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의혹만 키운 이영호 해명…장진수, 반박 추가폭로 예고
뉴스종합| 2012-03-21 10:12
“내가 철저히, 철저히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정치공작은 제발, 제발, 제발 그만 두라.”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의 윗선 중 한명이란 의혹에 대해 해명하러 나선 이영호 전 대통령 이영호(48)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격정’(激情) 그 자체였다. 부사어를 두세 차례씩 반복하며 온몸으로 감정을 토해냈다.

이런 모습은 흡사 조직을 위해 홀로 적진 앞에 선 사무라이를 연상시킨다. 무수한 칼을 혼자 받아내고 장렬히 전사하겠다는 비장함과 결연함, 조직에 대한 충정이 엿보인다. 그러나 이런 태도로 “내가 몸통이다”라고 주장한 게 되레 역효과가 났다는 평이다. 이 전 비서관 뒤에 숨은 윗선에 대한 의혹만 키웠다는 것이다.

이 전 비서관의 20일 기자회견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난 속에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번 사건의 폭로 주체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장진수 전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 측은 “소가 웃을 일”이라며 즉각 반박했다.

▶의혹 투성이 해명… 이영호 자충수 뒀나=이 전 비서관은 2010년 검찰 수사 때 총리실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지우는 등 증거인멸을 지시한 ‘몸통’은 자신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불법자료가 있어 삭제를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공무원 감찰에 관한 중요 정보나 신상정보가 들어 있어 외부유출을 막으려 했다”는 것이 이 전 비서관의 해명이다.

이 전 비서관의 발언대로라면 그는 비선조직을 직접 움직인 셈이다. 그것도 검찰 조사를 앞두고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는 하드디스크 파괴를 직접 지시해 실행에 옮기게 할 정도로 힘이 있단 말이 된다. 그런 이 전 비서관이 불법자료 여부와 무관하게 단지 민감한 정보의 외부유출을 우려해 압수수색 이틀 전에 자료 삭제를 지시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검찰이 압수수색한 자료를 외부로 흘릴 가능성이 극히 적다는 점은 그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오히려 검찰에게까지 숨겨야할 ‘그 무엇’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만 키울 뿐이다.

또한 이 전 비서관 스스로 ‘몸통’이란 단어를 사용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의혹만 무성하던 몸통이 이 전 비서관의 ‘자백’으로 드러났다. 이는 지난 2010년 1차 수사 때 검찰이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다. 당시 검찰은 진경락 전 총리실 기획총괄과장 등 실무진을 재판에 넘기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 지었다. 이 전 비서관은 한 차례 참고인 조사를 받았을 뿐이다.

이 전 비서관이 20분 남짓한 기자회견 동안 7번이나 민주통합당을 거론하며 정치공작 의혹을 제기한 것도 ‘물타기’의도란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전 비서관은 처음부터 “민주통합당이 주장하는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하여 국민여러분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말해, 이번 폭로의 주체를 장진수 전 총리실 주무관이 아니라 민주당으로 찍었다. 이번 사안을 불순한 정치공작으로 몰고가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그가 한명숙 민주당 의원 등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한 것은 수사기관의 사실규명을 통한 법적 판단의 대상을 논쟁거리로 만들려는 것 아니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장진수측 “윗선 담긴 녹취록 더 있다” 대반격=20일과 21일 검찰의 연속 조사를 받고 있는 장 전 주무관 측은 이번 이 전 비서관의 해명이 궤변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곧 추가 자료를 통해 이를 뒤집겠다는 계획도 시사했다.

장 전 주무관 측 이재화 변호사는 “내가 몸통’이라는 이 전 비서관 말은 소가 웃을 일”이라며 “윗선도 곧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공개 녹취록이 있으며 여기에도 윗선이 등장한다”는 게 그 이유다. “검찰을 믿을 만장 전 주무관 측은 이르면 21일 검찰 조사에서 이 녹취록을 증거자료로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장 전 주무관의 폭로→이 전 비서관의 해명→장 전 주무관의 재폭로와 반박’의 흐름은 지난 달 마무리 된 ‘2008년 새누리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사건’과 흡사한 구석이 많다. 폭로 주체와 의혹 세력간 윗선 실체를 놓고 진실공방을 벌이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장 전 주무관의 폭로대로라면 윗선은 총리실과 청와대 내 특정인사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정관계 내 이명박 대통령의 주요 인맥인 서울시청 출신 ‘S라인’, 동향 출신 ‘영포라인’이 개입됐으리란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당장 이 전 비서관과 같은 ‘영포라인’에 속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결국 이번 사건도 돈봉투 사건 때처럼 ‘윗선 규명’이 수사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검찰이 ‘꼬리 자르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중간 실무자급의 사법처리에만 그칠 경우 이번에도 봐주기 수사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주요 변수는 최종석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이다. 최 전 행정관은 장 전 주무관의 녹취록에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이다. 현 주미대사관 주재관으로 미국 체재중인 최 전 행정관은 20일 국내 언론들을 통해 “검찰이 소환하면 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장 전 주무관의 폭로 이후 한동안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던 최 전 행정관이 검찰에 털어놓을 진술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된다.

조용직ㆍ김우영 기자/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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