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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성희롱 피해학생 40명인데 학교는 입단속만
뉴스종합| 2019-12-03 10:30

“그러니까 제보한 학부모가 누구냐고요.”

지난 27일 오후 ‘SNS남학생 집단 성희롱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 양천구 A중학교를 찾았을 때 학교 고위 관계자가 말했다. 그는 취재진의 직접 방문에 몹시 불쾌감을 드러냈다. “교내 성희롱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었느냐”, “앞으로 대책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기자가 왜 가운데서 학교 일에 끼어드느냐”며 “제보한 사람이 누구냐”고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피해 학생과 부모들이 생각났다. 지난달 18일 서울 양천구의 한 중학교 3학년 남학생 10여명이 수개월간 SNS을 통해 수십명의 여학생을 대상으로 심각한 수위의 언어 성희롱을 한 것이 드러났다. 가해 학생들은 단체 채팅방에서 특정 여학생들을 겨냥한 성적 혐오 발언을 주고받고 여학생들의 사진을 공유하는 ‘짤방’을 통해 여학생들을 몰래 찍어 올리고 여학생들이 SNS에 올린 사진을 합성·편집해 공유했다. 피해 여학생은 40여명에 이른다. 피해학생은 친했던 남학생들이 한 행동에 대해 “배신감이 든다”고 괴로워했다. 이를 지켜보는 부모들의 마음은 찢어졌다.

학교는 제보자를 학교를 배신한 반역자 취급했다. 학교 관계자는 사건 이후 절차대로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었고 아직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누가 이를 언론에 고발했느냐고 기자에게 따져 물었다. 성희롱 발언 캡처본이 수백개인데도 “혐의 다툼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폭위 회의를 할 때 학폭위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는 내용의 선서를 했다”며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누가 약속을 어기느냐”고 훈계하듯 말했다. “학교 변호사를 통해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조치를 취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학폭위 안내사항에는 “회의 참석자 전원은 위원회에 참여해 알게 된 모든 사항에 대해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쓰여 있었다. 이것은 학폭위 회의에 참석한 이들에게 회의 내용에 대한 비밀을 유지해달라는 의미였지, 피해 당사자가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학폭위 참여 중 이 사건에 대해 알게된 제3자가 외부에 이를 알리고 다닌 것이라면 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사건 피해 당사자가 언론에 털어놓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피해 학생의 부모는 학폭위를 통해 알게된 사실을 제보한 것이 아니라, 직접 딸로부터 들은 사건을 기자에게 알린 것이었다. 게다가 이 조항이 존재하는 이유는 혹시 모를 ‘피해 학생 보호 차원’이라는 점에서 해당 관계자의 지적은 본질과 어긋나 보였다.

교육청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한 피해자 부모에 따르면 그는 교내 성희롱 사건을 알게 된 뒤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 전자민원 ‘서울교육 신문고’에 해당 사실을 알리는 비공개 글을 올렸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민원 글을 지워달라”는 이름 모를 담당자의 압박 전화뿐이었다. 수소문 끝에 해당 담당자가 강서양천 교육지원청 소속 해당 장학사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민원글을 내리라고 말한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은폐나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예상치 못한 답변이 이어졌다. 그는 “혹시 녹취가 있으면 달라”고 했다가 “당사자 동의 없는 녹취는 불법인 거 아시죠?”라고 말했다. 기자를 상대로 한 위협이었다. 앞서 학교 관계자가 제보자를 가리켜 “학폭위 내용을 발설하면 불법”이라고 말한 것과 겹쳐졌다. 물론 통화 당사자가 통화중 내용을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학교와 교육청 두 기관 모두 해당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하는 데에만 급급한 듯했다. 일반인들은 ‘위반’,’ 불법’이라는 말만 들어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자식과 연관된 일이라면 더더욱 겁날 수밖에 없다. 피해 부모는 "힘없는 일반 사람들이 공무원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잘못했나’보다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억울한 일이 있으면 도대체 누구한테 말해야 하냐"고 토로했다.

반복되는 성희롱 사건을 막으려면 교육과 처벌 등 복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해당 학교와 교육청이 최선을 다해 이 사건을 다뤄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무조건 쉬쉬하고 은폐하려는 학교의 태도는 피해 부모를 두번 울리는 일이다. 소중한 자식을 학교에 믿고 맡긴 부모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것에 대해 학교 측에 항의할 수도 있고 교육청에 하소연할 수도 있다. 이를 기관에 대한 공격이나 명예훼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안타깝다. “누구를 위해 이러한 기사를 쓰냐”고 물었던 그 학교 관계자에게 말하고 싶다. “학교가 보호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서요”

사건팀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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