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김은경 ‘500자 영장기각 사유서’…법조계 뒷말 무성
뉴스종합| 2019-03-27 11:23
‘길다’는 평가 양승태 70자 불과
이례적 장문·정치상황 반영 논란

“여론 집중되는 사안이라 불가피”
“사실상의 무죄 판결문” 의견분분


김은경(63)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법원의 영장기각 사유에 관해 법조계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이례적으로 장문의 사유를 설명한 데다,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는 등 내용 면에서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6일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500자 분량의 사유를 언론에 전달했다. 다른 피의자들에 비해 상세하게 설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사유는 70자,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한 기각 사유도 100자 정도였다.

기소되기 전 단계에서 지나치게 장황하도록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관한 지적도 있다.

서울변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보통은 4~5줄로 기각사유나 발부사유가 적히고, 범죄혐의 소명이 부족하다거나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내용을 담는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중립성을 지키면서 원칙대로 했어야 하는데, 국정농단이나 탄핵을 언급한 것은 정치적 논란을 더 일으킬 뿐”이라며 “사실상의 무죄 판결문”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이경의 최진녕 변호사는 “영장 기각사유를 비교적 간단하게 쓰는 이유는 기소 여부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내용을 상세하게 쓰면 향후 수사나 기소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앞의 판사가 그런 식으로 대못을 박아 놓으면 나중에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할 때도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다”고 말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김종민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법원의 직권남용 혐의 판단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그는 “전 정권에서는 블랙리스트이고, 중대한 불법행위라고 법원이 중형으로 단죄했는데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 관행으로 이해된다거나, 위법성 인식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며 “법의 잣대는 하나여야 하는데 어느 판사에 걸리냐에 따라서 결과가 뒤집어진다면 로또가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최 변호사 역시 “박 부장판사가 고의나 위법성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봤는데 바로 그런 일로 전 정권에서 줄줄이 잡혀 들어갔다. 어떻게 그런 인식을 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반면 대한변협 수석대변인을 지낸 노영희 변호사는 여론이 민감한 사안인 만큼 법원이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는 의견을 밝혔다.

노 변호사는 “이 사건은 영장 발부 또는 기각 결과를 두고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발부든 기각이든 비난을 할 테니 영장전담판사 입장에선 면피 또는 납득시키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 것”이라며 “보통은 그렇게 기각 사유를 세세히 안 쓰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당에서 강력히 요구했는데 영장 기각을 시키면 정권의 눈치를 보네 마네 할 것 아닌가. 그런 오해와 비난을 피해가고 싶었을 것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박 부장판사는 김 전 장관의 ‘일괄사직서 받아내기’와 ‘표적감사’ 관련 혐의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며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하여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 됐던 사정” 등을 언급했다.

김 전 장관이 받는 ‘임원추천위원회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공공기관의 장이나 임원들의 임명에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관행이 있었다”며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인다”고 대법원 판례도 인용했다.

법원은 박근혜 정부에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국가 지원을 중단한 혐의로 기소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 장관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재판에서 기존 관행이 범행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판시한 전례가 있다.

이민경 기자/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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