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기어 다니는 애·아픈 애”…아무도 쌍둥이를 본 적이 없다 [유령아이 리포트〈上〉]
뉴스종합| 2021-05-25 11:12
[일러스트=권해원 디자이너]

쌍둥이는 2년 동안 ‘유령 아이’였다. 아무도 아이들을 본 적이 없었다. 삼형제 중 첫째인 우진(8·가명)이는 이웃 주민에게 “쌍둥이 동생이 있다”며 “한 명은 기어 다니는 애, 한 명은 많이 아픈 애”라고 했다. 굶고 다니던 우진이에게 종종 끼니를 챙겨줬던 이웃 주민은 쌍둥이 존재에 의문을 품었다. 삼남매의 친모인 지선(43·가명) 씨는 “지인의 자녀를 돌보고 있다”고만 했다. 모두가 그런 줄 알았다.

쌍둥이의 존재는 지난해 11월 말에서야 세상에 드러났다. ‘아이들을 방임하는 것 같다’는 이웃 주민의 신고 덕분이었다. 경찰과 지자체,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이 최초로 찾아간 지선 씨의 아파트는 엉망이었다. 청소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집 안엔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18평(59㎡)짜리 집에서 쓰레기 5t을 끄집어냈다.

쌍둥이 중 누나(둘째)는 이미 두 돌을 넘긴 나이였지만 걸음마도 제대로 못했다. 게다가 막내는 2년 전에 이미 숨진 상태였다. 엄마는 그 사실을 숨긴 채 아이 시신을 냉동고에 유기해왔다. 그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여기까지가 지난해 말 세상을 놀라게 한 ‘여수 영아 유기 사건’의 이야기다.

미혼모에겐 높았던 출생신고의 벽

미혼모인 지선 씨는 쌍둥이를 집 욕실에서 홀로 출산했다. 그간 쌍둥이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그리곤 연희·연우(모두 가명)란 이름을 붙여줬다. 하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까닭에 주민등록번호는 없었다. 쌍둥이의 탄생은 지자체, 중앙정부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엄마의 가족관계등록부엔 첫째 우진이만 이름이 올라 있다.

엄마가 출생신고할 의지가 아예 없던 건 아니다. 하지만 장애물을 넘지 못했다. 자택에서 출산해 출생 사실을 증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가정법원으로부터 출생 확인 판결을 받은 뒤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친자관계가 성립한다는 유전자검사 결과를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가족과도 연락을 끊고 고립된 생활을 했던 지선 씨에게 이런 법률적 절차는 높은 벽이었다.

전남아보전은 구속된 엄마를 대신해 쌍둥이의 출생신고를 추진했다. 광주광역시의 비영리공익법률단체 동행의 이소아 변호사가 돕기로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15일 가정법원에 출생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유전자검사를 거쳐 쌍둥이들이 지선 씨와 친자관계가 있음을 확인했다. 법원은 올 1월 중순에 출생확인을 결정했다.

연희·연우의 출생신고서는 아보전에서 작성했다. 지선 씨는 교도소에서 변호인이 보여준 출생신고서를 직접 확인했고 서명까지 했다. 아보전은 출생신고서를 지난 1월 25일 여수시청에 접수했다. 쌍둥이가 세상 밖으로 나온 지 정확히 883일 만이다. 이튿날 막내의 사망신고서도 처리됐다.

“엄마 단죄로만 끝나선 안 돼”

‘집에서 혼자 출산을 해서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죄는 여기서부터 시작인 것 같습니다.’

지선 씨는 지난 1월 말 형사재판부에 보낸 반성문에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죄책감을 언급했다. 2월에 쓴 반성문에는 ‘출산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고 숨겨가며 집에서 혼자 출산한 터라 증인도 없고 증명서도 없어서 출생신고를 할 수가 없었다’고 적었다. 그는 일곱 차례 자필 반성문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미혼모로서 위태로웠던 삶, 자녀들을 방치한 것에 대한 후회 등 다양한 심경을 내비쳤다.

물론 자녀들을 방치했고, 더구나 한 아이는 숨졌는데도 그 사실을 철저히 숨겨온 건 부인할 수 없는 잘못이다. 지난달 29일 지선 씨의 1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여기에 더해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80시간)와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등 장애인복지시설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전문가들은 생모만을 ‘증오의 대상’ 삼는 건 근본적인 대안 마련에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세상에 나온 아이는 부모의 처지와 상관없이 출생 사실이 기록되고, 최소한의 안전망 속에서 양육돼야 한다. 이런 기반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까지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을 지낸 김영주 변호사는 “단순히 (엄마만) 나쁜 사람으로 접근하면 안 될 일”이라며 “이 사람 입장에서 뭘 할 수 있었는가를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박준규·박로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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