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21세기 아트컬렉터의 또다른 이름? 이익 쫓는 ‘투자자’ ?
라이프| 2014-02-24 10:00
[헤럴드경제= 이영란 선임기자] ‘아트 컬렉터(Art Collector)’란 작가의 창작물인 미술품에 매료돼 이를 수집하고, 두고두고 음미하면서 작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미술애호가를 가리킨다. 그러나 21세기들어 이같은 정의는 수정되어야 할 상황에 처했다. 미술품 수집을 통해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미술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크리스티, 소더비 경매가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고, 올들어서도 호황을 이어가자 뉴욕타임스(NYT)와 블룸버그 통신은 이제 ‘아트 컬렉터’라는 용어 대신, ‘(치고 빠지는)아트 투자자’로 바꿔불러야 할 시기라고 일침을 놓았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7일 ‘For the Love of Art, and Money’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수집가의 시대는 끝났고, 투자자의 시대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작금의 아트컬렉터를 두 부류로 구분했다. 장기간 작품을 보유하는 컬렉터(Long Term Collector)와 단기투자자(Short term Collector)가 그것이다. 그리곤 고가의 작품을 샀다가, 곧바로 되파는 거물급 수집가는 ‘super flipper(거물 단타매매자)’와 다름없다고 규정했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Portrait of George Dyer Talking’. 올 2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747억원에 낙찰됐다.

원래 ‘flippers’는 부동산과 기업공개(IPO)시장에서 ‘매매차익을 위해 단기 거래를 일삼는 사람들’을 뜻하는 용어다. 미국에선 저평가된 집을 찾아내 이를 매끈하게 수리한 뒤 비싸게 되파는 이들을 Real Estate Flippers라고 일컫는다. 주택을 ‘주거가치’가 아닌 ‘투자가치’로만 보는 사람들처럼, 미술시장에서도 ‘flippers’는 작품을 ‘투자적 목적’으로 구입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실제로 미술품이 ‘단기 투자상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돈냄새(?)에 민감한 투자자들로 인해 아트마켓(특히 경매)은 더욱 성시를 이루고 있다. 더구나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함에 따라 ‘고수익의 투자처’를 찾는 이들에겐 ‘희소성과 투자메리트’가 있는 미술품이 매력적인 아이템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술품경매는 고객의 신원을 밝히지않는 것이 250여년 넘게 이어져온 불문율이란 점도 매력적인 요소이다.

NYT는 단기투자자로 멕시코의 금융재벌 데이비드 마르티네스와 대만의 거물사업가 피에르 첸을 거론했다. 마르티네스는 5년 전 프란시스 베이컨(영국)의 유화 ‘이야기 중인 조지 다이어의 초상(Portrait of George Dyer Talking)’을 1200만달러에 사들인 뒤, 올 2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 다시 내놓은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이다. 이 초상화는 당초 예상가가 3000만파운드였으나 4220만파운드(약 747억원)에 낙찰돼, 5년여 만에 작품값이 약 5.5배 상승했다. 다른 어떤 투자를 통해서도 이룰 수 없는 높은 투자수익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소더비 런던 경매에 출품됐던 루시앙 프로이트의 회화 ‘녹색 소파 속의 여인'.

‘Portrait of George Dyer Talking’은 베이컨의 단일작품으론 최고가를 경신했다. 지금까지 베이컨의 유화는 지난해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현대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인 1억4240만달러(약 1515억원)에 낙찰됐던 ‘루시안 프로이트의 세가지 연구’(Three Studies of Lucian Freud)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3점이 연결된 작품이어서, 단일 유화로는 마르티네스가 보유했던 작품의 낙찰가가 최고가인 셈이다.

대만의 거물사업가인 피에르 첸도 고가의 미술품을 경매를 통해 더 비싼 가격에 되파는 ‘슈퍼 플리퍼’로 거론됐다. 생존작가 중 세계에서 작품값이 가장 비싼 작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독일)의 회화를 여러 점 보유 중인 그는 3년 전 구입한 리히터의 1994년 작품 ‘벽’을 이번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았다. 첸의 보유작은 1740만파운드라는 높은 가격에 새 주인에게 넘겨졌다.

NYT는 “예전의 미술품 투자자들은 인상주의 작품과 클래식한 근현대미술 등에 안정적으로 투자하며 오랜 기간 보유했는데, 최근의 단타 매매자(flippers)들은 (유명 현대미술가들의 이름난 작품과 함께) 신예및 유망작가 작품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뒤 수익이 실현되면 곧바로 되파는 경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소더비 런던 경매에 나온 르네 마그리트의 유화 앞을 직원이 지나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또한 아직 좀더 지켜봐야 할 젊은 작가들의 작품값이 지나치게 수직상승하는 추세를 우려했다.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차근차근 가격이 올라가야 훗날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Rain 페인팅’의 작가 루시엔 스미스(미국)는 올해 24세의 새내기 작가임에도 작품이 마켓에 나오기가 무섭게 팔리고 있다. 사이 톰블리(1928~2011)의 그림을 연상케하는 오스카 뮤릴로(미국)의 회화 또한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뮤릴로의 ‘무제’는 지난해 9월 뉴욕 필립스경매에서 추정가의 10배에 달하는 40만1000달러(약 4억3000만원)에 팔려 큰 화제를 모은바 있다.

‘빗방울 회화’로 스타덤에 오른 아시아계 미국 작가 루시엔 스미스(24)의 작품 ’What Women Want‘.

한편 뉴욕과 런던의 미술품 경매장에 중국, 홍콩, 인도네시아, 한국 등 ‘아시아 큰손들’과 중동 왕실 관계자가 앞다퉈 모습을 드러내면서 낙찰가는 천문학적으로 뛰어오르고 있다. 미술품 경매시장이 21세기 ’머니게임의 각축장‘으로 부상하는데 새로운 고객층의 유입은 거의 절대적인 요인인 셈이다. 이에 소더비와 크리스티는 아시아및 중동에 경매소를 여는 등 전세계적으로 판로를 확장 중이다.

실제로 지난 2월 5일 소더비의 인상주의및 20세기 미술 경매에는 역대 최다인 44개국의 입찰자가 참여했다. 소더비 측은 중국 본토, 홍콩, 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에서 온 입찰자들이 대거 몰렸다고 설명했다. 이들 아시아 고객은 지난해보다 두배의 돈을 쓰고 있다고 소더비측은 밝혔다.
아시아 고객들은 크리스티 경매에서도 (전화응찰 등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 중이다. 자고로 아시아 컬렉터들은 자국 작가 작품에 관심을 쏟았으나, 근래들어서는 ’웨스턴 아트‘(서양미술)에 더욱 관심을 보이는 것도 변화된 양상이다.

홍콩에 소재한 ‘탕 아트 자문’의 존 해든 대표는 “전세계 부유층은 컴퓨터 스크린(금융거래)에 보이는 숫자보다는, 이제 보다 확실한 투자처에 돈을 넣으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거리의 낙서화를 연상케 하는 오스카 뮤릴로(미국)의 회화 ‘무제’. 지난해 9월 뉴욕 필립스경매에서 추정가의 10배에 달하는 40만1000달러(약 4억3000만원)에 팔려 화제를 뿌렸다.

그러나 미술품 투자가 늘 핑크빛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미술품은 변동성이 매우 크고, 대단히 예민한 아이템이라고 강조한다. 때론 엄청난 투자수익율을 안기기도 하나 그같은 사례는 극히 일부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아트마켓에서 자주 거론되는 ‘브랜드’(작가 이름)를 맹목적으로 따라갔다간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같은 작가라 해도, ‘정답'에 해당되는 작품만 지속적으로 가격이 뛰는 게 미술품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미술품은 리스크가 큰 투자대상인 것이다.

하지만 전세계 슈퍼리치들이 자산 포트폴리오 중 5%이상을 아트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 것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수치다. 문제는 그림을 보는 감식안과 냉정한 투자전략을 키우는 것이다.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과 예지력, 그리고 자본력과 배짱이 두루 필요한 게 바로 아트 재테크이기 때문이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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