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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마침표 찍은 나영석PD
엔터테인먼트| 2012-02-28 09:48
대한민국 방방곡곡 누빈 4년6개월 대장정

촌스럽고 보수적이지만 온 가족 볼 수 있도록

‘국민예능’의 토대·색깔 만들어 낸 장본인


여행은 곧 설렘이자 향수…감성 전하려 노력

팬들과의 소통이 롱런 비결 아니었을까


국민예능 ‘1박2일’의 1막이 마감됐다. 4년6개월간 국민을 웃고 울린 리얼 여행 버라이어티가 지난 26일 시청자와 안녕을 고했다. 강호동 은지원 이승기 이수근 엄태웅 김종민 김C MC몽 등 ‘1박2일’ 멤버들은 마치 형제처럼 격의없이 지내며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하곤 했다.

‘1박2일’이 국민예능급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형제처럼 잘 어울리는 멤버들의 활약 때문이지만 나영석 PD의 공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나 PD는 ‘1박2일’을 초기부터 지휘하며 프로그램의 색깔을 입혔던 인물이다. ‘1박2일’이 다소 촌스럽고, 보수적이면서 가족들이 함께 시청하기에 좋은 예능이 된 것은 나영석 PD 덕분이다.

나영석 PD는 멤버들에게 “안됩니다” “땡” “실패”라고 잘라말하는 버릇이 있다. 그가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고 독하게 굴어도, 게임에서 패하면 가차없이 찬물에 입수시켜도 시청자들은 다 안다. 나 PD가 인간 냄새가 물씬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는 제작진과 멤버들이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도 기분 좋은 그림이 그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영석 PD는 한마디로 ‘촌놈’ 스타일이다. 스스로 세련된 코드보다는 투박하고 전통적인 아날로그 코드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성향이 지난 5년간의 ‘1박2일’에 오롯이 묻어있다. 마지막 여행에서도 40년 된 정읍의 해장국 집을 가고, 극장도 필름을 돌리는 옛날 영화관을 찾았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추억,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나는 2008년 2월 1일 기자로는 최초로 ‘1박2일’을 동행취재하는 행운을 얻었다. 전남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의 한 고택을 동행 취재하며 ‘1박2일’ 여행지는 널리 알려진 명소가 아님을 알았다. 강호동 이승기 은지원 MC몽 이수근 김C(당시 멤버)가 돌아다니는 곳은 전국 방방곡곡의 평범한 시골장터나 농촌마을이었다. 보통을 주문해도 곱빼기 수준으로 나오는 짜장면, 그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인정 어린 곳이었다. 최근 나영석 PD와 다시 만나 ‘1박2일’에 대해 많은 걸 물어봤다.


-첫방송인 충북 영동편(2007년 8월 5일)이 기억나는가.

“하나하나 다 난다. 첫날은 라면을 숨어서 먹다 들키는 장면을 담았지만 이튿날은 뭔가가 잡혔다. 한 팀은 낚시하고 한 팀은 다른 걸 했는데, 지상렬이 낚시가 안 되니까 근처의 쏘가리집에 가서 카드로 먹으면 되지 하고 나갔는데, 이 현장을 강호동에게 잡혔다. 강호동이 동료를 배신하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했다. 여기서 뭔가 되는 줄 알았다. 이것이 리얼이고 야생이구나. 그 전에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치고 나오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이 점에서 강호동의 공헌도는 매우 높다. 원칙을 정하고 그걸 위배할 경우 제재를 가하면 되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여행 느낌이 아니었다.”

나영석 PD는 연출자와 출연자가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면 좋은데, 강호동과 자신은 톤이 맞았다고 했다. 


-그동안 100곳이 넘는 여행지를 다녔다. ‘1박2일’의 지향점은?

“어디 가서 뭘 먹고는 여행 정보의 기본이다. 이것저것을 보여주지만 여행은 설렘, 어떤 일이 일어날까, 누구를 만날까다. 보편적인 감정이요, 향수적 감성이다. ‘복불복’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 여행과 맞아떨어진 면이 있어 시도했다. 여행지보다는 사람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단순히 여행을 하는 모습이 아니라, 여행을 하면서 예기치 못한 감성을 느껴보자는 것이었다. 백두산 천지에 가서 윤동주의 흔적을 찾고, 용정의 동포를 보면서 콘서트를 열었다. 사람을 만나고, 동포를 위해 무엇을 할까를 생각하다 내린 결론이었다. 자연스런 감정의 흐름이다. 이게 여행의 포인트였다.”


-특히 섬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섬은 큰 맘을 먹지 않으면 가기 힘들다. 그래서 대리만족이 큰 편이다. 자연이 잘 보존된 가거도, 거북손을 따먹었던 만재도, 여서도, 무인도 등 기억나는 섬들이 많다.”


-단순한 게임이 대단한 힘을 발휘하던데?

“원래 버라이어티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족구 탁구 배드민턴 낚시 등산이다. 초기 자유여행으로 이외수 선생님 댁에 갔을 때 탁구대가 있어 그냥 해본 것이다. 거기다 작은 내기를 걸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윤기가 돌았다. 같은 게임도 거는 상황이 다르니까 지루하지 않았다. ” 


-‘1박2일’은 팬과의 소통력이 좋았다. 루머나 오해가 생기면 PD가 즉각 사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초기 밀양편할 때 이수근 등 멤버들이 아궁이에 참깨를 떨고난 나무와 빨래판을 집어넣어 네티즌에게 민폐 끼치려고 시골에 갔냐는 등 욕을 많이 먹었다. 그 집의 할머니는 나의 외할머니다. 태우기 위해 일부러 내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으면서 느낀 바가 있었다. 내 기준이 아닌 시청자의 기준과 관점을 잘 살펴야겠다. 비난에 대해서는 억울한 점도 있었지만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다. 그렇게 이해하면 바로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다.”


-3월 첫주부터 방송될 시즌2의 최재형 PD가 만드는 ‘1박2일’은 어떨까?

“(망설이다가) 최 PD도 나처럼 촌스런 스타일일 것 같다. 다큐보다는 예능적 측면에서 접근할 것 같다.” 


-‘1박2일’을 끝내고 새롭게 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많았는데 요즘은 없어졌다. 좀 더 쉬면서 생각해보겠다. ‘1박2일’코너 몇 개를 분화하는 스핀오프도 가능할 것 같다. 유홍준 교수와 여행하는 것을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겠다. ‘1박2일’에서 파생된 지역 음식도 스핀오프로 만들어볼 수 있다.

명사특집도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원래 명사특집의 기획의도는 원빈(정선), 고두심 씨(제주) 같은 사람을 모시는 거였다. 문근영도 광주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해 초청하고 싶었다. 이런 사람들이 1박 멤버와 고향을 가 여기가 내가 놀던 곳인데, 흔적이 묻어있는 초등학교와 당시 친구도 만나고. 여기서 게스트의 마음을 열고 감화를 받을 수도 있고, 원래는 이랬는데 박찬호가 섭외돼 공주로 가서 추억을 더듬어 본 것이다.”

나영석 PD는 ‘1박2일’팀을 이끌고 청주를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자신의 고향이라서 못 갔다. 공영방송 PD로서 지켜야 될 입장이었다. ‘1박2일’을 끝낸 나영석 PD는 1~2달 휴식을 취하고 외국에도 단기연수를 다녀올 예정이다. 소파에 누워 DVD를 보는 것과 만화방에 가서 만화보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최고의 휴식이자 호사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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