자신의 발명품에 “깨지지 않을 것입니다(It wil not break)”라는 슬로건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회사 설립 후 약 3년 뒤인 1916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산업 노동자·군납품으로 인기
![스탠리 제품 라인의 초기 브로셔 [UNION COLLEGE 웹사이트 갈무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9/news-p.v1.20250516.08b07091127e479bba74aee444503012_P1.png)
스탠리의 고객층은 오랜 기간 남성에 집중됐습니다. 블루칼라 노동자들과 야외 활동을 하는 이들을 주로 공략했기 때문이죠. 열악한 상황에서도 오랜 시간 튼튼하게 버틸 수 있다는 것이 스탠리의 장점이었습니다. 산업 현장의 노동자들은 스탠리 보온병을 통해 따뜻한 밥과 물을 먹고 마실 수 있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등산부터 영하의 겨울 캠핑 여행까지 야외 활동을 즐기는 이들에게 적합했죠.
‘스탠리’하면 빠뜨릴 수 없는 고객이 바로 군인입니다. 스탠리는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미군에도 보온병을 납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물과 음식을 보관하는 용도로 기능을 알리게 됐습니다. 스탠리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색깔이 ‘해머톤 그린’이라는 녹색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군인들 사이에서는 “전투 중에도 따뜻하게 마실 수 있는 보온병”으로 입소문을 타게 됩니다. 실제로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작품들을 보면 종종 스탠리 보온병을 사용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12년까지만 해도 스탠리는 자사 제품이 “30년 경력의 베테랑 경찰관과 퇴역 육군 병사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초기 스탠리 보온병은 ‘기능’을 충실히 알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창업주 윌리엄 스탠리 주니어가 언급했던 “깨지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슬로건을 계속 강조했습니다. 지금처럼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을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다만 튼튼하고 보온·보냉 효과가 좋은 스탠리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도는 점점 높아졌습니다.
대용량 ‘퀜처 텀블러’ 유행의 시작
![스탠리 퀜처 텀블러 [29CM 갈무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9/news-p.v1.20250516.6dd550b131484399879674f1d5f43cdd_P1.png)
노동자, 야외 활동가, 군인. 오랜 기간 ‘남성’에게 사랑받던 스탠리는 어떻게 ‘Z세대 핫템’이 되었을까요. 실제로 스탠리는 다소 투박하고 거친 이미지 때문에 여성들에게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대박을 터트린 스탠리의 대용량 텀블러 ‘퀜처’ 시리즈도 2016년 내놓았지만, 당시 반응은 시들했습니다. 결국 2019년 야심 차게 내놓은 퀜처 시리즈를 단종하겠다는 고민도 하게 됩니다.
2020년 5월, 글로벌 사장으로 스탠리에 합류한 테렌스 라일리는 분위기를 반전시켰는데요. 크록스에서 근무했던 테렌스 라일리는 크록스의 브랜드 이미지도 완전히 뒤바꾼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라일리는 스탠리의 새로운 타깃을 여성으로 설정합니다. 텀블러의 이미지 역시 액세서리의 일종으로 바꿔버리고, 기존보다 다양하고 밝은 색상의 라인을 만들어냅니다.
제품이 잘 팔리기 시작하자 고객의 심리도 이용했습니다. 소장 욕구를 높이는 한정판 색상을 만들고, 유명인, 또 다른 브랜드와 협업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라일리는 “크록스의 경험은 협업 문화와 드롭(한정판 상품을 불시에 판매하는 방식) 문화에서 비롯됐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요. 운동화 신상품이 나올 때 줄을 서듯, 새롭게 제품이 입고 될 때도 의도적으로 ‘오픈런’을 유도했습니다.
스탠리가 새로운 색상을 출시할 때마다 판매량은 계속 증가했습니다. 실제로 미국 스탠리사의 매출은 2019년 7300만 달러에서 2020년 9400만 달러로 급증했습니다. 2021년에는 1억9400만 달러로 두 배 이상 뛰었죠. 인스타그램에 어울리는 파스텔 톤은 퀜처가 포지셔닝한 액세서리 같은 제품으로 돋보이게 만들어줬습니다. 스탠리는 100가지 이상의 색상으로 퀜처를 출시해 선보였습니다. 2020년에 퀜처는 스탠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 됐고, 지금까지 그 위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소한 자동차에서도 생존
![화재로 타버린 차 안에서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텀블러 [abc7 방송화면 캡처]](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9/news-p.v1.20250516.38381190046f4cc3a0d114db65a5f11c_P1.png)
승승장구하던 스탠리 텀블러가 엄청난 화제를 모은 사건은 또 있었습니다. 바로 2023년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한 영상이 바이럴되기 시작하면서인데요. 화재로 전소한 차량에서 얼음이 남아 있는 스탠리 텀블러가 멀쩡하게 발견된 영상 덕분입니다.
틱톡에 영상을 올린 다니엘은 자신의 차에서 화재가 발생해 차가 전소하는 일을 겪게 됐습니다. 그런데 영상 속에는 운전석의 컵홀더에 주황색 스탠리 텀블러가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텀블러 겉의 색깔은 약간의 재가 묻어있었지만, 내부는 멀쩡했습니다. 텀블러를 흔들자 얼음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습니다. 다니엘은 “화재가 난 후 목이 마르시나요? 스탠리 1913은 문제가 없습니다”라며 글을 게시했습니다. 창업주가 강조했던 “깨지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슬로건이 빛을 제대로 발한 에피소드였죠.
영상의 조회수는 당시 6000만회를 넘길 만큼 관심을 모았습니다. 틱톡에서는 스탠리 텀블러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의 조회 수가 억 단위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출도 수직 상승했고요. 스탠리 매출은 2019년 7300만 달러에서 2023년 7억5000만 달러로, 4년 만에 10배 넘게 뛰었습니다.
영상을 접한 테렌스 레일리 스탠리 글로벌 대표이사는 곧바로 다니엘의 틱톡 영상에 응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다니엘에게 스탠리 사의 텀블러를 더 보내줄 뿐만 아니라, 다니엘의 차도 교체해 주겠다며 파격적인 제안을 건넸습니다.
브랜드 협업에 ‘텀꾸’ 문화도 활발
![지난해 스타벅스가 출시한 스탠리 대용량 텀블러와 데코 체인 [스타벅스코리아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5/19/news-p.v1.20250516.5b8f1a90f441469ea4ffb6b929f604d1_P1.png)
미국에서 시작된 스탠리 텀블러 열풍은 곧 국내로도 이어졌습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스타벅스와 협업으로 더 인기를 끌었는데요. 스타벅스코리아에서는 2017년에 스탠리 텀블러를 처음 팔기 시작했습니다. 매년 꾸준히 스탠리와 협업한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죠.
지난 3월에는 화이트데이를 맞아 지난해 미국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큰 화제를 모은 ‘스탠리 핑크 텀블러’를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텀블러는 지난해 1월 미국 스타벅스가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 캠핑용품사 ‘스탠리’, 대형마트 체인 ‘타깃’과 함께 한정 판매로 선보인 제품입니다.
앞서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며 리셀이 이어졌던 제품인데요. 당시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타깃 매장에는 구매 인파가 어마어마하게 몰렸습니다. 일부는 출시 전날 밤부터 매장 앞에 텐트를 치고 밤새워 줄을 서기도 했답니다. 일부 매장에서는 텀블러를 두고 매장 내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스타벅스는 최근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유행인 ‘꾸미기’ 문화를 적극적으로 공략 중입니다. 텀블러를 취향에 맞게 꾸밀 수 있는 열쇠고리도 함께 내놓은 겁니다. 이른바 ‘텀꾸’(텀블러 꾸미기)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Z세대 소비자들을 공략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대표적으로 지난해 선보인 1.18ℓ 대용량 텀블러 3종이 출시 일주일 만에 준비된 수량의 95% 이상이 팔렸습니다. 텀블러를 꾸미는 액세서리인 ‘하트 데코 체인’과 ‘핑크슈 데코 체인’도 완판됐습니다. 함께 선보인 ‘레터링 데코 스티커’도 빠른 속도로 소진됐고요. 아직도 국내에서는 스탠리 열풍이 거셉니다.
물론 스탠리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한 색상이나 마케팅 전략만은 아니었겠죠. 창립자 윌리엄 스탠리 주니어가 자부심을 가졌던 ‘기능성’이야말로 진짜 비결이었을 겁니다.
아무리 예쁘더라도 실용성이 없다면 생명력을 잃을 수 있다는 교훈. 스탠리의 역사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스탠리에 대적할 브랜드가 있을까요? 세계대전과 불길 속에서도 살아남은, 놀라운 생존력을 가져야 가능하겠죠. [언박싱 프로]에서 만나본 스탠리의 치열한 탄생과 꾸준한 인기, 그리고 역사까지. 결국 장수 브랜드는 겉모습이 전부가 아닙니다.
newda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