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슈퍼리치-라이프] 거물 펀드매니저가 사랑한 그림
라이프| 2014-03-27 12:30
금융시장과 달리 정부규제 덜해
치고 빠지기식으로 미술 투자
보유기간도 평균 2년에 불과
美언론 ‘아트마켓=헤지펀드’ 우려


금융시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거물’급 펀드매니저들이 미술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나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스티브 코헨(58) SAC캐피털 회장, 존 폴슨(59) 폴슨앤컴퍼니 회장, 켄 그리핀(46) 시타델 회장 등 금융계에서 고도의 전략을 구사해 큰돈을 벌어들인 펀드매니저들은 요즘 글로벌 아트마켓의 ‘큰손’으로 맹활약 중이다. 이에 열기로 휩싸인 뉴욕 및 유럽 미술시장은 근래 들어 더욱 출렁이고 있다. 특히 투자가치가 있는 유명작가의 대표작과 떠오르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이들의 투자로 가격이 매년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이들 슈퍼리치 펀드매니저들은 금융상품에 비해 미술투자가 정부 규제가 덜 하고, 수익성도 높은 점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문제는 금융업계 슈퍼 컬렉터들의 작품 보유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더비 경매는 ‘평균 2년’이라고 집계했다.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수집해 최소 5~6년, 길게는 수십년 이상 보유했다가 되파는 기존 수집가들의 ‘점잖고 조심스런 태도’와는 매우 상반된 것이다.

이에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아트마켓이 헤지펀드업계와 닮은꼴이 되고 있다”고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New Masters of the Art Universe’라는 제하의 보도에서 “아트마켓이 거물급 펀드매니저들로 재편되고 있다. 이들은 ‘치고 빠지기’ 식으로 작품에 투자하며, 평균 보유기간도 낮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헤지펀드계 ‘큰손’인 스티브 코헨이 1억5000만달러에 매입한 피카소의 ‘꿈’(왼쪽). 오른쪽은 대니얼 롭 회장이 작년 말 크리스티에서 4608만달러에 사들인 마크 로스코의 ‘무제’(1957년 작). 로스코의 추상화는 세계 미술 애호가들이 너나없이 소장하고 싶어하는 그림이다.

뉴욕 매거진 또한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아티스트를 성장주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가치가 반영되지 않아 차익실현이 가능한 주(株)를 선호하듯, 미술품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다”며 “우위를 점하는 이들에게 ‘보상’이 날로 막대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이 시장에선 (금융시장과는 달리) 별반 통제가 이뤄지지 않아 투자자들은 거리낌이 없다. 비밀거래와 가격조작의 조짐마저 보인다”고 덧붙였다.

대부분 하버드대, 와튼스쿨, 컬럼비아대 등 명문대학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미술작품을 지근거리에서 보고 자란 이들은 글로벌 아트마켓의 하이라이트에 해당되는 작품을 집중적으로 매입하고 있다.

와튼 출신의 스티브 코헨 회장이 대표적인 예다. 카지노업계 거물인 스티브 윈으로부터 피카소의 걸작 ‘꿈’을 사들인 그는 윌렘 드 쿠닝의 대표작 ‘Woman3’, 데미안 허스트의 문제작인 ‘해골’과 ‘상어’를 컬렉션했다. 월가 역사상 최대의 내부자거래 혐의로 기소된 그는 사명(社名)을 ‘SAC캐피털’에서 ‘포인트 72’로 바꾸고, 회사와 자신 간 거리두기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미술계의 ‘위버 컬렉터’(최고, 최대 수집가)로 불리는 것은 즐기는 듯하다. 코헨의 주(主) 활동무대는 이제 최고가 작품이 경매되는 크리스티, 소더비의 ‘이브닝 세일’ 현장이다.

하버드대 MBA 출신의 존 폴슨 폴슨앤컴퍼니 회장은 아트마켓에서 작품값이 계속 치솟고 있는 ‘모빌’의 작가 알렉산더 칼더(1898~1976)의 수채화를 집중적으로 매입하고 있다. 칼더의 수채화가(조각에 비해) 아직 저평가되고 있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약관 20세의 나이에 하버드대 기숙사에 전용선을 설치하고, 자신이 만든 모델로 트레이딩을 시작해 오늘날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 중 하나인 시타델(Citadel)을 이끄는 켄 그리핀은 영화제작자이자 슈퍼 컬렉터인 데이비드 게펜(71)에게 8000만달러를 주고 재스퍼 존스의 회화 ‘False Start’를 매입했다. 그리핀은 직원들에게 ‘미술품 수집도 금융투자처럼 냉철하고, 치밀하게 임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밖에 영국의 헤지펀드 매니저 알란 하워드는 4300만달러를 지불하고 인상파 화가 모네의 ‘수련’을 매입했다.

뉴욕 매거진은 이들 중 대니얼 롭에 특히 주목했다.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된 주식을 발굴해 띄우듯 미술을 투자개념으로 접근하는 대니얼 롭(52) 서드포인트 회장의 동향을 면밀히 분석한 것. 헤지펀드업계에서 ‘공격형 투자자’로 분류되는 롭은 마크 로스코, 바스키아, 제프 쿤스의 작품 등을 잇달아 매입한 데 이어, 미술품경매사 소더비 주식도 매입했다. 현재 소더비 지분을 9.3% 보유한 롭은 크리스티에 밀려 수년째 2등에 머물고 있는 소더비를 정상에 올려놓기 위해 직원들을 거세게 압박 중이다. 그는 “펄펄 나는 현대미술에 비해 근대미술 파트는 나른함에 빠져 있다”고 질책했으며, 현대미술에서도 크리스티보다 앞설 수 있다고 채근했다.

이렇듯 금융시장에서 노련한 경험을 쌓고, 다양한 거래기법(심지어 주가조작)을 익힌 슈퍼리치들에게 미술시장은 ‘큰돈을 벌 여지’가 충분한 무대가 되고 있다. ‘무(無) 규제’에 가까운 느슨한 상황도 이들을 더욱 빨아들이고 있다. ‘고수들의 경연장’으로 변모한 아트마켓의 향후 기상도에 귀추가 모아지고 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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