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글로벌 기업들, 한국에서는 그래도 되나요?
HOOC| 2015-11-11 12:37
[HOOC=서상범 기자]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JTBC 드라마 ‘송곳’. 외국계 기업을 다니는 주인공이 부당한 회사의 지시에 항의하기 위해 찾아간 노동상담소 소장에게 질문을 합니다. “외국계 회사가 어떻게 이런 비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되돌아 온 답은 “한국에서는 그래도 되니까”라는 무심하고도 차가운 한 마디였습니다. 글로벌 기업을 표방하고, 이른바 선진화된 서구 회사라고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비합리적이고,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다는 불편한 진실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대사죠. 



이 대사를 본 시청자들은 씁쓸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현실을 묘사했다는 평가를 보이며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비단 드라마 속 가상의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요. 실제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글로벌 호갱(호구와 고객의 합성어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을 뜻함)이라는 자조섞인 용어를 사용하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이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비싼 가격에 팔리거나, 서비스의 혜택 차이가 나기 때문인데요.

▶한국에서는 비싸게 팔아도 되니까, 코리아 프라이스=대표적인 예는 이른바 코리아 프라이스로 불리는 한국내 고가 정책입니다. 지난 2014년 1월 포르쉐가 중소형 SUV 마칸을 런칭하며 미국 가격 대비 무려 3000만원 가까이 비싼 국내 판매가를 설정했는데요.

당시 출시회에서 김근탁 포르쉐 코리아 대표는 비싼 국내 판매가격에 대해 “한국 소비자의 성향을 고려해 책정했다”며 코리아 프라이스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비단 포르쉐 뿐 아니라 다른 수입차 역시 일반적으로 국내 소비자가격이 해외 판매가격보다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죠.

여기에 지난 6월 소비자단체가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의 미국ㆍ독일ㆍ일본 사이트에서 소파와 수납장 등 120여개 품목을 조사한 결과 국내 판매가격이 이들 3개국보다 평균 15∼20%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도 있습니다. 조사에서 일부 품목의 경우 미국의 2배 가까이 되는 가격에 팔리기도 해 논란이 됐는데요.

지난 9일에는 소비자연맹이 수입화장품 및 수입탄산수의 가격실태 조사를 하기도 했는데요. 이 조사에서 수입 화장품의 국내 판매 가격은 해외 평균가 보다 최대 2.5배 비쌌고, 탄산수의 경우 무려 8배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이는 최근 원화 강세를 감안했을 때, 이들 업체들이 한국에서 적용하는 가격이 ‘바가지 가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요.

▶한국에서는 서비스 제대로 안해도 되니까=가격 뿐만이 아닙니다. 해외와 국내에서 똑같이 팔리는 제품에 대한 서비스 역시 국내 소비자들은 호갱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국내 휴대폰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아이폰의 경우 고객 당사자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AS 서비스를 진행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화면 액정이 깨진 아이폰의 수리를 맡길 경우 고객은 액정 교체 비용인 16만9000원 대신 기기 교체에 해당하는 37만5000원을 먼저 지불해야 한다는 정책인데요.

애플은 고객이 요청한 액정 외에 자신들이 수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부분까지 임의로 수리한 다음 이에 해당하는 비용을 일방적으로 차감합니다. 고객이 수리 도중 취소를 요청하거나 반환을 요구해도 돌려주지 않죠.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자, 올해 국정감사에서 애플코리아의 대표가 증인으로 출두하기도 했지만, 원론적인 답변 외에 개선책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고객 불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아도 되니까?=문제가 지적되는 부분에 대한 적극적이지 않은 대응 역시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부분입니다. 얼마전 발생한 벤츠 골프채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2억원이 넘는 차량을 구입한 고객이 잦은 결함을 호소하다 결국 골프채로 차량을 파손시킨 사건이 전국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는데요. 당시 해당 차량을 판매한 대리점 및 벤츠 코리아는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해당 고객을 업무방해로 고소했다 취소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이 이슈가 되고, 해외에서도 화제가 되자 해당 판매점은 신차 교환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이후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다른 고객들의 사례가 이어지고 결국 해당 차량은 국토교통부의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렇다면 전세계적으로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떨까요? 최근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사건이 밝혀지며 전세계적인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폴크스바겐 측은 조작을 인정하며 고객 보상을 위한 논의를 진행중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국내 소비자들은 한발짝 물러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최근 미국내 구매 고객들에게 1인당 1000달러 정도의 보상금액을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해진 보상액만 무려 5500억원 규모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객들에게는 아직 아무런 보상계획이 없습니다. 물론 미국의 경우 미국정부가 조작여부를 완벽하게 밝히고 그 내용을 발표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환경부에서 아직 조사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글로벌 차원의 조작이 이뤄졌고, 그 사실을 본사 측에서 확인한 상황에서, 국내 조사결과만 기다린다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내 기업의 국내 소비자 역차별?=한국 소비자에 대한 차별은 해외 기업들에게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 기업들의 국내 소비자들에 대한 이른바 역차별 문제도 계속해 제기되고 있는데요.

최근 LG전자는 신형 스마트폰 ‘V10’ 계약자에게 사은품을 주는 판촉을 진행하면서 한국 소비자에게는 약 5만원, 미국 소비자에게는 36만원 상당의 사은품을 제공하며 역차별 논란이 일었습니다.



현대자동차 역시 미국과 한국의 AS 보장 기간의 차이, 내수와 수출용 차량의 안전성 차이 등 끊임없이 역차별 논란에 휩싸이고 있죠.

특히 현대차는 이런 역차별 논란이 안티 현대 정서로까지 발전해 회사 차원에서 성난 국내 소비자들을 달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업종과 국적을 가리지 않고 국내 소비자들을 홀대하는 기업들의 사례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박탈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왜 해외에서는 명품 서비스, 합리적인 가격정책을 지향하는 업체들이 한국에만 들어오면 180도 달라지냐는 볼멘 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진정 드라마 송곳에 나오는 대사처럼 “한국에서는 그래도 되니까”라고 생각하는 업체들이 있으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합리적인 정책을 똑같이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전개하는 기업들의 전향적인 움직임을 기대해봅니다.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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