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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영의 골프장 인문학] 6홀의 역발상 루나엑스
뉴스| 2022-04-0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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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개장한 루나엑스가 새로운 골프 문화를 제시한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골프의 고정 틀을 깨고 6홀씩 라운드하는 골프장이 한국에도 등장했다. 경상북도 경주의 루나엑스(LUNA X)는 클럽하우스를 중심으로 6홀씩 4개 코스 24홀이 운영된다. 게다가 캐디없이 라운드하는 셀프 골프장이다.

골프 한 라운드를 아웃-인 9홀씩 18홀을 라운드하는 방식은 1857년 올드 톰 모리스가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에서 처음 만들었다. 기존의 22홀 중에 동선이 겹치고 중복되는 4개 홀을 통합한 리노베이션 결과 탄생한 것이다.

올드 코스가 바다를 향해 나갔다가 돌아오는 방식이어서 인-아웃이라는 코스 구분도 그때 생겨났다. 골프룰을 정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자리잡은 올드 코스에서 채택한 방식이라 이후 다른 골프장들에 전파되었고 오늘날에도 골프 한 라운드= 9홀 두번 18홀이 나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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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홀씩 라운드하고 들어오는 개념의 루나엑스 클럽하우스 주변. [사진=루나엑스]


9를 거꾸로 돌리면 6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한 라운드에 너덧 시간이 소요되는 골프를 피하는 젊은 층이 늘었다. 오늘날의 골프 종주국인 미국에서부터 골프 인구가 줄어들자 십수년 전부터 기존 방식의 변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미국골프협회(USGA)는 2010년부터 '9홀이라도 즐기자'거나 '포워드티에서 쉽게 치자'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원조 골프황제인 잭 니클라우스는 자신의 대표 코스라 할 수 있는 메모리얼토너먼트 무대인 오하이오 뮤어필드빌리지에 12홀 스코어카드를 만들어 18홀이 아니라 6홀씩 두번 12홀 라운드라도 일단 골프를 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미국 뿐만 아니라 태국에서는 2015년에 방콕 인근에 개장한 고급 니칸티 골프장이 18홀을 6홀씩 라운드 하게 했다.

6홀 단위로 12홀, 18홀, 24홀을 골라 시간 여건과 몸 컨디션 편의에 맞게 라운드할 수 있다는 개념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게 루나엑스다. 경주와 포항의 중간의 천북면의 해발 350미터 완만한 동산에서 지난해 10월 개장한 이 골프장은 빅토리를 비롯해 6홀씩 A, B, C코스 24홀로 구성되어 있다.

골프장 바로 옆으로는 그물망이 없는 340미터 길이 드라이빙 레인지 연습장을 갖췄다. 그래서 이 골프장에서는 연습과 6홀을 플레이할 수 있고, 시간을 절약하는 12홀 반나절 골프를 할 수 있으며, 18홀 정규 라운드와 오후에는 4개 코스를 모두 도는 24홀 플레이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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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캐비냇 라커룸이 로비에 있는 클럽하우스


골프란 모름지기 9홀 단위 밖에 없다는 편견은 지워도 된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12홀을 끊어서 골프하면 하루의 절반은 다른 일에 몰두할 수 있다. 18홀은 아쉽고 27홀이 부담스럽다면 그 중간 정도인 24홀이 가능하다. 드라이빙 레인지가 있어서 실전과 연습을 섞을 수 있다. 한국 골프장의 미래에 가장 필요한 게 바로 이런 융통성이었다. 9를 거꾸로 돌리면 6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것들을 다양하게 시도했다.

이 골프장이 시도하는 건 여러 가지 혁신이 있다. 캐디가 없는 자율골프로 리모콘으로 작동되는 5인승 전동카트로 이동한다. 또한 비대면 방식으로 선결제 예약과 무인 키오스크를 운영한다. 최종규 총지배인은 “MZ세대 젊은 골퍼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골프를 더 편하게 받아들이고 적극 참여하는 편이다”면서 “바람이 적은 날에는 코스관리나 경기 진행에 드론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여느 퍼블릭 골프장처럼 골프장에 골프복장으로 와서 주차장에서 골프화로 갈아신고 클럽하우스에 들어간다. 간단한 소지품 등을 보관할 자그마한 라커는 로비 가운데 비치해 두었다. 라운드를 마치고 샤워를 하는 내장객은 별도로 비용을 내고 사용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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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카트는 리모콘으로 조종하고 그린 옆에는 웨지 거치대가 놓여 있다.


자율 골프가 주는 진정한 해방감
스타트 광장으로 나가면 라운드할 코스와 티오프 시간이 적힌 카트가 나와 있고 내 백을 스스로 실으면 출발 준비가 끝난다. 골프장 직원이 리모콘 조종법과 함께 셀프 라운드의 숙지사항을 알려주면 이제 자율 골프가 시작된다.

카트 뒤에는 공닦는 수건이 걸린 하프백을 걸어두었다. 티샷한 뒤에 각자 아이언이나 어프로치용 웨지와 퍼터를 집어넣고 이용하라는 의미다. 그린 옆에는 혹시 웨지를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혹은 전 홀에서 놓고간 웨지를 놓아두라는 거치대를 설치해 두었다. 캐디없이 자율 골프를 할 때 종종 웨지를 잃어버리고 가는 골퍼가 있기 때문이다. 캐디의 도움 없는 자율 골프에 대한 오랜 시간의 연구 끝에 나온 아이디어다.

6홀을 라운드하는 데는 1시간 20분 정도가 걸린다. 카트에는 GPS기능이 있어 각 홀의 소개와 함께 대강의 거리, 그린에 꽂힌 핀 위치와 그린의 언듈레이션까지 알 수 있다. 모든 카트는 유도선을 따라 움직이고 핸들을 조정할 수 없도록 했다. 따라서 골퍼는 리모컨으로 출발 정지만 누르면 된다. 이 골프장에는 코스 내 그늘집이 없다. 5번 홀을 마치고 카트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클럽하우스로 들어가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 용무를 볼 수 있다.

24홀 각각은 노캐디 라운드를 고려해서인지 페어웨이 폭이 넓고 블라인드 홀을 없앤 것이 특징이다. 6홀의 코스마다 파5와 파3 홀이 한 개씩이다. 그래서 18홀이면 세 개씩의 파3, 파5 홀을 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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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 2번 홀은 그린 뒤로 하늘이 있는 시원한 조경이 특징이다.


빅토리 코스(파24 2135미터)는 업다운이 가장 많은 코스다. 파4 3번 홀 티잉 구역에 서면 저 아래 수십미터 지점에 페어웨이가 펼쳐진다. 이어진 4번 홀은 파5에 왼쪽으로 도그레그 되는 오르막 홀이다.

A코스(파24 2203미터)는 첫 홀이 하늘 끝에 그린이 놓인 듯 정상을 향해 오르는 홀이다. 2번 홀 티잉 구역에 올라보니 전체 코스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주변에 산봉우리들이 층층이 이어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3번 홀은 화이트 티에서 475미터의 파5로 두 번의 도그레그 되어 골프의 본질인 길고 정확한 샷(Par&Sure)을 요구한다.

B코스(파24 2221미터)는 코스 중에 가장 많은 물과 접한다. 티샷마다 물을 넘기는 도전을 해야 한다. 그중에도 파4 4번 홀은 어프로치 샷에서도 물을 피해 온그린을 노려야 하는 난도 높은 샷을 요구한다.

C코스(파24 2155미터)는 고원 지역을 유지해 만든 코스로 완만한 업다운이 특징이다. 페어웨이가 넓고 물이 없어 마음놓고 장타의 욕심을 낼 만한 홀이 있다. 5번 홀은 파3인데도 190미터의 전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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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개장 기념식에서 윤세영 창업회장.[사진=루나엑스]


익숙함을 뒤집은 역발상
최근 몇 년새 수도권 골프장 요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이곳은 골프 비용이 비싸지 않다. 주중에 6홀은 5~8만원이고 18홀을 라운드 하면 12만5천원에서 17만5천원까지다. 24홀을 라운드 한다면 주말에는 최대 28만5천원까지다. 카트를 포함한 요금인데다가 캐디가 없는 자율 골프이므로 식음을 제외하면 이게 골프장에서 드는 비용의 전부여서 여느 수도권 골프장보다는 대폭 저렴하다.

골프장에 대욕탕을 없앤 것도 익숙함을 뒤집은 역발상이다. 이 골프장은 주차장에서 아예 골프 복장으로 오라고 한다. 라운드 후에 샤워를 하려면 유료로 부스를 이용하도록 했다. 라운드 뒤에 탕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골프를 했다고 느낀다면 이미 옛날 방식이다. 영미권 골프장에서는 욕탕 자체가 없고 샤워 부스도 많지 않다.

대신 클럽하우스 바로 옆에 골프 연습장 플레이 엑스를 운영한다. 그물망이 없는 2층 규모 53개 타석에서 샷을 가다듬을 수 있다. 최종규 지배인은 “연습과 골프 라운드를 연계해서 이용하는 골퍼들이 많다”면서 “벙커와 4개의 연습 그린 천연잔디 숏게임장까지 연습 시설로는 어디다 내놔도 자랑할 만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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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엑스는 지난달부터 야간 골프도 개장했다.


타석에서는 PGA투어나 LPGA투어에서 사용하는 최첨단 분석시스템 탑트레이서가 설치되어 있고, 스크린 골프 공간, 프라이빗 연습공간인 VIP공간까지 만들어져 있다. 옥상에는 골프코스가 내려다 보이는 탁트인 전망에서 휴식과 힐링을 느낄수 있는 펍 라운지를 갖췄다.

루나엑스의 전체 시설과 아이디어는 윤세영 태영 SBS미디어 그룹 창업회장의 아이디어가 대부분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윤 회장은 지난 4일 자신의 골프 인생과 삶의 궤적을 담은 책 을 출간했다.

윤 회장은 8년간 대한골프협회(KGA) 회장을 지냈고 지상파 최초로 골프 프로그램을 편성했고 한국 최초로 골프 전문채널을 여는 등 한국 골프 발전에 공헌했다. 그가 자신의 골프 인생을 담은 책 이름을 루나엑스로 한 것은 미래 골프가 혁신을 통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는 ‘우주로 쏘아 올린 골프공’이다. 지난달부터는 루나엑스에서 야간 골프도 개장했다고 하니 달밤에 우주를 향해 공을 쏘는 골퍼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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