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선시로 만나는 고승들의 깨달음
라이프| 2014-04-04 11:11
선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향적 스님 지음
/조계종출판사
“인적 없는 옛 절에 봄은 깊어 가는데(春深古院寂無事)/바람 고요한 뜰에 꽃잎이 가득히 쌓이네(風定閑花落滿庭)/해질 무렵 구름은 고운 빛으로 물들고(堪愛暮天雲晴淡)/산에는 여기저기 두견새가 우네(亂山時有子規啼)”

고려의 고승 진각국사 혜심(1178~1234년)의 선시(禪詩) ‘뜰에 꽃잎이 가득히 쌓이네’는 고즈넉한 산사의 봄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조계종 종회의장 향적(64·사진) 스님은 서정시를 닮은 이 선시에 담긴 ‘바람 고요한 뜰’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른 혜심 스님의 마음을 읽는다. 이 같은 스님의 해설은 자연과 합일을 이룬 옛 고승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만든다.

향적 스님이 선시 해설집 ‘선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를 펴냈다. 해인사 지족암에서 주석 중인 스님은 3년 전부터 법회에서 신도들과 함께 읽은 선시 76수를 모아 해설을 더했다. 지난 2일 서울 조계사 인근 식당에서 기자와 만난 스님은 “고승들은 오도송, 열반송 등 선시의 형식을 빌려 깨달음을 표현했는데 한자로 쓰여 있어 어렵다는 선입견이 많다”며 “한자를 잘 모르는 젊은이들도 흥미를 가지고 선시를 접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해설집을 출간하게 됐다”고 밝혔다.

해설집에 실린 선시의 작자는 월명사, 혜심, 보우 등 고승부터 경허, 만공, 성철 등 현대의 선승까지 다양하다. 소개된 선시들은 대개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향적 스님은 선시의 많은 표현들은 불교의 교리나 수행의 세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님은 “선시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한시와는 달리 화두를 변증법적인 논리로 풀어나가는 형태가 많다”며 “선시는 선사들의 ‘정신적 사리’이자 수행의 경험을 깊은 사색으로 걸러내 은유적으로 압축한 혁명적 언어”라고 강조했다. 이어 스님은 “선시는 고요의 울림으로 다가와 깨달음의 길로 이끌었다”며 “독자들 또한 그 울림에 공감해 깨달음의 깊이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스님은 지난 1989년 12월부터 1990년 8월까지 약 1년 동안 프랑스 ‘삐에르 끼 비’ 수도원에서 수행했다. 스님은 당시 체험을 회고하며 지난 2009년 ‘향적 스님의 가톨릭 수도원 체험기 프랑스 수도원의 고행’이란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스님은 이 책을 조만간 ‘깨달음에는 국경이 없다’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어로 번역해 파리7대학에서 출간할 예정이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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