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명암 엇갈리는 기획소송①] 법조계 주도 소송에 ‘변호사 배만 물린다’ 비판도
뉴스종합| 2018-07-18 09:01
[사진=연합뉴스]

-대법원, 대규모 소송 ‘싸이월드’ ‘아이폰’에 “배상책임 없다” 판결
-변호사 업계에서 먼저 소송 기획하지만 패소하는 경우 많아
-사회적 문제 환기하고 소비자 권익 신장하는 순기능도 수행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대법원은 최근 SK커뮤니케이션즈에 ‘싸이월드’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2011년 7월 중국 해커의 침입으로 싸이월드 회원 3490만 명의 개인정보가 빠져나간 지 7년여 만에 내려진 최종 판단이다. 수천 명의 피해자들이 소송에 참가했지만 비용만 날렸을 뿐,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없었다.

변호사들이 먼저 대규모 소송인단을 모집하는 ‘기획소송’이 늘고 있지만, 참가자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배상금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소송 대리인에게 수임료만 챙겨주고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1년 애플이 사용자 동의 없이 위치정보를 수집한 것을 문제삼은 사건 역시 7년이 지난 최근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지만, 2만8000여 명의 참가자들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 사건도 변호사업계가 먼저 나서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고 참가자들을 모집했던 기획소송의 대표적 사례다.

소비자 의식 수준이 향상되고,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제조물책임법처럼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관련 법제가 강화되면서 이같은 소송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싸이월드 정보유출이나 애플 위치정보 수집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소송을 내더라도 최종 결론이 나올 때까지 오래 걸리는 데다, 실제 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실제 정보유출 사건의 경우 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단순히 업체 측 과실을 입증하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실제 어떤 손해를 입었는지 구체적으로 소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객 3577명이 소송을 내 일부 승소했던 롯데카드 정보유출 사건의 경우도 업체가 3억5700만 원의 배상금을 물었지만, 1인당 위자료는 10만 원에 불과했다. 구체적 손해를 입증하지 못하고 정신적 피해를 보상받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기획소송은 모집 단계에서 1인당 수백만 원의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내세우는 곳이 많지만, 밖으로 새 나간 정보가 범죄에 이용되거나 영리 목적으로 활용되는 등의 정황이 입증돼야 한다. 민사 재판 증거를 강제로 제출하도록 하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영업비밀을 이유로 업체가 자료 제출을 거부할 경우 과실을 입증하기도 어렵다. 다만 지난해 ‘법정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서 현재는 피해자가 손해액을 입증하지 못해도 법원이 최대 300만 원까지는 배상책임을 물릴 수 있게 됐다.

소송에 이기더라도 다수의 이해관계가 얽힌 기획소송 특성상 소송 당사자와 변호사 간 승소 금액 배분 분쟁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2015년 영종도 신도시 아파트 입주민들은 입지조건과 관련된 분양광고가 허위라는 사실을 대법원으로부터 확인받고도 배상금 지급 시기가 늦어지자 소송 대리인과 갈등을 빚었다. 대구지역 공군 비행장 소음 피해 기획소송을 맡았던 변호사가 승소금의 지연이자를 빼돌렸다는 이유로 횡령 혐의로 기소된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하지만 기획소송이 소비자 권익을 강화하는 순기능을 수행하는 면도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이어진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인해 소송이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웹 보안 수준이 크게 향상됐다. 아파트 건설 하자 책임을 묻는 소송이나 군 비행장 소음처럼 구체적인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사안에서는 당사자들이 수백억 원대 배상금을 받아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사례가 반복되면 업체들이 사업 시행 단계에서 위험 요인으로 고려하기도 한다.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진 전기요금 누진제가 부당하다는 민사소송의 경우 대부분 패소했지만, 요금체계의 합리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었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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