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허술한 내부통제ㆍ솜방망이 처벌
뉴스종합| 2014-05-21 11:23
[헤럴드경제=황혜진 기자] 동양그룹의 CP(기업어음) 불완전 판매, 대규모 정보유출 사태, 일부 국내 은행 일본 도쿄지점의 부당대출, KT ENS 대출사기, 앱 카드 명의도용 등 금융 사고가 줄을 잇고 있다. 금융업계는 유례없이 금융사고가 이어진다며 한탄하고 있지만 대부분 과거에도 발생했던 사고들이다. ‘재발’된 사고란 것이다.

똑같은 사고가 계속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같은 원인을 잡아내지 못할 정도로 금융감독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는 남의 돈을 다루는 업무 특성상 높은 윤리의식이 요구되지만 되레 도덕적 해이와 허술한 내부통제 시스템만 드러냈다.

여기에다 금융당국의 솜방망이 처벌이 맞물리면서 각종 횡령, 부당 대출, 정보유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은행, 카드, 보험 등 모든 금융권역에서 대형 금융사고가 터지고 있어 금융감독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말로만 보안ㆍ관리’=금융사의 부실한 내부관리 시스템은 최근 잇따르는 금융사고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금융사 경영진과 직원의 안일한 보안인식과 내부통제 의지다. 매출 올리기를 최우선하면서 내부통제는 방치됐다. 당장 문제나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경영진을 견제하라고 뽑아놓은 사외이사는 ‘보은인사’와 ‘연줄인사’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터질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해외지점에선 부당대출과 직원의 횡령 사건이 벌어졌고 1억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일부 2차 유출까지 되면서 한국사회는 정보유출 ‘포비아’(공포)를 앓았다.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받아들였던 ‘관행’도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사들은 ‘대기업 계열사는 믿고 본다’는 생각으로 여신심사 때 담보로 제공된 매출 채권의 허위여부를 따지지 않았다.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채 대기업 도장만 보고 돈을 빌려줘 10여개 금융사가 수천억원대 대출사기에 휘말렸다. 3년에 걸쳐 100여 차례 사기를 쳤지만 금융사들은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솜방망이 처벌이 안일한 인식 키워=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금융당국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사고 발생 금융사에 특별검사를 실시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금융사를 모아놓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사고는 발생한 후다. 재탕 삼탕되는 대책은 사고재발을 막지 못했다.

비슷한 사고가 이어졌지만 금융당국의 칼날은 무뎠다. 중징계 사안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상 최악의 고객정보 유출 사고를 일으킨 카드 3사에 대한 제재도 과태료 600만원과 영업정지 3개월이었다. 금감원은 지난해 4대 금융그룹을 검사해 모두 160건의 위법사항을 적발했지만 해당 회사에 과태료 6억5520만원, 기관경고나 주의 등 12건의 경징계 조치만 내렸다. 중징계를 받은 임직원은 2명뿐이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수백, 수천억원대 사고가 터졌어도 금융사에 물린 과태료가 최고 1억2500만원에 불과했다”며 “잘못에 비해 한참 낮은 제재다”고 말했다.


▶‘언젠간 내 자리’=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솜방망이 처벌에 대해 전문성과 의지부족을 문제로 지적한다.

당국자들이 퇴직 후 감사 등의 감투를 쓰고 금융사로 자리를 옮기다보니 금융사와 당국 간 유착고리가 끊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봐주기식 솜방망이 처벌은 금융사고에 대한 금융사의 안일한 인식만 키운 셈이다.

시민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의 조남희 대표는 “낙하산 인사들이 금융사로 내려간 뒤 자연스럽게 유착 관계가 형성되면서 ‘봐주기식’ 처벌 같은 비정상적 관행이 고착화됐다”고 꼬집었다.

민병두(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최근 4년(2010~2013년)간 민간 대형 금융회사로 재취업한 금융당국 출신 인사가 124명(중복포함)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낙하산 인사는 금융사의 지배구조도 불안하게 만든다. 보안 및 직원관리는 장기적인 안목과 계획을 토대로 가능하지만 낙하산 외부인사의 경우 임기에 급급해 내부통제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 연임까지 하기 위해서는 첫 임기 동안 직원들을 단기 실적경쟁으로 내몰 수밖에 없다. 금융사고 위험에 빠지기 쉽다는 점에서 낙하산 인사의 최대 폐해로 지적된다.

김호중 건국대(경영학) 교수는 “내부통제는 최상부가 아닌 중하부에서 하는 것인데, 사고가 터진 은행들의 수장은 낙하산인 경우가 많아 직원들이 줄대기에 바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금융사들은 작은 것 하나하나가 회사의 존립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얼마나 심각하게 문제인식을 하느냐에 따라 사태의 재발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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