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헤럴드광장] 권도형, 미국 아닌 한국 와야 하는 이유
뉴스종합| 2023-03-30 11:22

권도형이 해외에서 체포됐다는 소식에 미국으로 차라리 미국으로 가면 좋겠다는 말들이 있다. 국내에서는 제대로 처벌받지 못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루나·테라를 증권으로 보고 이득환수 소송에 들어갔다. 징역 100년 사례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한국에도 동일한 법이 있어 검찰이 사기적 부정거래(자본시장법)을 적용했지만 주무부처 입장이 없어 법원을 설득할 수 있을지 염려가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권도형을 처벌할 수 없다면, 국내에는 유사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그때마다 미국이 대신 처벌해 주지는 않는다.

권도형은 테라·루나 2개의 코인을 만들었고, 알고리즘으로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 가격을 고정하고, 결제 생태계를 조성해서 루나 가치를 높이겠다고 주장해왔다. 현 시점에서 이것이 허위였던 것은 명백하다. 거짓말로 코인을 팔아 50조를 챙겼고, 손해를 본 사람이 생겼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거짓말로 남의 돈을 가졌으니 형법상 사기죄다. 동시에 그 사기가 ‘투자’를 표방하는 관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본시장법의 사기적 부정거래도 해당된다. 투자와 사기가 모순되는 듯 보이나, 자본시장법은 투자를 표방한 관계라면 일단 적용대상이 삼음으로써, 정상적 투자만 남게 하는 것이다. 둘 다 50억 이상의 규모에서 법정형은 최고 무기징혁이다. 문제는 둘의 접근법이 달라서, 사기죄를 적용하면 처벌이 곤란하다. 개인의 재산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사기죄는 피해자별로 피해금액을 특정해야 한다. 여러 투자자들이 각자 차익을 노리고 코인을 샀다. 손해 기준을 잡기 어렵고, 코인 투자가 계좌 거래가 아니다보니 내역을 일일히 입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반면 사기적 부정거래는 허위로 수익을 취한 사실만 있으면 된다.

소 잡는 데는 소 잡는 칼을 써야 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테라·루나 사태를 증권범죄로 보고 기소한 이유다. 그럼 우리나라는 소 잡는 칼이 없는 것일까? 한국도 처음부터 미국 증권법을 따라 ‘투자계약증권’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도입해뒀다. “이런저런 사업을 해서 코인의 가치를 올리겠다”는 사업자의 말을 보고 가상자산을 샀다면, 가상자산은 투자의 대상인 동시에 처분해서 수익화 할 수 있는 무기명 권리증표가 된다.

그런데 법에는 발이 달린 게 아니다.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과 이익이 그 집행을 곤란하게 하고 일반인의 이해를 어렵게 한다. 동업자 신현성의 죄목에 ‘배임증재’가 있다. 티몬 이사회 의장이었던 신현성이 티몬 대표에게 “티몬에서 테라를 결제로 받겠다”고 말하는 대가로 테라·루나를 줬다는 것이 ‘부정한 청탁의 대가’라는 내용이다. 사업자측은 알고리즘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결제가 가능한 ‘실생활 코인’이라는 점을 내세우면서 넘어갔다. 그 사업 활동에 대한 평가는 외관이 아닌 실질을 가지고 하는데, 이는 비즈니스 구조, 즉 사업자가 무엇으로 돈을 보는지이다. 테라·루나의 발행사업자와 제휴사업자들은 서비스를 제공할 때가 아니라 코인을 팔때 돈을 벌게 되는 구조이다.

법이 있는데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오히려 처벌이 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기는 이유는 도대체 누가 법을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금융위원회와 정치권이다. 이들이 가상자산에 자본시장법이라는 도구를 쓰지 않는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다. 주무부처인 금융위는 루나·테라를 비롯한 주요 가상자산들에 대한 증권 판단을 미루면서 소 잡는 칼을 모른 척 한다. 국회는 가상자산업법이라는 현재 사업을 유지하는 주머니칼을 제작 중이다. 가상자산업법에 불공정거래 처벌 규정이 있어서 투자자 보호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한계가 극명하다.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코인 거래는, 테라처럼 완전히 망하거나 위믹스나 클레이 믹서처럼 누가 특별히 추적해야 일부가 밝혀지기 때문이다.

권도형이 중요한 것은 권도형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의 사기적 부정거래 규정을 적용하면 테라처럼 0원이 되기 전에 허위사실과 시세조정을 처벌하고 수익을 몰수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권도형들은 테라·루나 재판이 국내에서 개시되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권도형이 미국에서 재판을 받으면 가상자산 규제 방향에 대해서 사실을 논의할 기회가 사라질까봐 걱정된다. 우리나라는 범죄자의 소도가 아니다. 권도형이 어딜 가든지, 근본적으로 자본시장법이 집행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를 점검하고, 이와 함께 가상자산업법을 논의하도록 정부와 국회에 촉구해야 한다.

예자선 변호사(돈과 정치 사이의 법률 저자)

park.jiyeong@heraldcorp.com

랭킹뉴스