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MZ세대 작곡가 ‘기발한 3분 관현악’...라면을 끓이고, 윷놀이하는 국악
라이프| 2022-09-22 11:04
국립국악관현악단 ‘이음 음악제’의 ‘3분 관현악’에 함께 하는 작곡가 홍민웅, 이재준, 최한별, 손일훈(왼쪽부터).

#1. ‘개요!’ 피리 연주자 두 명이 소리를 낸 뒤 자리에서 일어나자, 타악 연주자들이 큰 소리로 추임새를 넣는다. 간략하게 만들어진 윷판은 결과에 따라 ‘개’ 자리로 이동. 지금 이곳은 음악으로 연주하는 윷놀이에 한창이다. 두 팀으로 나뉜 윷놀이는 피리 연주자들의 판단으로 진행된다. 손일훈 작곡가의 ‘모 아니면 도’다.

#2. 매콤하고 짭짤한 ‘국민 간식’ 라면 조리법이 악보 안으로 들어왔다. 악보는 ‘불’, ‘물’, ‘면과 수프’, ‘계란’ ‘환상’, ‘시식’으로 구성. 작곡가 이재준은 이 곡에 대해 “불꽃이 타오르면 물은 안에서부터 서서히 기포를 만들고, 펄펄 끓기 시작하면 면과 마법의 라면 수프를 투하한다. 곧이어 이들이 거품 속에서 하나가 되는 과정은 치명적이지만 아름답고 짧지만 완벽한 기승전결을 품고 있다”고 설명한다.

박물관에 ‘박제된 음악’, 새롭지 않은 ‘과거의 음악’이라는 선입견은 옛말이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작곡가”(김성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들과 국악이 만나자 음악은 기발해졌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이음 음악제’(9월 22~30일·국립극장)에서 선보일 ‘3분 관현악’이 만든 변화다.

2019년 처음 시작, 올해부터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창작음악 축제인 ‘이음 음악제’로 편입한 ‘3분 관현악’은 새로운 시대와 호흡할 ‘젊고 신선한’ 국악을 선보이기 위해 출발한 기획이다. ‘3분 관현악’ 송현민 디렉터는 “보다 많은 작곡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소개해 다양성을 강화하고 젊은 작곡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물론 작곡가를 통해 악단의 색채를 변화해보자는 의지로 시작한 기획”이라고 말했다.

‘3분 관현악’은 말 그대로 3분 짜리 국악관현악을 선보이는 음악회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국립국악관현악단은 1982~1996년 사이에 출생한 MZ세대 작곡가를 선발했다. 송 디렉터는 “작곡가를 선정하는 과정에선 ‘살아있는 작곡가’, 즉 지금 음악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활발성’과 국악을 써본 적이 없어도 거대한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연성을 가장 염두했다”고 말했다.

엄선된 10명은 절반은 국악을, 절반은 양악을 전공했다. 이들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위촉한 국악관현악 신작 10곡을 선보인다. 송 디렉터는 “기존의 국악 작곡가는 국악관현악을 작곡해보는 기회를 얻고, 양악 작곡가는 또 하나의 장을 넘을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서양음악을 공부한 작곡가들에게 국악과 양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도전이고 실험이었다. ‘3분 관현악’을 위해 ‘유니뻐스’를 작곡한 최한별은 “국악기에 서양악기가 즐겨 쓰는 주법을 적용하며 우주 공간의 현장성을 표현했다”며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소리가 다르게 나오는 부분에 대한 고민과 실험이 있었다”고 말했다. 곡인 제목인 ‘유니뻐스’는 우주(유니버스)와 버스의 합성어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이음 음악제’의 3분 관현악에서 선보일 손일훈 작곡가의 ‘모 아니면 도’. [국립극장 제공]

‘모 아니면 도’를 쓴 손일훈 작곡가는 평창대관령국제음악제 기획자문, 클래식앙상블 클럽M의 상주작곡가로 활동한 양악 전공자다. 손일훈은 “국악과 윷놀이를 매칭하면 더 격렬한 곡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며 “우리에게 익숙한 국악기 소리를 서양음악 작곡가가 다루던 길로 표현할 때 어떻게 들리는지 발견해나가는 것이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젊은 작곡가들의 실험은 그 어떤 무대에서도 보기 힘든 재기발랄함으로 무장했다. 음악을 들으며 윷놀이 한 판을 보고, 라면 조리법을 음악으로 들으며 ‘라면 끓이는’ 퍼포먼스도 만난다. 신(辛)라면 협주곡 ‘라면’을 쓴 이재준은 “라면을 끓일 때 나오는 소음도 음악의 일부가 된다”고 말했다. 무대에 함께 하는 협연자는 가야금 연주자인 박소희다. “세계 최초의 라면 퍼포머”(송현민 디렉터)가 될 예정이다.

젊은 작곡가들의 국악관현악은 기존의 국악관현악이 10~15분에 달하는 것과 달리 3분 이상, 5분 미만으로 시간을 제한했다. ‘3분 관현악’의 지휘를 맡은 박천지는 “짧은 시간 내에 기승전결을 만들다 보니 많이 압축돼 있고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피로감이 있다는 애로사항이 있다”며 “연습을 통해 작곡가의 역량이 드러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이음 음악제와 ‘3분 관현악’은 기존의 국악관현악을 MZ세대 작곡가들이 ‘짧고 기발하게’ 들려준다는 음악 이상의 포부를 안고 있다. 신진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무대와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는 플랫폼, ‘악단의 변화’를 모색하는 발판, 관객 확장의 계기를 마련하는 자리가 되고 있다.

김성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은 “이음 음악제는 이질적인 것을 익숙함으로 바꾸고, 공감대를 이어가며, 과거와 현재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축제”라며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며 국악관현악이라는 플랫폼 속에서 우리 음악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총 24명의 작곡가, 4명의 지휘자가 함께 하는 ‘이음 음악제’는 22일 ‘비비드: 음악의 채도’, 25일 ‘2022 오케스트라 이음’, 26일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30일 ‘3분 관현악’으로 진행된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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