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반
열정과 냉담이 반복되는 한국 관광의 아슬아슬한 곡예
라이프| 2014-04-03 09:01
[헤럴드경제=함영훈 라이프스타일 부장]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고/ 추억에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

영국의 시인 토마스 엘리엇이 4월을 잔인하다고 표현한 것은 기실 겨울을 지난 뿌리와 싹, 꽃과 신록의 처절한 투쟁과정을 거쳐 이 아름다운 계절, 봄이 만들어진다는 뜻이겠다. 치명적인 역설로 봄이 주는 감동과 그 감동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열망을 담았다. 겨우내 움츠렸던 나와 이웃도 얼마나 기다렸던 봄인가. 봄 나들이 열풍이 매섭다.

일요일 오후, 놀러갔다 돌아오는 인파들로 대도시 주변 도로가 주차장으로 돼 버리는 요즘의 행락 풍경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불고 있는 ‘별빛’ 한류 열기, 수천~수만명 단위 단체관광객의 한국행 예약 소식을 접하노라면, 올 봄 대한민국 관광은 죽은 땅에서 활짝 피어오른 라일락꽃 처럼 역동적인 부활의 노래를 부를 것만 같다.

내수관광의 GDP 기여율이 높지 않은 점을 감안해 국민들이 내 나라 구석구석을 더 많이 찾도록 하고, 외국 손님을 더 많이 모시려는 박근혜 대통령, 유진룡 문체부 장관의 노력도 더해지는데다, ‘관광주간’ 선포, ‘창조관광’ 벤처기업 육성, ‘문화가 있는 날’ 지정,무비자 입국 허용 확대 등의 조치가 이어지고 있으니 기대감은 어느때 보다 크다.

그런데, 찜찜한 구석이 있다. 가 볼 만한 곳을 찾아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떠도는 여행기자들 입장에서 보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취지와 실제 다니면서 느끼는 현실감 간에 다소 차이가 있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일부 정책은 전시행정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여행기자들이 가장 고민스러운때는 비수기이다. 어떤 밥상을 차려야 움츠린 국민, 바빠서 숨이 헐떡거리는 샐러리맨과 학생들에게 한 숨 돌릴 기회를 줄까 하는 생각을 거듭하게 된다. 대한민국 처럼 성수기와 비수기가 극명한 대비를 보이는 나라는 없다. 성수기의 열정과 비수기의 냉담이 반복되는 이 아슬아슬한 한국관광의 곡예는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다. ‘한철 장사’ 풍토가 바가지를 낳아 여행자의 발길을 주춤거리게 만드는 게 대표적인 풍경이다.

해지지 않는 관광 한국을 만들려면, 5월1~11일, 9월25~10월5일 등 성수기 22일로 정해진 관광주간을 비수기인 6월과 11월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성수기 관광주간 지정을 놓고, “어차피 국내외 관광객이 많은 시기인데, 관광주간 지정으로 성과있었다고 생색내기 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벌써부터 들린다. 학생들에게 그 기간 관광방학을 준다고는 하지만 문체부와 교육부가 충분히 조율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6월과 11월 아이들의 시험이 임박한 때라서 안된다는 말이 충분히 나오겠지만, ‘여행기’ 제출을 내신에 반영하는 등의 관광방학을 담보할 실질적인 대안이 포함되었어야 했다.

외국 손님을 재우기 위한 숙박문제와 관련한 정부의 대책도 2% 부족한 느낌이다. 문화관광연구원 조사결과 외국손님들은 8만~9만원 짜리 방에서 자고 싶은데 서울엔 20만원대 고급숙박시설의 점유율이 70%에 달한다. 서울의 세계적인 위상이 달라짐에 따라 호텔증설은 불가피하지만, 6만~11만원 대 숙박시설에 대한 규제를 풀고 모텔급 숙박시설을 리모델링하거나 확충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관광연 조사결과 한국관광 희망객 중 50%가 방값이 비싸서 한국여행 계약을 포기했단다.

한국관광의 진정한 봄을 위해 관광정책 당국자들은 전시행정의 꼼수를 버리고 탁상에서 내려와 거친 땅 위에 두 발을 굳게 디딘 채, 여행객의 체감도를 높이기 위한 세심함을 보여야 한다.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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