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반
거제도로 상륙하는 봄의 전령…춘당매 다음은 진달래, 튤립
라이프| 2014-02-28 08:16
[헤럴드경제= 함영훈 기자] 꽃은 봄의 전령이다. 2월 매화와 동백, 3~4월 진달래와 수선화, 5월 튤립, 6월 수국, 7월 연꽃... 대한민국 계절의 신호탄은 늘 거제가 쏘아 올린다. 거제에서 볼 수 있는 온갖 꽃들이 피는 시점은 바로 우리나라 꽃들의 첫 개화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서울 낮기온이 영하 1도였던 지난 21일 거제시 일운면의 옛 구조라 초등학교 교정엔 아이들이 뛰어 놀고, 어른들은 산책과 가벼운 뜀박질을 즐기며 봄을 호흡하고 있었다. 이날 구조라의 낮기온은 영상 10도에 육박했다. 남해의 햇살이 가득메운 운동장 한견엔 아이들이 공놀이를 했고, 70을 훌쩍 넘은 어르신 대여섯명은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운동장을 돌며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피는 거제 ‘춘당매’= 이 교정엔 벌써 보름전 매화꽃이 피었다. 꽃망울은 40일전에 맺혔다고 한다. 구조라 초등학교 터에 핀 춘당매(春堂梅) 아래엔 이런 팻말이 적혀있다.


“춘당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피는 매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매년 1월10일경 꽃망울을 맺고, 입춘 전후에 만개하지만 그 보다 더 빠를 때도 있습니다. 수령은 120-150년으로 추정되며, 현재 구조라초등학교 교정 4그루, 마을 초입 1그루가 남아있습니다.”

서울과 강원도에서만 살았던 여행객으로선 설마 2월에 무슨 꽃이 피랴 했지만, 거제엔 이미 보름전에 봄의 전령이 상륙했고, 매화와 동백이 이미 지기 시작했음을 확인하고는 후회가 막급하다. 그토록 기다리던 봄과 좀 더 일찍 상봉할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다.


양지 바른 쪽의 일부 동백은 낙화했고, 음지쪽은 꽃망울을 터뜨리면 피어나고 있었다. 거제 자연휴양림 지대를 거쳐 망치해변을 지나 구조라 해수욕장으로 가다보면 ‘외도하우스’가 나온다. 이름을 곱씹으면 다소 민망하지만, 겨울연가의 마지막 촬영장소로 사용될 정도로 테라스가 아름다운 집이다. 여기서부터 구조라해수욕장까지 동백이 도로 좌우에 피어 있고, 초등학교 교정의 춘당매는 한반도 봄의 전령사가 찍어 놓은 입춘의 화룡점정(畵龍點睛:용의 눈동자를 그리는 마지막 붓질 한 점)이다.

▶“해풍을 사랑한 동백의 붉은 인고는 본능” = 동백은 구조라에서 남쪽으로 12㎞쯤 떨어진 학동 팔색조 도래지에서도 만개한다. 몽돌해변으로 유명한 학동 남쪽지점 해변가에는 거대한 동백나무 군락지가 형성돼 있다. 구조라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 동쪽의 지심도는 온통 동백으로 뒤덮혔다. 지심도는 3.5㎞에 이르는 동백숲길이 조성돼 봄 기운을 만끽할 수 있다. 지심도는 동백섬이라고 부른다.


동백은 바닷바람이 있는 곳이라야 잘 핀다고 한다. “그대 위하여/ 목놓아 울던 청춘이 이 꽃 되어/ 천년 푸른 하늘 아래/ 소리 없이 피었나니/ 그대 위하여선/ 다시도 다시도 아까울리 없는/ 아, 아, 나의 청춘의 이 피꽃!” 거제 서쪽 산방산 아래에서 태어나 자연주의 청록파 시문활동을 벌였던 청마 유치환은 동백을 ‘속으로 울부짖다 한떨기 붉게 피는 인고의 꽃’으로 묘사한다. 바닷바람 속에 붉은 꽃을 피우는 동백이 탐난다고 해서 서울로 이식하면 며칠 안가 죽는다고 한다. 해풍을 사귀는 동백의 인고와 그 붉은 결실은 본능이다.

▶일찍 피어 성숙미가 물씬 풍긴 변산바람 아가씨= 동남쪽의 일운면과 남쪽의 남부면에는 동백과 매화외에도 행복을 가져온다는 노란색 복수초와 흰색,연분홍색의 노루귀도 곳곳에 피어 있다. 가녀린 줄기에서 보라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룬 변산바람꽃은 차에서 내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도로변을 걷다보면 발견할 수 있다. 날씨가 일찍 풀려서인지 변산바람 아가씨는 좀 있으면 아줌씨가 될 태세다.복수초 역시 돌틈 사이를 주시해야만 찾을 정도로 수줍음이 많다.

매화와 동백이 질 무렵, 3월 중하순 부터 거제 남쪽 망산 가라산부터 진달래가 피기 시작해 거제북쪽 진달래 군락지인 대금산엔 3월말 4월초에 만개하면서 진달래 축제가 열린다.

▶거제 대금산 진달래와 공곶이 수선화의 개화 전쟁= 거제의 수선화와 진달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화 경쟁을 벌인다. 3월말 4월초 일운면 와현해수욕장에서 좌측 산길을따라 5분정도 들어가는 예구마을(공곶이)에서는 노란 천국을 만날 것이다. 수선화는 꽤 오래 피어있어 5월에도 볼수 있다.


수선화의 바통은 외도의 튤립이 이어 받는다. 외도의 튤립은 4월 하순 5월초 피어나며 본가인 네덜란드 사람들도 놀랄 정도로 원색의 유혹이 짙다. 5월부터 8월까지 이어지는 수국(남부면 해안도로 일대와 외도 등지)와 연꽃(연초면 다공마을 등지)의 릴레이 패션쇼는 거제를 찾는 객들의 마음을 정화하기에 충분하다.


▶숱한 볼거리가 거제의 전부는 아니다…동지섣달에도 꽃 볼 듯한 ‘거제 화원(花園)’= ‘바람의 언덕’과 풍차, 해금강과 대병대도, 소병대도, 무지개해상탐방로,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골프장으로 꼽히는 드비치CC, ‘청마의 해’에 찾아보는 청마 유치환의 문필 흔적과 기념관, 어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문동폭포, 문화와 동행하며 즐거움으로 탐방하는 조선소들, 거가대교 등 볼거리가 넘치는 거제도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시사철 꽃과 함께 하는 거제도에선 거짓말 같지만,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꽃을 맘껏 볼 수도 있는 ‘거대 화원’이기도 하다.

/abc@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