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수집가의 시대는 끝났다
라이프| 2014-02-24 11:03
두고두고 음미하는 미술 애호가 대신 단기차익 노리는 투자자 급증
변동성 크고 예민한 아이템…그림 보는 눈·냉정한 투자능력 갖춰야


자고로 ‘아트컬렉터’란 작가의 창작물에 매료돼 이를 수집하고, 두고두고 음미하는 애호가를 가리킨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이 같은 정의는 곧 수정될 상황에 처했다. 미술품 수집을 통해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미술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크리스티, 소더비 경매가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고, 올 들어서도 호황을 이어가자 뉴욕타임스(NYT)와 블룸버그통신은 이제 ‘아트컬렉터’라는 용어 대신 ‘ (치고 빠지는) 아트투자자’로 바꿔 불러야 할 시기라고 일침을 놓았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7일 ‘For the Love of Art, and Money’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수집가의 시대는 끝났고, 투자자의 시대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작금의 아트컬렉터를 장기간 작품을 보유하는 컬렉터(Long Term Collector)와 단기 투자자(Short term Collector)로 분류했다. 그리곤 고가의 작품을 샀다가 곧바로 되파는 컬렉터는 ‘Super flipper(단타매매자)’와 다름없다고 규정했다.

원래 ‘flippers’는 부동산및 기업공개(IPO)시장에서 ‘매매차익을 위해 단기거래를 일삼는 사람들’을 뜻하는 용어다. 미국에선 저평가된 집을 찾아내 이를 매끈하게 수리한 뒤 비싸게 되파는 이들을 ‘Real Estate Flippers’라고 부른다. 주택을 ‘주거가치’가 아닌 ‘투자가치’로만 보는 사람들처럼 미술 시장에서도 ‘flippers’는 작품을 오직 ‘투자 목적’으로 구입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실제로 미술품이 ‘단기 투자상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돈냄새(?)에 민감한 투자자들로 아트마켓(특히 경매)은 연일 성시를 이루고 있다. 더구나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초저금리 기조를 계속 유지함에 따라 ‘고수익 투자처’를 찾는 이들에겐 ‘희소성과 투자메리트’가 있는 미술품이 매력적인 대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술품 경매는 고객의 신원을 밝히지 않는 것이 250여년 넘게 이어져 온 불문율인 점도 매력적인 요인이다.

과거의 아트컬렉터들은 수십년씩 작품을 보유하다가 경매에 내놓거나 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러나 근래에는 단기 투자이익을 목표로 하는 투자자들(속칭 ‘flippers’)이 크게 늘고 있다. 사진은 단타 매매자로 지목된 멕시코 컬렉터가 보유 5년여 만에 경매에 내놓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 ‘이야기하는 조지 다이어의 초상’. 5년 새 이 작품은 값이 5.5배 이상 뛰며, 747억원에 낙찰됐다.

NYT는 단기 투자자로 멕시코의 금융재벌 데이비드 마르티네스와 대만의 거물 사업가 피에르 첸을 거론했다. 마르티네스는 5년 전 프랜시스 베이컨(영국)의 유화 ‘조지 다이어의 초상’을 1200만달러에 사들인 뒤 올 2월 런던 크리스티경매에 내놓은 인물이다. 이 초상화는 애초 3000만파운드에 팔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4220만파운드(약 747억원)에 낙찰돼 5년 만에 약 5.5배가 뛴 셈이다. 다른 어떤 투자를 통해서도 이룰 수 없는 높은 수익이 아닐 수 없다.

생존 작가 중 세계에서 작품 값이 가장 비싼 작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독일)의 회화를 여러 점 보유 중인 대만의 피에르 첸 또한 단기 투자자로 분류됐다. 그는 3년 전 구입한 리히터의 회화 ‘벽’을 이번 크리스티경매에 내놓았는데 1740만파운드라는 고가에 판매됐다.

NYT는 또 “장기 투자자들이 인상주의 작품과 클래식한 현대미술 등에 투자하는 데 비해 최근의 단타 매매자(flippers)들은 신예 및 유망 작가 작품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뒤 수익이 실현되면 곧바로 되파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아직 좀더 지켜봐야 할 젊은 작가들의 작품 값이 지나치게 수직 상승하는 추세를 우려했다. 납득할 수준으로 차근차근 올라야 훗날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그림들이 날개돋친 듯 팔린다고?’ 유망 작품에 투자해 수익을 거두려는 수집가로부터 인기가 높은 작품들. 왼쪽은 거리 낙서화를 연상케 하는 오스카 뮤릴로(미국)의 회화‘ 무제’. 지난해 뉴욕 필립스경매에서 추정가의 10배에 달하는 40만1000달러(약 4억3000만원)에 팔려 화제를 뿌렸다.‘ 빗방울 회화’로 스타덤에 오른 아시아계 미국 작가 루시엔 스미스(24)의 작품도 시장에 나오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이를테면 ‘Rain 페인팅’의 작가 루시엔 스미스(미국)는 올해 24세의 신예임에도 작품이 마켓에 나오기가 무섭게 팔리고 있다. 사이 톰블리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오스카 뮤릴로(미국)의 회화 또한 고공행진 중이다. 뮤릴로의 ‘무제’는 지난해 뉴욕 필립스경매에서 추정가의 10배에 달하는 40만1000달러(약 4억3000만원)에 팔려 큰 화제를 모았다.

한편 뉴욕과 런던경매장에 중국 홍콩 인도네시아 한국 등 ‘아시아 큰손들’과 중동 왕실이 앞다퉈 모습을 드러내면서 낙찰가는 더욱 천문학적으로 뛰고 있다. 미술품 경매 시장이 21세기 ‘머니게임의 각축장’으로 부상하는 데에 이들 새 고객층의 유입이 크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실제로 지난 5일 소더비의 인상주의 및 현대미술 경매에는 역대 최다인 44개국의 입찰자가 참여했다. 크리스티경매에서도 아시아 고객 등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시아 컬렉터들은 근래 들어 자국 작품보다 ‘웨스턴 아트(서양미술)’에 더 열광하고 있다.

그러나 미술품 투자가 늘 핑크빛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트마켓 전문가들은 미술품은 변동성이 매우 크고 대단히 예민한 아이템이라고 강조한다. 때론 엄청난 투자수익률을 안기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맹목적으로 브랜드(작가 이름)만 따라갔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물론 전 세계 슈퍼리치들이 자신들의 자산 포트폴리오 중 5% 이상을 아트에 투자하고 있다는 집계는 결코 간과할 사항이 아니다. 문제는 그림을 보는 감식안과 냉정한 투자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자본력과 예지력, 그리고 두둑한 배짱이 두루 필요한 게 바로 아트재테크이니 말이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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