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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하고 의뭉한 캐릭터...그래서 하도영이 더 좋았죠”
엔터테인먼트| 2023-03-30 11:06

정성일(43)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이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였다. 드라마를 좀 보는 사람도 ‘비밀의 숲’ 시즌2에서 한조그룹 이연재 회장(윤세아)의 오른팔인 박상무를 연기한 배우 정도로 알 것이다. 하지만 정성일은 지난 2002년 영화 ‘H’로 데뷔한 후 20년간 연극 무대에서 꾸준히 내공을 쌓아온 연기 베테랑이다. 그래서 ‘더 글로리’에서 모호하면서 어려운 캐릭터 하도영을 긴장감 있게 표현할 수 있었다.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학교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여성 동은(송혜교)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복수극인데, 정성일은 학교폭력의 가해자 무리의 주동자였던 박연진(임지연)의 남편 하도영 역을 맡았다.

“하도영은 대본상으로도 가장 중립적인 캐릭터다. 어느 쪽도 아닌 중간에 놓인 인물이며, 동떨어져 보는 입장이다, 아내인 연진에게 가는 것도 아니고, 동은에게 가는것도 아니다. 도영 내에서는 소용돌이쳤지만 선택에 대한 표현은 눌렀다. 시청자가 더 궁금했을 것이다.”

정성일은 하도영 캐릭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나이스한 개XX’라고 했다. 혜정(차주영)과 재준(박성훈) 사이의 대사에서도 나오는 이 말에는 김은숙 작가의 기지가 번득인다. ‘나이스한 거면 나이스한 거지, 개××는 또 뭐야?’라고 생각했다.

“도영이 운전기사에게 백만원대 와인을 선물한다. 나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개XX로 보일 수 있다. 남이 나를 표현해주는 게 더 정확할 때도 있다.”

하도영은 결국 재준과 싸우게 되는데, 작가는 ‘개’(재준)와 ‘나이스한 개XX’(도영)의 대결이라고 본 게 아닐까.

정성일은 20년간 연극 무대에서 꾸준히 내공을 쌓아온 연기 베테랑이다. 그는 ‘더 글로리’에서 모호한 캐릭터 하도영을 잘 표현하며 인기를 끌었다.

정성일은 “하도영이 하면 안되는 살인을 선택해 결국 나락으로 떨어진다. 사이다 결말일 수 있어도 하도영은 결국 살인자가 됐다”면서 “영국으로 가서 맨정신으로 예솔을 잘 케어할 수 있을까 라는 점을 생각하면 인간적으로는 나이스한 선택이 아닌듯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도영이 모호하고 양면적이며, 의뭉한 캐릭터여서 답답하기도 했지만 좋기도 했다”면서 “나중에 터질 힘을 알기 때문에 표현 못하는 답답함은 있지만 캐릭터적으로 좋았다. 누르고 있는 사람이 마지막에 터지면 폭파력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어 “하도영이 지켜야할 생명은 예솔이밖에 없다. 마지막 장면이 애틋하고 슬프기도 했는데, 내(도영)가 가장 나다운 선택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정성일은 “나도 실제로 7살 아이가 있지만, 남의 자식인 예솔을 안고 외국 가는 게 이해될까? 키우다 보면 내 자식이 아니더라도 키운 정이 너무 크다는 게 와닿았다”면서 “도영이 예솔의 생부가 아님을 알게 된 뒤에도 양육권을 지키는 모습은 하도영의 또 다른 면모다”고 설명했다.

정성일은 김은숙 작가와 송혜교를 처음 만난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션샤인’을 3번이나 봤을 정도로 김작가의 찐팬이다. 송혜교는 또 월드스타다.

“송혜교를 보고 너무 떨려 얼어 있었다. 와~ 연예인이네. 처음에는 긴장했고 신기하면서도, 불편했다. 지금은 혜교와 사석에서 연락하고 지내다 보니까 너무 멋진 사람이고 동생이다.”

그의 아내 연진으로 나온 임지연에게는 “진짜 못됐다”고 말했을 정도로 상대가 연기를 잘해줬다고 했다. 정성일은 “도영이 연진에게 피해자에게 가서 사과하라고 기회를 주기는 하지만, 연진을 선택한 것은 나다. 나도 책임과 잘못이 있다”며 하도영 입장에서 말했다.

정성일은 부잣집 아들 같은 외모와는 달리 어린 시절 극도의 가난을 경험했다. 그는 “연기 천재처럼 하지 않는 이상 공부하고 배우면서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면서 “그러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 하며 열심히 살았는데 운이 좋았다. 김은숙 작가가 ‘비밀의숲2’에서 윤세아 옆에 있는 비서를 보고 연락을 했다”고 밝혔다. 이번 배역을 위해 살을 조금 많이 뺐더니 유재석과 더욱 닮은 얼굴이 돼 유재석과 얼굴을 함께 한 반반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그는 “가보처럼 사진이 집에 걸려 있다. 저는 유재석 씨 팬이고 좋은데 유재석 씨는 어떨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성일은 사인요청도 받고 있고 SNS를 통해 외국팬들도 자주 댓글을 남기는 등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차기작은 자신의 뿌리인 연극이다. 연극 ‘뷰티풀 선데이’와 뮤지컬 ‘인터뷰’ 무대에 선다.

정성일은 마지막으로 학교폭력에 대해 한마디했다. “중고등학생이 고데기로 사람 몸에 대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충격이었다. 그들이 커서도 반성하지 않고 뻔뻔한 삶을 살아간다. 학폭뿐만 아니라 강자, 가진자의 폭력이 없었으면 한다. ‘더 글로리’가 이 문제에 대해 경종을 울리며 사회적인 변화를 유발하고 있다. 폭력이 제 아들에게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어른들이 빨리 책임감 있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정성일은 동은에 대한 마음이 담긴 삼각김밥을 기자에게 선물하고 인터뷰장을 떠났다.

서병기 선임기자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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